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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테헤란 밤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이 낯설지 않다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홍근진기자 송고시간 2018-03-04 10:03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66
남북통일 기원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본지는 지난해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년2개월 동안 16개국 1만6000km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중국과 북한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예정인 통일기원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의 기고문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편집자주]
 
테헤란 이태리 식당에서 영국이 친구 마단나의 여동생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강명구)

이제 길 떠나온 지도 6개월이 지났다. 이때쯤이면 고향과 가족, 친구들을 향한 지독한 향수가 묵은지처럼 곰삭아간다.

카스피 해의 파도는 이렇게 미칠 듯이 밀려오는 그리움에 비하면 참 점잖고 온순한 편이다.

그렇게 시리도록 가슴을 파고드는 그리움도 매순간 변화하는 눈의 즐거움과 매일 만나는 새로운 인연으로 위안을 얻는다.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거대한 장벽이 아니다. 우리 앞에 놓인 높은 산이 아니라, 신발 속의 작은 모래알이 발걸음을 중단시킨다. 나는 달리면서 수도 없이 산발을 털어낸다.

지원차량의 엔진 오일이 자꾸 샌다. 정비소에 들어가서 고치려고 물어보니 이 차는 테헤란에 가서야 고칠 수 있다고 한다.

테헤란에도 폭스바겐 서비스센터는 세군데 밖에 없다고 한다. 이란은 목요일 금요일이 공휴일이다.

오늘이 수요일이니 오후 늦게나 테헤란에 도착하면 목금 쉬고 토요일 하루 작업을 한다고 쳐도 일요일이나 차를 찾을 수 있다.

이제 할 수 없다.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도 간 길에 해결해야한다.
 
지원차량 엔진 오일이 새서 수리를 맞기고 만난 해당 차량 서비스센터 CEO와 면담중.(사진=김창건)

마음의 여유를 찾아 떠나온 길이지만 마음은 언제나 조급하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어쩔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격언에 순종한다.

하늘이 내게 준 휴가라고 받아들이고 푹 쉬어야겠다.

지난번 테헤란에 왔을 때는 내 친구가 이란에 근무할 때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던 여자를 만나 저녁이나 같이 하려고 했는데 연락을 못하고 와서 그녀로부터 다음에 올 때는 꼭 연락을 하라는 아쉬운 전화를 받은 참이었다.

그녀와 만난 곳은 테헤란에서 비교적 좋은 분위기의 이태리 식당이었다. 마단나는 여동생과 같이 나왔다.

처음 만나는 사이지만 그녀는 식당 문을 들어서자마자, 눈동자가 마주치는 순간부터 나를 알아보고 내게로 다가왔다.

아마도 내 옷차림과 한국인의 생김새를 보고 대번에 알아본 모양이었다.
 
테헤란 이태리 식당에서 영국이 친구 마단나와 그녀의 여동생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사진=강명구)

그녀는 오래 전에 내 친구 영국이와 근무하면서 한국인에 대해서 좋은 감정이 생겨서 테헤란에 오는 한국 손님에게 식사대접이라도 하고 싶었다고 했다.

페르시아의 두 공주님과의 시간은 꿈결처럼 흘어가고 있었다.

낯선 여인과의 만남은 호기심과 어색함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마치 전생에 내가 신라의 왕자로 페르시아의 여인과 인연이 있었던 듯 어색함은 간데없다.

금방 나의 평화마라톤이야기며 이란에서의 느낀 점과 궁금한 일들과 그녀들이 한국에 대하여 궁금한 일 들 등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녀는 내일 자기 조카 니샤의 9살 생일인데 혹시 내일 테헤란에 있으면 집에 와서 같이 저녁을 하며 파티를 즐기자고 하였다.
 
마단나의 조카 니샤의 9살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강명구)

길 떠나온 지 6개월 만에 처음으로 현지인들의 파티에 초대받아서 갔다. 파티는 그들의 삶의 일부를 엿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다.

저녁은 9시가 넘어야 먹지만 그 전에 오면 스낵하고 음료수는 있으니 6시 반쯤 오면 좋겠다고 해서 시간을 맞추어 갔다.

무엇보다도 술이 있다는 말에 귀가 갑자기 커졌다. 술을 어떻게 구하냐고 했더니 그런 건 걱정 말고 어떤 술을 좋아하는지 알려주면 보드카, 위스키, 맥주, 와인 다 준비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지금 몸이 많이 지쳐있어 독주는 못 마시고 와인이면 좋겠다고 했다.

6시 반은 저녁식사로 이들에게는 무척 이른 시간이었다. 일찍 도착한 아파트는 평수가 상당히 넓었다.

테헤란에는 북쪽의 토찰산 자락이 서울의 강남에 해당된다고 한다. 남쪽으로 갈수록 생활수준이 떨어진다.

9시가 다 되어서야 사람들이 부부동반해서 왔고 놀랍게도 몇 명의 여자들의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마단나 남편에게 이란에서 저렇게 입고 다녀도 되냐고 귓속말로 물어보니 거리에서는 종교경찰이 단속을 하고, 저렇게 입고 차를 타고 이동하여 어떤 특정한 장소에 간다고 한다.

사람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은 인력으로 아무리 막아도 겨울 얼음장 밑에서 싹트는 생명과 같은 것이다.
 
마단나의 조카 니샤 생일 파티에서 후카 또는 시샤라 불리는 물담배를 피우고 있다.(사진=강명구)

술잔이 돌아갔고, 음악이 흘러나왔고 여자들의 몸이 음악에 맞춰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쪽 한 구석에서 후카 또는 시샤라 불리는 물담배의 연기가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우리나라 사람들 술잔을 돌리듯 담배파이프를 돌아가면서 빨며 물에 타르가 걸러진 하얀 연기를 뿜어낸다.

여자들도 예외 없이 돌아가면서 하얀 연기를 빨아서 뿜어낸다. 나도 이들과 하나나 되는 의식으로 담배를 끊은 지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연기를 빨아드리다가 재채기를 하는 사고를 치렀다.

담배 연기가 가슴을 파고들고 와인이 핏줄을 타고 빠른 속도로 몸으로 퍼져나갈 때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왔다.

우린 다함께 두 손을 손목에서 교차하며 무릎은 약간 구부리고 엉덩이를 흔드는 신나는 춤을 추면서 하나가 되었다.

그 중간 창건이가 한국노래를 두 곡을 불렀고 나는 ‘Love me tender’를 부르다 가사를 잊어버려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그리 멀 것 같았던 테헤란이 이웃처럼 가까이 느껴지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테헤란에는 '서울의 거리'가 있고 서울에는 '테헤란로'가 있다. 호메이니궁 야경.(사진=김창건)

처음엔 10시쯤에는 작별인사를 하고 미리 나오려고 갔는데 10시나 되어서 저녁이 나오고 저녁식사가 끝나자 생일케이크 자르는 순서가 있었다.

시간은 11시가 넘었고 내가 마시던 와인 병은 비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한창 흥겨워할 때 우리는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헤란 밤하늘에 휘영청 떠있는 보름달이 낯설지 않다. 테헤란에는 ‘서울의 거리’가 있고 서울에는 ‘테헤란로’가 있다.

1973년 팔라비왕의 한국 공식방문을 기념해 강남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테헤란로라고 명명했다.

테헤란의 서울로는 3km에 이르는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중요 도로이다.

유라시아대륙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평화마라톤이 몸은 고되기는 해도 이렇게 중간 중간 우정과 사랑이 싹트기도 하고 평화의 담론을 펼치기도 하며 거리의 간격을 마음으로 좁히는 보람으로 거친 그리움을 잠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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