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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희 '제주미술 & 청년미술'] 김진수 'Natural Fea', 색, 자연, 한국화의 교집합 모색

[제주=아시아뉴스통신] 이재정기자 송고시간 2017-05-16 01:14

화가 김진수, 먹의 흔적·기억의 흔적을 묘사하는 능력있는 작가
색을 이용한 추상적 이미지를 표현한 김진수 작가의 작품 'nature fear' (사진제공=다다아트)


"어떤 것이 좋은 작품이고, 좋지 않은 작품인지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없다. 바라보는 대상이 어떻게 느끼는지, 주관적인 정답만이 존재할 뿐이다"

 작가 김진수, 그가 ‘한국화’라는 장르에 빠져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  ‘배고픈 직업’ 이라는 사회적 현실에 가족들의 반대는 심했다. 그의 재능과 그림에 대한 열망만으로 가족을 설득하기에는 반대의 벽이 결코 쉽지 않았다. 디자인 전공으로 선회하고 타협하면서 미술의 끈을 이어갔다. 넉넉하지 않았던 그의 삶은 잠시 그를 화실 속의 선생님으로 묶어 두었다.

삶에 치이며 그림에 대한 열망은 조금씩 식어가는 듯 했으나 두개의 힘이 그를 다시 미술의 세계로 인도하였다.

첫째는 자신을 지지해주는 배우자와의 만남이었다, 그녀는 그의 꿈이 꺾이지 않도록 힘을 보태주었다.

나머지 하나는 제주도로의 이주였다. 제주도에서 만난 산과 바다는 늘 보아오던 평범한 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작가가 꿈꾸던 색이었으며 황홀한 느낌을 넘어서, 자연의 경외감을 느끼게 해주는 색이었다. 서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고 산이지만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색감은 가슴속에 남아있던 그림에 대한 본능을 자극했다.

그는 주저 없이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을 그만 두었고, 디자인이 아닌 순수회화를 더 배우고 싶은 욕망이 대학을 넘어 대학원까지 가게 했다.      

처음 작가의 작품을 보았을 때는 산수공포(山水恐怖)라는 주제의 작품에 전념한 시점이다. 작가는 무서움과 두려움의 공포가 아닌 자연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을 표현했다.

자연 앞에 서면 너무나 작은 하나의 입자일 뿐인 자신이 그 거대한 자연을 화폭 위에서 만날 때면, 항상 자연에 대한 위대함을 떠올린다고 한다. 한국화 역시 그렇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분채를 이용한 작업은 아주 작은 입자들이 화면 위에 조금씩 쌓여 눈에 보이는 색을 만들어 간다. 너무나 당연한 듯 보이는 이 ‘자연의 섭리’는 작가가 작품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신념이라 할만하다.

작가가 작업하는 모습을 살펴본다면 자칫 지루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묵묵히, 또 꾸준히 그 일을 해나간다. 화면에 보이는 빨간색을 만들기 위해 백번의 혼을 덮어 나간다. 그 과정 속에 먹으로 표현되는 희미한 흔적들은 그 색 속에서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 흐름은 다시 생동감을 만들어 낸다.

그가 만들어낸 그 흐름들은 기억의 흐름이라 표현할 수 있다. 그려질 때는 작가의 기억들이 그림 속에 묻어나지만 그 작품을 바라보면서 굳이 작가와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거나 공감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당연히 그 기억과 추억은 김진수 작가 개인의 기억과 흔적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관객의 시선으로 그 작품을 마주하고 본인의 기억을 떠올리거나 느껴보자.
 
기억의 흔적을 닮은 먹의 흔적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김진수 작가. (사진제공=다다아트)


미술은 또 작품 감상은 어떠한 답이 있어 그것을 도출하거나, 느껴야만 하는 무엇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나만의 기억들과 추억들을 대입시켜보자. 그 기억이나 추억들이 작가의 그것과 비슷하다면 그것이 좋은 작품으로 느껴질 것이고, 나와 다른 기억이고 낯선 흔적이라 교감될 수 없다면 단지 그저 그런 작품이라 느껴질 것이다.

어떤 것이 좋은 작품이고, 좋지 않은 작품인지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없다. 바라보는 대상이 어떻게 느끼는지, 주관적인 정답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번 의 작품들은 색을 이용한 추상적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다. Natural Fear는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는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과 경외심에서 시작된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단순히 한 가지 색으로 칠해놓은 넓은 화면이 아니다.

그 색 속에 담겨있는 다양한 색상들, 기억의 흔적처럼 여기저기 존재하는 먹의 흔적. 그는 형태로서 표현 할 수 없었던 그의 감정과 이야기를 색으로 표현하려 하였다. 풍경을 그리던 그에게 추상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한 기법의 변화이고 시도였을까? 하지만 그의 대답은 너무 당연했고 짧고 강렬했다.

작가가 설명하고 싶은 이미지를 표현한 것뿐이다. 그 방법 중 추상적 표현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일 뿐, 추상으로의 전환이 아니다. 단지 작가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추상이라는 방법을 이용한 것이다.
  
추상미술에서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다시 말해본다. 답은 없다. 그저 바라보고 느끼라! 나의 기억과 작가의 기억을 교감해 보자. 빨간 화면, 혹은 노란 화면을 보면서 당신은 어떤 순간 속으로 이동하고 있는가? 파란 화면 속 가늘고 작은 흔적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파도가 몰아치는 형상은 아닌가? 차가운 새벽 들판 혹은 바람이 휘몰아치는 사막 한 가운데는 아닐까?

당신이 느끼는 그것이 정답이다.       

* 김창희 - 화가 / 다다아트 대표
 
김창희 다다아트 대표. (사진제공=다다아트)




  작가 김진수를 읽다.  다다아트 김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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