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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1조 달러 시대의 산증인 (주)코리아나 전병직 회장

대한민국 수출산업의 역사로 기록돼

(아시아뉴스통신= 정혜미기자) 기사입력 : 2017년 01월 11일 00시 28분

(주)코리아나 전병직 회장은 가발수출 침체기에 흑인여성을 타깃으로 패션가발을 개발해 일대 혁신을 이뤄냈다. /아시아뉴스통신=정혜미기자

(주)코리아나는 독창적 디자인과 우수한 기술력으로 해외 가발트렌드를 선도하는 기업으로서 한국 수출산업의 초석을 다진 전병직 회장의 가발인생 40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국내 가발디자이너 1호인 전 회장은 1970년대 중반 가발수출이 침체기에 빠질 무렵, 흑인 여성을 타깃으로 패션가발을 개발해 일대 혁신을 이뤄냈다.

주로 유태계 백인들의 가발수요가 일반적이었던 당시, 곱슬머리의 흑인 여성을 모델로 수출시장을 넓혀나간 것은 그의 탁월한 선견지명이었다.

업계 최초 크림프컬(Crimp Curl)과 웨트룩컬(Wetlook Curl), 야키 위빙(Yaki Weaving) 스타일을 개발해 폭발적 인기를 이끌어낸 전 회장은 지속적인 디자인 연구‧개발로 가발패션을 리드해왔다.

현재 (주)코리아나는 미국, 유럽, 일본을 중심으로 제품 수출에 주력하며 해외 모발패션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대한민국 가발디자이너 1호 (주)코리아나 전병직 회장이 지난날을 회상하며 가발제품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아시아뉴스통신=정혜미기자


◆세계 모발시장 흐름 간파해 업계 리더로 성장

한국전쟁 직후, 기술이 전무했던 시절에는 광물과 수산물 등 가공을 거치지 않은 자원 위주의 수출이 이뤄졌다.

그러다 1965년 수출장려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섬유와 가발 등의 공산품이 주된 수출품목이 된다.

특히 가발산업은 두각을 드러내며 1966년 1천62만 달러의 수출기록을 세웠고, 1970년도에는 수출 1억 달러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국내 총 수출량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수출산업을 리드한 가발은 단일 품목으로는 의류와 합판 다음으로 수출액이 많아 수출상품 3위에 올랐던 ‘효자상품’이었다.

이렇듯 1970년대 외화 획득의 견인차였던 가발업계에 몸담아 한국 수출산업의 반석을 다진 전 회장은 지난 2011년 열린 제48회 무역의 날 행사에서 ‘무역 1조 달러 달성’ 특별유공자로 산업포장을 수상하며 공로를 높이 인정받았다.

당시 ‘무역 1조 달러 시대의 영웅’으로 추대되며, 그의 영화 같은 가발인생이 언론과 매스컴에 집중 조명됐다.

전 회장은 지난 40여 년간 가발산업 외길에서 혼신의 열정을 바쳤다.

1968년 가발공장의 기계기술자로 입사했던 그는 생산 교육담당자를 거쳐 디자이너로 전격 발탁됐다.

디자인 및 기술개발에 노하우를 쌓아 생산성 향상에 주력했던 전 회장은 세계 모발시장의 흐름을 읽는 지혜와 창의적 디자인을 고안해 단숨에 업계 리더로 부상했다.

전 회장은 “어려웠던 시절 , 단순히 월급이 많아서 취직했던 곳이 가발회사였다. 그런데 내가 직접 가발을 디자인하고, 수출산업에 기여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밝히며 “당시에는 아침에 눈뜨고 밤에 잠들 때까지 가발에만 매달렸다. 어떤 날에는 샘플을 만드느라 3일 밤을 꼬박 센 적도 있었지만 힘든 줄도 몰랐다. 결혼식 당일에도 회사에 출근해서 일할 정도로 가발에 푹 빠져있었다”고 옛 시절을 회고했다.

당시 해외에서 ‘가발’ 하면 ‘코리아’을 떠올릴 정도로 한국 가발을 선호했다.

한국인 특유의 꼼꼼한 손놀림으로 머리카락을 일일이 꿰맨 가발은 품질이 월등했고, 수명도 길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인교포와 유학생이 가게를 차리고, 한국 가발을 직접 유통했다는 점도 외국인들로 하여금 ‘가발=코리아’의 공식을 떠올리게 했다.
 
전경련 최고경영자과정 총동문회 '2016 송년의 밤'에서 주식회사 코리아나 전병직 회장(오른쪽) 경영대상 수상(사진제공=코리아나)
 

◆흑인 여성을 타깃으로 새로운 디자인 개발

1970년대 후반, 명실공히 최대 가발 수출국으로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던 가발산업이 점차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가발공장들의 도산이 확산됐다.

이 때 전 회장은 백인이 아닌, 흑인 여성을 대상으로 디자인을 개발해 전략적으로 수출했다.

그는 흑인 여성들이 선천적 곱슬머리로 모발을 길게 기를 수 없는 점에 착안해,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것이다.

또 흑인들의 경제력이 신장돼 주요 가발 구매층으로 확대될 것이라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는 과감하게 도전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현재 가발 수요의 90% 이상이 흑인 여성들이며, 그들은 평균 소득의 20% 정도를 미용에 소비하고 있다.

전 회장의 대표적 업적은 크림프컬과 웨트룩컬 스타일 개발이다.

일반적인 컬이 주로 원형을 띠는 반면, 크림프컬은 지그재그 모양이다.

또한 웨트룩 스타일은 기존 모발제품에 젖은 듯 윤기를 더한 것으로 개발 후 모든 가발 제품에 적용함으로써 가발 성장에 동력이 됐다.

헤어무스와 젤 등이 웨트룩 스타일 개발 이후에 생겨난 제품들이니 그의 디자인이 국내 미용업계를 선도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 회장은 불량제품의 변신을 꾀한 야키 위빙(Yaki Weaving) 헤어를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1980년대 중반, 중국 공장에서 제조해 들여온 수십만 개의 제품이 컬이 지나치게 강하게 만들어져 판매할 수 없는 상태였다.

방대한 불량제품 처리로 고민에 휩싸였던 전 회장은 스팀을 넣고 다리미로 펴서 제품을 보완했다.

이 제품에 ‘Yaki Weaving’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시장에 내놓았는데 놀랍게도 불티나게 팔렸다.

그 후에도 (주)코리아나는 폴리에스터로 만든 야키컬 포니테일류와 PVC로 만든 야키컬 포니테일류 등을 개발해 인기를 끌었다.
 
(주)코리아나는 1993년 중국 천진에 공장을 건립해 생산성을 높이면서 본격적으로 수출업에 박차를 가했다.(사진제공=코리아나)
 
◆직원복지와 노사화합을 통해 경영정상화 이뤄

전 회장은 1992년 6월 1일, 청년시절부터 20여 년간 열정을 쏟아온 가발회사를 떠났다.

기업의 세대교체기에 퇴직한 전 회장은 그간 쌓아온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가발 판매업을 계획하며, 사업구상을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동안은 서류가방을 들고 외국 출장을 바쁘게 다녔는데, 난생 처음 서류가방 없이 골프가방 하나 메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당시 미국으로의 이민과 가발 판매업을 염두해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그간 친목을 쌓아온 바이어들과 만나 구체적으로 상의해 보았으나, 하나같이 직접 와서 가발 유통업을 하기 보다는 한국에서 제조업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습니다. 또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들은 자기들이 모두 수입해서 판매하겠다는 제안을 하기에 저도 고민 끝에 국내 사업으로 결정하고, 주식회사 코리아나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주)코리아나 창립기념일이 6월 17일이다.

퇴임한지 15일, 즉 반달 만에 회사법인을 설립하한 것이다.

설립 첫 해부터 선주문이 밀려들어와 생산에 가속도가 붙었으며, 이듬해 1993년도에는 중국 천진에 공장을 건립해 본격적으로 수출업에 박차를 가했다.

(주)코리아나는 빠른 속도로 성장세를 이어나가며, 해외모발산업을 주도했다.

전 회장은 가발을 ‘드레스 코드’로 애용하는 해외 패셔니스타들의 감각에 맞춘 디자인과 기술개발을 동력으로 (주)코리아나를 안정적 사업 궤도에 올렸다.

그는 “사업을 이끌어오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지난 몇 년간 중국 노동자 인건비 상승과 노사분규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 직원 복지와 노사화합에 힘쓴 결과 다시금 성장세를 나타내며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가고 있다”며 감회를 밝혔다.

이어 전 회장은 “현재 아웃소싱 업체를 통한 생산으로 수출판로를 개척해 나가고 있으며, 지난 2007년 이후 침체기에 빠졌던 모발시장이 2년 전부터 여건이 나아져 매년 30%씩 매출이 상승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가발시장은 기능성을 중시하는 반면, 해외시장에서는 패션가발이 주를 이룹니다. 그렇기에 한국 가발시장에서는 큰 호응을 얻고 있지 못하지만, 패션 가발의 수요가 높은 해외시장에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주)코리아나의 강점입니다.”

전 회장은 유행을 선도하며 감각적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 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운다고 밝혔다.

그는 패션 잡지, 화보집, 공연 등 패션의 첨단을 접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받고, 효과적인 가발 테크닉을 구상하고 있다.
 
(주)코리아나 전병직 회장이 가발 쇼핑몰 위나인의 제품들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아시아뉴스통신=정혜미기자

◆젊은 감각, 패션가발의 선두주자 ‘위나인’

현재 전병직 회장은 (주)코리아나에 이어 온라인 마케팅을 주도하는 (주)GK(Global Koreana)를 설립했고, 그의 장녀 전주영씨가 쇼핑몰 위나인(WININE)을 오픈해 가발 판매 사업을 하고 있다.

일찍이 “서양인을 겨낭한 디자인에 주력해온 아버지와 달리 동양인에 적합한 제품을 디자인하고 생산할 것”이라고 밝힌 전주영 대표는 “현재 10~20대의 젊은 층부터 중년여성을 위한 가발 제작에 열정을 쏟고 있다.

전 대표는 “기능성 위주의 국내 가발시장에서 현대인의 다양한 패션 감각을 부각시킬 수 있는 아이템으로서 가발을 활성화 시키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현재 가발 쇼핑몰 위나인은 통가발, 부분가발, 헤어피스 등 다양한 스타일의 가발을 선보이고 있으며, 좋은 제품을 합리적 가격으로 판매해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다.

인터뷰 말미, 전 회장은 최근 심각한 청년취업난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젊은 날의 고난은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말이 있지만, 정작 우리 청년들이 쉬운 길만 택하려고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요즘 청년실업난으로 떠들썩하지만, 정작 중소기업에서는 인재를 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는 대기업만을 선호하는 인식 때문”이라며 “향후 한국 경제에서 청년들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청년들도 일자리 눈높이를 자신의 적성에 맞춰서 선택하고, 재능을 무한대로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대기업만을 선호하는 인식을 버리고, 중소기업에서 실력을 탄탄하게 쌓아 나가길 바란다. 속한 직장이 규모가 작든 크든, 주인의식과 열정을 갖고 일한다면 장기적으로 좋은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세계 가발시장은 규모가 날로 확대되고 있으며, 미국, 유럽, 아프리카 흑인들의 소득수준이 향상될수록 더욱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다.

더불어 국내에서도 점차 가발이 패션 및 이미지 메이킹 용도로 확산되며 제2의 부흥기를 맞고 있다.

이렇듯 가발이 ‘고부가가치 패션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가발수출에 기여해온 (주)코리아나 전병직 회장의 삶은 대한민국의 수출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가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전 회장의 공로를 기리며, 앞으로 시대변화에 부응하는 온라인 마케팅 활성화와 트렌드에 맞춘 디자인 개발로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여나갈 것이라 기대한다.

‘가발’하면 ‘코리아’를 떠올렸던 그 시절처럼, ‘가발=코리아나’가 될 수 있도록 세계 시장에서 우뚝 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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