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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의 경제학

[강원=아시아뉴스통신] 이순철기자 송고시간 2018-01-14 16:13

강릉시민 함동식
무술년 새해가 밝은지 벌써 열흘이 지났다. 물론 이것은 양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고 우리의 전통 음력으로 치면 아직도 정유년 동짓달에 걸려 있다.
 
더구나 사주 명리학에서는 입춘을 기준으로 해가 바뀌는 것으로 본다. 그러니 명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소한과 입춘사이가 섣달이니 지금은 정유년 섣달에 해당된다.
 
지금이야 양력이 대세이니 무술년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무술년은 오행상 토(土)의 기운이 왕성한 해이다. 천간의 무(戊)도 토성(土性)이요 지지의 술(戌)도 토성이다. 오행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를 말하는데 각 오행은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토성의 특징을 보면 방향은 사방의 중앙이며 계절은 사계절의 끝에 붙어서 다음 계절로 넘어가는 연결고리 역할을 해준다. 하루로 치면 해가 중천에 떠있는 대낮을 의미하고 색깔은 황색이며 기운은 둔하고 성질은 중후함이다.
 
그래서 일까 역사적으로 상고해 보면 무술년에는 큰 환란이 없었다. 7년 전쟁인 임진왜란도 무술년에 와서야 끝나고 말았으니 둔탁하고 중후한 토성의 기운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사주에서 무술은 괴강살(魁?煞)에 해당한다. 괴강은 모든 사람을 제압하는 강렬한 살로서 좋게는 부귀 엄격 총명 등을 뜻하지만 나쁘게는 살생 극빈 재앙 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주에 괴강이 많으면 팔자가 드세고 인생의 험로를 걷는다고 하여 예로부터 무술년에는 아이 낳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이것은 속설에 불과하다. 과거 일본의 중국 침략에 맞서기 위하여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맺어진 제2차 국공합작의 두 주역인 저우언라이(周恩來)와 장쉐량(張學良)은 1898년 무술년생으로 동갑내기였으니 무술년의 속설은 신뢰할 것이 못되는 것 같다.
 
다만 지금의 청년실업과 출산율 저하로 인하여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경제 위기를 바라볼 때 무술년의 속설과 맞물려 새해벽두부터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한다.
 
시대가 바뀌면 인류의 삶의 모습은 물론 패러다임의 변화 또한 당연한 일이지만 과거에는 지금과는 반대로 인구의 지나친 팽창을 걱정하던 시절도 있었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양모(羊毛)수요의 급증으로 지주들은 노동력은 적게 들고 수익은 몆배나 더 창출할 수 있는 양모를 생산하기 위해 농지를 목장화 하는데 혈안이 였다.
 
삶의 터전인 경작지에서 내몰린 농민들은 강렬하게 저항하였지만 지주들에 의해서 강제추방 되었는데 이것을 엔클로저(Enclosure)운동이라고 한다.
 
엔클로저 운동으로 농지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도시로 몰려 들었다. 또한 새로운 기계의 발명으로 삶의 수단을 잃어버린 수공업자들도 도시로 몰려 들었으니 도시마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빈민들로 넘쳐났다.
 
도시의 뒷골목은 쓰레기와 오물로 넘쳐나고 물과 공기는 오염 되었으며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였으니 도시 빈민의 삶은 짐승보다 못한 삶이였다. 풍부한 노동력은 저임금의 원인이 되었으니 도시 빈민의 가난은 마치 천형과도 같은 것 이였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나선 인물이 있었으니 인구론(人口論)을 저술한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 1766~1834)다.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고매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성욕을 억제할 수 없으므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비하여 식량의 증산은 인구증가를 따라갈 수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인구의 증가는 식량의 부족을 초래하고 저임금의 악순환에 빠지므로 빈민구제는 요원한 일이다. 그러므로 사망률을 높임으로써 인구를 억제하면 해결 가능한 일이다 라고 하였다.
 
맬서스의 이 기상천외한 해결 방법은 두고두고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맬서스가 멍청하고 형편없는 이론가는 아니였다.
 
그의 공황이론은 탁월한데가 있다. 자본주의의 발달은 공급 과잉을 초래하고 공급과잉과 남아도는 잉여자본의 문제는 반드시 경제공황을 유발한다고 예측하였는데 실제 그의 말대로 대공황이 발생 하였다.
 
이 공황이론은 칼 막스(Kanl Marx)와 케인즈(keynes)의 극찬을 받았는데 이것으로 대충 체면치레 정도는 한 셈이다.
 
우리나라도 맬서스 시대의 인구 증가와 과밀현상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 진행 과정중 도시로 몰리는 인구 문제는 사회적 골칫거리였다. 70년대부터 둘만 낳아 잘기르자고 했던 산아제한 운동이 엊그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경제 성장과 인구증감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게 마련이다. 대체로 인구의 증가는 경제성장을 야기 시키지만 인구의 감소는 경제 성장을 멈추게 한다는게 통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고도 성장기의 인구 증가율과 지금처럼 저성장기의 인구 증가율을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1.17명이다. 합계 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다.
 
이 수치는 OECD 국가중 최하위 수치이며 이런 출산율은 장기적으로 인구 감소를 불러오는 필연적 요소가 될 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다. 출산율 저하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청년실업 문제가 가장 심각한 원인일 것이다.
 
통계청 발표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청년 실업율은 9.9%로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으며 청년실업자 수는 43만 5000명으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15년 8월 기준 청년실업자 수는 179만 2000명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수치에는 취업 준비생 등 실질적 실업자 수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 수치는 과거 영국의 엔크로저 운동으로 도시로 강제로 내몰린 농민의 수와 맞먹는다.
 
무직 상태의 청년들은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으며 그러니 자연히 출산율은 감소하고 이것이 장기적으로 저성장의 늪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아니면 맬서스의 말처럼 이 땅의 청년들은 모두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들이어서 성욕을 억제하므로 출산율이 저하되는 지도 모를일이다.
 
과거 맬서스는 철저하게 지주와 자본가를 옹호하던 이론가였다. 맬서스가 인구론 저술 이후 동료 후배 학자들로부터 뭇매를 맞은 것도 그의 현실 처방이 너무 비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
 
맬서스 이후 많은 사람들이 대안을 제시하였는데 그중에 일생을 불꽃처럼 살다간 페르디난트 라살(Ferdinand Lassalle 1825~1864)이 있다.
 
라살은 국가 사회주의를 주창한 인물이다. 국가 사회주의란 간단하게 말하면 국가가 적극 개입하여 노동여건 개선과 빈부 격차 완화 등에 힘써야 한다는 이론이다.

라살이 조금 더 오래 살아 독일 정치의 헤게모니를 장악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항상 남아있다. 지금의 독일 사회민주당(사민당)은 라살의 정치 이념을 계승한 정당으로 독일 정치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맬서스가 인구 증가문제로 고민하던 시절 만약 국가가 적극 개입하여 지주와 자본가의 탐욕을 제어 했더라면 도시빈민의 비참함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인구감소 문제에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후 공무원 증원 계획을 발표하였는데 국회의 예산안 심의를 통과 하지 못하였다. 장기적으로 국가의 재정부담을 걱정하는 것도 일리 있지만 청년실업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2017년 6월 재벌닷컴이 발표한 국내 30대 그룹 상장사의 사내 유보금이 691조 5000억 원에 이른다. 30대 그룹 비상장사를 합치면 10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일정 금액이 넘는 유보금에 대하여 중과세하여 재원을 마련하든가 아니면 기업 스스로 중과세를 피하기 위하여 유보금을 투자하여 일자리를 만들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재벌의 곳간은 넘쳐나고 청년들의 호주머니는 비어 있다면 과거 양모 생산을 위하여 무자비하게 경작지에서 농민들을 내몰던 시대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맹자는 세상에 불효가 세가지 있는데 그 중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불효라고 하였다.(不孝有三 無後爲大 孟子 離婁篇)
 
청년실업 문제는 이 땅에 수많은 불효자를 양산하는 일이며 경제의 동력을 멈추게 하는 중대한 문제이다. 비록 무술년에 태어난 팔자 드센 자식이라도 이들에게 자식을 낳도록 해줘야 되지 않겠는가.
 
오늘 하루 비탄에 빠져 방황하고 있을 이 땅의 젊은이들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외 기고는 본사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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