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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그리고 평화이야기 2-네델란드 헤이그 출발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홍근진기자 송고시간 2017-09-02 10:03

남북통일 기원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아시아뉴스통신은 1일 네델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년 2개월 동안 16개국 1만 6000km의 유라시아대륙을 횡단 중국과 북한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올 예정인 통일기원 평화마라톤에 도전하는 강명구씨(60)의 기고문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
 
서울서 온 동창생 민형성 부부와 이은수 부부 그리고 프랑스서 온 이은수씨와 함께.(사진=강명구)

출발선에 서니 이제 1만 6000여km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이정도면 좀 힘들겠지만 해볼 만한 거리이다 싶다. 처음 두어 주일은 신체의 각 기관이 이런 터무니없는 육체적 고통에 적응하느라 몹시 힘들어하겠지만 육신은 생명을 위해 잘 적응할 것이다. 몸이 이 고통을 잘 적응할 때까지 최대한 부드럽고 예의바르게 몸을 사용하여야한다. 지금부터 얼마간은 몸의 조그마한 응석도 다 받아주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꾀를 부리던 육신도 이 최고의 움직임을 즐기게 된다.

첫발을 내딛자 내 속 깊은 곳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억압된 것들이 소리 없는 외침으로 솟구쳐 오르며 환호한다. 내 안에서 생겨나서 스스로 뜨거워지고 폭발할 것처럼 팽창해서 나를 망가뜨리고야 말 기세로 덤벼들던 것들이 땡깡부리던 어린아이처럼 고요히 잠들고 말았다.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의 첫 고백 뒤에 마른 침을 꾹 삼키며 찾아오는 침묵의 시간이 첫발자국을 뛰자 거룩하게 찾아왔다. 다만 그 성스러운 침묵의 시간에 모든 사랑하는 연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달콤한 환상에 빠질 수 없는 것이 탈이었다. 나는 그 여백의 시간에 단호한 결의를 다져야 했다.

돌베게를 베고 풍찬노숙을 하며 어떤 미스터리한 지점을 헤매다 버뮤다의 삼각지점 같은 곳을 만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금지된 사랑에 뛰어든 여인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는 연주자처럼 나는 미지의 세상을 향해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달려갈 것이다.

서쪽 끝에 서서 동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방향이 아니었다. 다만 끝을 향해 달리고 싶을 뿐이다. 지구의 끝을 향해 달리며 전쟁의 끝, 인류의 오랜 수치와 오욕의 끝으로 달리고 싶었다. 그곳에 평화가 있으리란 믿음이었다. 그곳은 내가 온 곳이다. 아마도 인류의 원형이 그러했으리라! 인류의 시작이 그러했으리라! 그러니 끝으로 달리면서 시작점으로 다시 달려가고픈 염원을 발걸음에 고스란히 담았다.
 
친구 민형성 임남희씨 그리고 이준열사 기념관장님이 불러 주신 네델란드 경찰관들.(사진=강명구)

나의 첫 발걸음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서울에서 동창생 민형성 부부와 이은수 부부가 와서 함께 해주었다. 그리고 파리에서 임남희씨가 7시간이나 넘게 기차를 타고 와주었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힘이 나고 과분한데 이준열사 기념관 관장님이 네덜란드 경찰을 불러 의전까지 갖추게 하여주시니 고마워해야 할지 오지랖이 넓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준열사 기념관 앞에서 출발하는 것이 이준열사의 숭고한 정신에 어긋난다고 허가를 안 해준다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사진만 찍고 가려고 갔는데 10시 반에 문을 열 사람들이 8시 반부터 나와서 지키고 있다가 길거리에서 사진만 찍는 것도 안 된다고 난리를 쳐서 첫 출발부터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아서 저만치 가서 광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경찰들이 출동을 했다. 경찰들은 내가 유라시아 대륙을 달려서 횡단할 사람이라고 하자 놀라워하며 기념사진까지 같이 찍고 오히려 출정식을 멋지게 장식해주었다. 제복 입은 사람이 끼니 사진이 멋지게 구색이 맞는다.

우리는 함께 헤이그 거리에서 평화의 행진을 하는 것으로 뜻 깊은 출발을 하였다. 민형성과 이은수는 1시간 같이 행진을 하고 헤어졌다. 친구들과 친구들 부인들까지도 먼 길 떠나는 저를 포옹해주었다. 임남희씨는 비를 맞으며 약 20km 정도를 같이해주었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는 구도시인 하우다까지 와서 여장을 풀었다.

분단의 모순은 시작부터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평화마라톤을 응원해주러 서울에서, 파리에서 찾아와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준열사의 업적을 기리는 일에 평생을 받치다시피 한 사람은 평양을 거쳐서 서울로 들어온다는 소리에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하는 세력과 무슨 통일을 하냐고 혈압을 높이고 있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 분단이 가져다 준 깊은 상처요 모순이다. 

헤이그의 네덜란드 명칭은 덴하그(Den Haag)이다. 헤이그는 세계 정치의 중심지이다. 이곳에 네덜란드의 정부청사와 국회의사당은 물론 외국 대사관들이 몰려있다. 이곳에 국제 사법재판소와 국제 평화회의장 그리고 국제형사재판소가 있다.
 
프랑스에서 온 이은수씨와 함께 헤이그의 네덜란드 명칭인 덴하그(Den Haag) 거리에서. (사진=강명구)

네덜란드의 정식 수도는 암스테르담이지만 실질적인 수도는 헤이그이며 많은 국제회의가 열리며 정치의 중심지이다. 이곳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로켓탄 발사기지로 연합군의 공격으로 폐허가 되었으나 지금은 나무가 많은 유럽 최고의 도시로 거듭났다.

1905년 일본과 미국은 ‘카스라테프트 밀약’을 맺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로 할 테니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합의를 보았다. 1907년 만국평화회의 때 고종은 이상설, 이준, 이위종 3인을 특사로 파견하여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천명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국하였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준열사의 드라마틱한 여정을 내가 이어받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섰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정이 녹녹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지금 희망의 빛이 한반도로부터 떠오르고 있는 것이 다르다.

그는 고종의 밀서를 가슴 깊이 품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만국회의가 열리던 헤이그로 와서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세계인들에게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1907년 7월 14일 이준은 헤이그의 초라한 호텔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죽음을 확인한 의사는 단독(丹毒)에 의한 사망이라고 적고 있을 뿐이다.  그 후 1945년 일본으로부터는 해방이 되었지만 해방이 된 후 72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자주통일독립국가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상태에 머물고 있다.

나는 이 여행의 주제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영화에 걸맞은 테마음악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내가 정한 주제곡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이다. 그 음악은 페르시아 왕자가 양탄자를 타고 신라 공주의 손을 잡고 하늘을 나는 듯한 환희를 묘사한다. 누에에서 가는 실을 뽑아내듯 다소 절제하고 조심스러운 듯한 저음으로 시작하여 어둠과 같은 고요 속에서 듣는 이들의 감각을 살며시 자극한 뒤 순간 폭발적인 음으로 순간 모든 감각을 휘어잡는다.

고통과 고뇌를 넘어서 희망의 세계로 들어서는 힘찬 행진곡의 리듬이 어려운 고비마다 나에게 힘을 불어넣어줄 것이다. 폭풍구름 몰아치는 황량한 벌판을 내달리는 한혈마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강강수월래, 열정적인 사랑, 온 세상이 형제가 되어 하늘을 향해 팔을 뻗치고 평화의 함성을 지른다. 온 세상이 함께 환희에 젖어 새 세계를 향해 힘껏 뛰어오른다. “백만 인이여 서로 포옹하라! 전 세계의 입맞춤을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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