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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빗속에 길을 잃다

남북통일 기원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아시아뉴스통신= 홍근진기자) 기사입력 : 2017년 09월 11일 08시 56분

본지는 지난 1일 네델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년 2개월 동안 16개국 1만 6000km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중국과 북한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예정인 통일기원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60)의 기고문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
 
독일 도르트문트 시내를 가로지르며 달리는 전차는 그리 바뻐보이지도 안는다.(사진=강명구)

도르트문트에서 우나까지는 쭉 뻗은 길이다. 이런 길은 길 찾는 걱정 안하고 주위 경관이나 낯선 사람들을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달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구름이 하늘을 덮었지만 곧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며칠 계속 비가 내리더니 기온은 떨어지고 지나는 행인들은 옷깃을 여미고 명 짧은 나뭇잎은 벌써 떨어져 길 위를 구른다. 나뭇잎의 가녀린 떨림으로 전해오는 바람의 소리에 나그네의 귀가 열린다.

도르트문트만 해도 대도시라 여러 이민족들이 모여살고 특히 이슬람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거리엔 홈리스도 보였고 빈부격차가 심할 때 느껴지는 긴장감이 나그네의 피부에 그대로 전해온다. 고등학생들의 등굣길이 싱그럽게 보인다. 시내를 가로지르며 달리는 전차는 그리 바뻐보이지도 안는다. 나도 바쁘지 않은 걸음으로 우나까지 잘 뛰어갔다.

도르트문트에서 다음 숙소 있는 곳이 조스트였으므로 거리가 평소 거리보다 긴 50km이었지만 이제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하는 몸에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우나에서 월스라는 도시까지 가는 곳이 문제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은 GPS도 살짝 맛이 간다. 가든 길을 돌아오고 가든 길을 돌아오고 몇 번 하다 보니 나도 무엇엔가 홀린 듯 정신이 몽롱하다. 비는 음이온을 발생시켜 자율신경계를 조정한다. 
 
우나에서 월스라는 도시까지 가는 중간에 길을 잃고 헤매다 주유소에서 먹은 빵과 소시지.(사진=강명구)

거기서는 그냥 1번 국도를 타고 가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것이 꼭 아우토반 같아서 겁이 덜컹 났다. 아우토반을 메르세데스나 BMW를 타고 스피드를 즐기고픈 막연한 꿈을 어렸을 때는 꾸어봤지만 이 나이에 유모차를 밀면서 그런 차들과 속도 경쟁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일단 그 길은 벗어나고 싶어서 무작정 길을 이탈한 것이 탈이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꿈속에서 도원경을 헤메었는지 현실 속에서 어떤 유혹에 미혹되어 정신을 잃었는지 알 수가 없다. “모든 현상은 꿈같고 환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 같고, 또한 번개 같으니 마땅히 이렇게 바라보라!”는 금강경 말씀이 떠오른다.

나는 분명 무엇엔가 홀린 기분이었다. 국도에서 다른 길을 찾으려고 자작나무 숲을 한참 돌다보면 제자리이고 다시 배나무 가로수 길을 한참 돌다보면 제자리이다. 갈 길은 멀고 몸의 에너지는 고갈되어 가고 마음은 급해진다. 달리기가 좋아서 길을 나섰지만 길을 잃고 제자리를 뱅뱅 돌고나면 머리는 하얗게 되고 거친 로렐라이 계곡이 옆에 있다면 그곳에 풍덩 몸을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늘은 들녘에 어찌 센 바람을 풀어놓았는지 풍차의 바람개비가 잘도 돌아간다.(사진=강명구)

라인강에서는 로렐라이의 마성의 소리에 미혹되어 정신을 빼앗긴다지만 난 고작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는 소리에 넋이 나갔으니 라이너 마리아 릴케보다도 더 감성적인 사람이다. 사실 우리 나이쯤 되면 이성으로부터 유혹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런 것들이 일상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은근히 어떤 은밀한 유혹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런 유혹이야말로 내가 살아있음을 내가 건강함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이성의 유혹만 그리워하랴! 자연의 유혹도 더 치명적인 것을!

독일의 가을 들판을 달리면서 그의 시 ‘가을날’을 떠올리며 릴케와 함께 가을벌판을 달린다. 지평선 멀리까지 펼쳐진 황금빛 들판이 그로 하여금 “주여”라는 낱말이 저절로 튀어나오게 했을 것 같다. 릴케는 20살에 고향 보헤미아를 떠난 이후 진정 보헤미안 같은 방랑의 삶을 살다 간 사람이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장미꽃을 꺾다가 가시에 찔려 폐혈증으로 죽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해주소서. 이틀만 저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그의 바람대로 하늘은 들녘에 어찌 센 바람을 풀어놓았는지 풍력발전기의 바람개비가 잘도 돌아간다. 그는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고 말한다. 아무 것도 바라는 것 없이 사랑할 때 가슴 속에 차오르는 충만함을 그는 연상의 연인 루 살로메와의 애틋한 사랑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야말로 그에게 끝없는 시상을 샘솟게 한 원천이었다. 자신의 감정에 갇히지 않고 사랑하는 하늘의 비밀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었고 위대한 시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독일 조스트 근처 집 앞 마차에 가득 과일과 야채를 내 놓고 파는 농장직영 상점이 있다.(사진=강명구)

몇 바퀴 뱅뱅 돌다보니 바람에 떨어진 도토리 하나가 정수리를 탁 때린다. 간신히 정신을 추스르고 다시 달리고 있는데 집 앞에 마차에 가득 과일과 야채를 내 놓고 파는 농장직영 상점이 있다. 그 안에 앞치마를 두른 독일 농부아주머니가 보인다. 그저 무뚝뚝한 그녀와 말 몇 마디 섞어보려고 사과 몇 개와 꿀 한 병을 샀다, 꿀은 평소에는 잘 먹지 않지만 내가 이런 극한의 마라톤을 할 때 유용하게 활용한다. 꿀은 면역력을 증강해주고 에너지원으로 좋고 피로회복에 그만이다.

새벽에 어둠이 가시기 전에 도르트문트를 출발한 나는 숙소가 있는 조스트에 도착할 때는 어둠이 짙게 내리기 시작했고 아직도 비바람은 계속 내리쳤고 온몸의 기운은 다 소모되었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우니 몸의 각 기관을 연결해주고 조이던 나사가 다 풀어져 각 기관들이 제각각 쉴 자리를 찾아 흩어지는 나른함이 찾아온다.

나는 홀로 달리며 자연을 사랑하고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스스로 완성하며 마음의 평화를 간구한다. “사랑은 홀로 승화하는 외로움이다.” 릴케가 이렇게 간파했고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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