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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증오비(憎惡碑)

[강원=아시아뉴스통신] 이순철기자 송고시간 2017-11-21 16:48

강릉시민 함동식
천태종은 조계종 태고종과 더불어 한국 불교의 3대 종파이다. 천태종은 고려 무신집권기와 조선을 거치면서 명맥이 완전히 끊어졌었는데 천태종의 맥을 다시 살려놓은 이가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출신의 상월대조사(上月大祖師) 박준동이다.
 
상월조사는 뛰어난 신통력과 법력(法力)의 소유자로 전해지는데 1966년 천태종 개창을 선포하고 1974년 입적 할 때까지 채 십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천태종의 기틀을 닦아놓은 인물이다.
 
천태종은 한국 종교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신도 수를 확보하였으니 오늘날 천태종은 융성은 상월의 능력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하겠다.
 
그래서 일까 천태종 사찰의 법당에는 불상 옆에 상월의 초상이 걸려있으니 가끔 상월이 곧 부처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져들곤 한다. 그런데 상월이 활동하던 시기 국제 정세는 베트남 전쟁(1955~1975)이 한창 진행 중인 때였다.
 
초기 베트남 전쟁은 남북 베트남의 내전 양상이 였으나 1964년 미국이 개입하면서 국제전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미국은 한국 정부에 한국군의 파병요청을 하였고 박정희 정권은 내부적으로는 파병 방침을 정해 놓고 미국과 파병 조건에 대한 외교적 협상을 벌이는 동시에 국내의 우호적 파병 여론 조성을 위해 종교 지도자들을 접촉하였다.

이때 상월은 파병에 가장 적극적으로 찬성하였는데 현재 천태종의 비약적 발전은 상월과 박정권의 유착에서 비롯된 결과인지도 모른다. 무릇 종교와 학문은 권력의 선택을 받아야만 비로소 위대해 진다고 하던가.
 
기독교는 로마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가 313년 밀라노 칙령을 선포함으로써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게 되었다. 공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공자는 살아 생전에 그리 뛰어난 인물이 아니였다.
 
한무제 때 동중서(董仲舒 기원전 176~104)가 모든 사상을 물리치고 오직 유학만을 숭상해야 한다는 이른바 파출백가 독존유술(罷黜百家 獨尊儒術)을 주장하면서 한무제에게 유학을 국교로 삼아야 한다고 건의 하면서부터 공자는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천태종의 교세 확장도 상월조사의 초인적인 능력만으로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지금도 천태종 사찰을 방문할 때 마다 법당에서 흘러나오는 진한 향내를 맡으면 베트남전의 포연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베트남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부끄러워 해야 할 전쟁이다. 힘없고 가난한 나라의 내전에 직접 교전국 16개국 간접 지원국 18개국 총 34개 나라가 관여하였다.
 
미국의 무차별적인 대량 살상무기의 사용으로 백만이 넘는 베트남인이 희생 되었으며 이러한 미국의 광기는 미국 내에서 조차 반전운동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
 
밥 딜런, 마빈 게이(Marvin Gaye) 등은 음악을 통한 반전운동에 주력하였으며 이들의 활동은 저항 정신이라는 새로운 청년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한국군의 피해 역시 상당한 것 이였다. 전사자 5099명, 부상자 10962명이 였으니 이들의 희생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겠는가.
 
베트남 전쟁은 인류 문명사에 있어서 가장 부끄러운 전쟁이지만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밀월관계 속에서 군사, 외교적으로 큰 수확을 올렸으며 전쟁의 더러운 과일 따먹으면서 경제를 성장 시킬 수가 있었다.
 
베트남전이 종전 된 지도 어느덧 42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제 전쟁의 상흔이 아물 때도 된 것 같지만 베트남 중부 빈호아 마을 사람들은 자손만대까지 기억해야 할 상처로 남아 있다.
 
빈호아 마을은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대표족인 민간인 학살지역이다. 한국군 해병대 청룡부대가 저지른 만행으로 마을 주민 430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17년전인 2000년 베트남 정부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건수는 80건 희생자 수는 9000명에 달한다. 베트남 전역에 3기의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져 있고 50기의 위령탑이 있다고 한다.
 
한국군의 만행이 얼마나 잔인했으면 증오비를 세웠을까 싶지만 희생자 대부분이 부녀자와 어린아이 그리고 노인들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어린아이를 산채로 불속에 던졌다고 하니 그들의 원한이 얼마나 사무친 것인지 짐작이 간다.
 
지금도 갓난아이를 잠재울 때 불러주는 자장가의 내용이 한국군의 만행이라고 하니 이 통곡의 아픔을 무슨 수로 위로해줄 수 있을까.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다” 얼마전 문재인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 과정 중 2017 호치민-경주 세계문화엑스포 개막식에 영상축전을 전하면서 한 말이다.
 
과거사를 반성하고 유감을 표했다는 것은 잘한 일이지만 이 정도의 사과로 그들의 마음을 녹여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1990년 5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의 일이다. 일본 국왕 아키히토가 환영만찬에서 통석(痛惜)의 념(念)이라는 표현으로 유감을 표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였다.
 
통석의 념이라는 말 한마디가 어떻게 일제 36년의 식민통치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겠는가.
 
과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한국군의 만행에 대하여 유감을 표한 적이 있었지만 한국정부는 아직도 진정어린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독일에 대한 원한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와 절간을 표시하는 상징이 비슷하다고 하여 불교 사찰에 출입을 꺼리는가 하면 베토벤과 바그너의 음악을 극도로 싫어한다.
 
바그너는 반 유대주의자 였고 히틀러는 바그너 숭배자였다.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학살할 때 바그너의 음악을 틀어주었다고 하니 유대인들이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 할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1990년초 바그너의 음악이 이스라엘에서 연주 된 적이 있었는데 독일인들의 진정어린 사죄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이런 예는 또 있다. 1970년 12월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초 겨울 비를 맞으며 무릎을 꿇고 진정어린 사죄를 한 적이 있다.
 
서독 총리의 진실한 참회에 유대인과 폴란드 국민들은 마음의 문을 열 수가 있었다.
 
베트남 빈호아 마을 한국군 증오비 첫 머리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하늘에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그들의 표현대로 하늘에 닿을 죄악을 베트남인만이 만대 동안 기억할 일이 아니다.
 
가해자인 한국인 또한 만대토록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처절한 반성과 사죄를 해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만 대한민국은 미개국에서 문명국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것은 국익의 차원도 외교적 메카니즘의 문제도 아니다. 진정한 사과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예의요 도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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