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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페르시아 왕자 아브틴과 신라 공주 파라랑의 사랑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홍근진기자 송고시간 2018-02-11 10:18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58
남북통일 기원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본지는 지난해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년2개월 동안 16개국 1만6000km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중국과 북한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예정인 통일기원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의 기고문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편집자주] 
 
아제르바이잔서 이란으로 넘어가는 국경 '아스타라'에서 길에 꽃마차가 지나가고 있다.(사진=강명구)

이란으로 넘어오는 길은 길고도 험난했다. 길이 멀고 험난했다는 것이 아니라 절차가 복잡하고 지난하였다는 말이다.

거기다 자동차 보험료를 한 달간 800달러를 달라고 해서 내가 거의 미친 듯이 당신들 미쳤냐고 소리를 지르니 600달러 내라고 한다.

200달러를 그 자리에서 깎아서 기분이 좋아야 할 것 같은데 아직도 왠지 삥땅 뜯긴 기분이다.

이렇게 국경 넘는 일이 어려울 때마다 나는 평화통일이 된 조국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이 꿈이지만 또한 국경 없는 세상을 꿈꾸어본다.

내가 가고 있는 이 실크로드는 과거의 길이고 미래의 길이지만 현재의 길은 아니다. 첨예한 국가이기주의로 이 길은 동맥경화에 걸려있다.

금방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르는 페르시아 왕자로 떠오르는 귀에는 가깝고 눈에는 먼 나라.

이란 중동은 언젠가부터 서구의 눈으로 바라봐서 우리에게 가장 오해가 많고 편견의 먼지에 뒤덮인 곳이다.

거기다 세계에서 북한과 함께 미국에 맞장뜨는 유일한 나라이다.

미국에 맞장뜨면서 코피 흘리는 일반 시민들의 삶이 국경에서부터 적나라하게 보이는 듯해서 애처럽고 슬프다.
 
아제르바이잔서 이란으로 넘어가는 국경에 '아스타라'라는 도시에서 어린이들과 함께.(사진=강명구)

사실 어제 선교수님과 같이 국경 검문소에 왔다가 서류미비로 다시 돌아가 하룻밤을 아제르바이잔에서 더 자고 나만 홀로 넘어왔다.

이번엔 차량 등록에 내 이름으로 되지 않아서 몇 시간을 허비하다가 간신히 꼬박 1박 2일 만에 넘어와서 국경에서 기다리는 김태형 학생을 만났다.

태영이가 내가 뛰는 일에만 집중하게 운전도 잘해주고 잘 보필하겠다고 하는 말에 괜히 눈시울이 감돈다.

아침도 시원치 않게 먹어서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김치에 생선 사온 것을 넣고 끊인 희한한 찌개를 끊여서 같이 배부르게 먹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거쳐서 페르시아 문명.

그리고 오스만 제국이 한 시대를 풍미하고 바로 갈등과 전쟁이 난무하고 그 대부분은 산유국으로 오일머니를 거머쥔 현대사만이 우리가 아는 중동 역사의 전부이다.

그러나 이 지역이야말로 문명의 시원으로 인간의 지적 유산과 문화를 발전시켜 인류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곳이다.

곡물의 재배와 가축의 사육이라는 혁명적인 삶이 여기에서 시작하여 이를 주변 세계에 전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종교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나를 위해 운전도 해주고 도와주러 서울에서 온 김태형 학생을 이란 국경에서 만났다.(사진=강명구)

찬란했던 오리엔트 문화의 토양에서 그리스 로마 문명이 꽃을 피웠고 서양문화의 뿌리는 이렇게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19세기 산업혁명을 주도한 서양은 백인우월주의와 기독교 중심사상으로 이란과 중동을 이교도, 이문화로 의도적으로 폄하하고 축소 왜곡시켰다.

거기에 더해서 미국은 미 정부에 호의적인 정권은 독재자라도 지원했고 자기들과 대립하는 정권은 악의 촉으로 몰아세우고 세계여론을 주도하였다.

미국은 언제나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군사제재 경제제재라는 양날의 칼을 휘둘러왔다.

이란에는 약 1400년 전 기록된 쿠쉬나메(Kush Nama)라는 귀한 구전 서사집이 전해져 내려온다.

'나메'는 서사집이라는 뜻이므로 쿠시나메는 쿠시의 서이다. '쿠쉬'는 실존인물이라기 보다는 구전상의 영웅이다.

이 책에는 페르시아, 당나라, 신라 이야기가 나온다.

이 속에 우리나라 기록에는 없는 페르시아 왕자 아브틴과 신라 공주 파라랑의 애틋한 사랑이 결실을 맺어 결혼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가 훗날 페르시아로 돌아와 영웅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제르바이잔과 이란 국경에 있는 아스타라는 바다같은 호수 '카스피해'와 접해 있다.(사진=강명구)

7세기 중엽 아랍인의 침공으로 사산 왕조 페르시아(226–651)가 망한다.

페르시아 왕자인 아브틴은 난민들과 함께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중국으로 가서 정착하여 산다.

중국의 정세가 요동을 치자 그 당시 황금이 풍부하고 미인이 많기로 알려진 한반도에 있는 신라 왕국까지 찾아온다.

이 서사시의 묘사로는 정의롭고 현명한 신라왕 타이후르는 패망한 나라의 왕자 아브틴 일행을 두 왕자를 보내어 따뜻하게 맞이한다.

아브틴이 본 신라의 궁전은 달처럼 아름다운 인형 같은 선녀들이 넘쳐나고 향기로운 낙원과 같았다.

진정으로 임금이 거처하는 낙원 같은 궁전은 금으로 덮여있고 모든 의자에는 사파이어가 박혀있었다.

황금으로 장식된 신비로운 나라 신라에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이 오자 춘심이 동한다.

아브틴 왕자는 왕궁을 거닐다 타이후르 왕의 딸인 신라 공주 파라랑을 보는 순간 심장이 멈추어지는 전율을 느낀다.

애틋한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국경도 초월하고 인종도 초월하며 결혼을 하게 된다.
 
아제르바이잔의 랜캐란에서 아스타라로 가는 길 한 식당에 있는 페르시아 왕자 인형.(사진=강명구)

얼마 후 둘 사이에 떡두꺼비 같은 아들 페레이둔이 태어난다.

신라 공주는 아브틴과 함께 아들 페레이둔을 안고 머나먼 페르시아로 건너간다.

그러나 애처롭게도 신라 공주 파라랑은 전쟁으로 남편을 잃는다.

하지만 한국 여인의 억척스러움으로 온갖 시련을 겪으며 아들을 지켜내 페레이둔이 장성하자 사람들을 규합해 조상들의 원수인 아랍군을 물리친다.

그는 페르시아의 영웅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다는 내용이다.

이란의 민족 설화에 ‘바실라’라고 부르는 수억만 리 떨어진 신라가 등장한다는 것이 신기하고도 반갑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은 페르시아의 쿠쉬나메 서사시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쿠시나메의 줄거리는 다름 아닌 우리나라 역사 속에 신라 공주와 페르시아 왕자간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이야기였다.

여기에 신라왕 타이후르는 태종 무열왕일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당연히 신라공주 파라랑은 그의 딸이다.

그런데 푸치니가 쿠시나메를 읽고 깊은 영감을 얻었을 때 서양은 한국을 잘 알지 못했었다.

그 때 그들이 아는 동방의 신비로운 나라는 일본이었다. 그래서 나비부인의 무대는 경주가 아닌 나가시키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아제르바이잔과 이란의 국경지대 랜캐란에 신라의 도자기를 닮은 모양의 조형물이 있다.(사진=강명구)

쿠시나메는 한국과 이란이 교류의 역사를 최소한 120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 쿠시나메는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우리에게도 귀한 문학작품이다.

1200년 전 페르시아 사람들은 신라와 교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신라를 황금의 나라라고 불렀다.

신라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려하지 않는다고 사료는 말한다.

신라는 금이 너무 많아 심지어는 개목걸이도 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가옥도 비단과 금실로 장식했다고 이야기 했다.

경주에서 발견되는 페르시아계 유물과 서역인의 모습을 한 무인상(象)을 보면 신라와 페르시아가 교류를 증명하고 있다.

실제로 경주에 무슬림 거주지역도 있었다고 한다.

신라 천마총에서 나온 검푸른 감색의 유리잔, 경주 계림로에서 새로 길을 내는 공사 중에 발견된 황금검은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로 전해졌다는 유물들이다.

신라의 황금문화는 유라시아에서 전해 받은 다양한 문화 요소를 신라특유의 미적 감각으로 재탄생시켰다.

폴로(Polo)는 페르시아에서 시작한 지극히 유목민적인 운동경기이다.

이때 신라에는 폴로와 비슷한 격구경기가 있었는데 그 옛날 두 나라가 A매치를 벌였다.

결과는 두 판 모두 페르시아 팀의 승리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기록이 없으니 억울하지만 폴로경기의 대표팀 전적은 그대로 받아드려야 한다.

나는 신라 공주와 페르시아 왕자의 사랑이 오간 이 길, 황금보검이 오간 이 길을 달리면서 왜 이들이 대장금과 주몽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던가를 사유해본다.
 
※사외 기고는 본사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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