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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76

[기고]실크로드를 호령하는 당나라 장군이 된 '고선지'
남북통일 기원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아시아뉴스통신= 홍근진기자) 기사입력 : 2018년 04월 15일 11시 36분

본지는 지난해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년2개월 동안 16개국 1만6000km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중국과 북한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예정인 통일기원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의 기고문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편집자주]
 
우즈베키스탄 Jizzax에서 Amir Temur로 가는 길에 만난 순진무구하게 생긴 아이 모습.(사진=강명구)

우즈베키스탄은 아직도 우리에서 낯선 나라이다. 그러나 친근감이 가고 신비하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나라이다.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파미르는 짧은 두세 달의 여름 동안 생명들의 삶이 이어지고 나머지는 한겨울의 혹독한 추위가 계속되는 땅으로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그곳을 넘어야 했던 실크로드, 실크로드의 중심 사마르칸트의 역사에 우리 조상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그 발자국은 지금 다 바람에 날아갔지만 바람에 배어있는 역사가 나를 여기까지 유혹하여 끌고 왔다.
 
이 길을 건너간 비단은 백 곱절의 가격으로도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고, 이 길은 건너는 자 거상이 되고 고승이 되었다.

이 길을 헤쳐나간 자 영웅호걸이 되고 천하제왕이 되었다. 이 길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스타의 산실이었다.

이 길을 지나오면서 쓴 여행기는 언제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고전으로 남아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면서 다른 문학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이 길은 지나온 종교는 세계 종교가 되었고, 이 길을 건너온 발명품은 세계문명을 바꾸어놓았다. 철이 그랬고 종이가 그랬고 화약이 그랬다.

이 길에 결코 비단이 깔리지는 안았지만 거친 황무지를 목숨 내걸고 건너서 살아온 자는 부와 명예와 권력 중 최소한 하나는 손에 쥐었다. 살아서 가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면류관을 썼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Jizzax로 가는 길에 몽골 '게르'와 비슷한 유목민 숙소.(사진=강명구)

아무다리아 강을 건넌 혜초는 안국 부하라를 경유하여 강국 사마르칸트로 입성한다. 사기에 대월지국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파미르를 넘어서 중국으로 들어갔고, 그 전에 당나라와 혈전을 벌이던 연개소문의 사신들이 이 파미르를 넘어 우즈베키스탄으로 왔다.

그리고 이곳에 큰 족적을 남긴 이로 고구려의 유민으로 당나라 총사령관이 된 고선지가 있다.
 
1300여 년 전 한반도는 지금처럼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당태종이 동아시아를 모두 평정했지만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나라가 고구려였다.

당시 당나라는 지금의 미국과 비견되는 나라이다. 지금 미국에 유일하게 맞짱뜨는 나라가 북한인 것도 우연이라기에는 절묘하다.

신라는 나제동맹을 깨고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고구려를 압박하고 있었다. 당나라와 치열한 전쟁을 치르던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당을 견제하는 동맹 세력이 절실하였다.

그는 동맹국을 찾으러 몽골의 초원을 거쳐 서역까지 사신을 보냈다. 실제로 661년 제2차 고당 정쟁 중 돌궐의 부족 철륵이 당나라를 침공하여 당나라 군 일부가 철수하는 바람에 고구려가 전쟁에 승리를 하기도 하였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Jizzax로 가는 길에 바위틈 동굴 입구에 남아있는 흔적.(사진=강명구)

아프라시압 궁전 터에서 발견된 서벽의 벽화에 조우관을 쓰고 환두대도를 찬 사신의 모습이 이때의 역사를 잘 설명해준다.

중앙에는 바르후만 왕과 돌궐 왕의 모습이 크게 그려져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벽에는 당나라 공주로 추정되는 인물이 배를 타고 있다.

당시 바르후만 왕은 등거리외교를 펼치며 돌궐과 친하면서도 당나라에서 벼슬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평양성과 사마르칸트까지는 약 8000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의 조상들은 조국이 풍전등화에 놓였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필사의 외교전을 치르러 이 먼 곳까지 온 것이다.
 
아무다리아 강을 건넌 혜초는 안국 부하라를 지나서 강국 사마르칸트로 입성한다. 사기에 대월지국으로 알려진 곳이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여기에는 불교적인 내용 이외에도 그가 보고 느낀 각 지역의 풍습과 생활, 사회제도 등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 따르면 중인도에서는 어머니나 누이를 아내로 삼는다거나, 여러 형제가 아냐를 공유하는 이색적인 풍습 등이 기록되어 있다.

혜초는 카슈미르에는 노예제도나 인신매매가 없다는 이야기도 한다. ‘왕오천축국전은 프랑스 탐험가 펠리오가 중국의 둔황의 천불동에서 발견하였다.

안타까운 것은 원본은 3권이었는데 현재 남은 것은 약본이며 그마저도 앞뒤가 떨어져서 전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Jizzax로 가는 길에 언덕위 양치는 목동이 손을 흔들다.(사진=강명구)

고구려의 유민인 고선지가 어떻게 당시 세계 최강의 당나라 군대를 이끄는 총사령관이 됐고 실크로드를 호령하는 영웅호걸이 될 수 있었을까?

무사가 되어 무공을 세우고 그 나라에 충성하는 일만이 나라를 잃은 유민에게 유일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고선지의 삶은 중국 서부의 간쑤성 우웨이에서 시작되었다. 이곳은 예로부터 중국과 이민족의 전쟁이 끊임없이 펼쳐지던 곳이다.

그의 아버지 고사계는 처음에 하서군에 하급 군인으로 근무했다. 그 뒤 고선지는 안서도호부로 이동하는 아버지 고사계를 따라 서역 깊숙이 이주했다. '쿠차'가 그곳이다. 
 
1300년 전 고선지는 1만의 대군을 이끌고 세계의 지붕이라고 일컫는 해발 평균 4000m나 되는 파미르 고원을 행군했다.

그가 이끄는 1만의 당나라 대군은 747년 여름 1만의 적군이 기다리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의 난공불락 와칸계곡 절벽을 타고 넘었다.

이곳은 에베레스트 산만이 더 높을 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악지역이다. 고선지가 싸워서 이기지 못 할 상대는 없었다. 무려 72개국의 나라가 그의 앞에서 무릅을 꿇었다.
 
탈라스 강에서 닷새 동안의 치열한 전투에서 당과 연맹을 맺은 부족의 배신으로 고선지의 당나라군은 패하고 말았다. 중국의 중앙아시아에 대한 지배권은 이때부터 상실하게 된다.

이 전투 이후 승리를 거둔 이슬람 제국은 사마르칸트에서 중국의 포로 등의 제지 기술자를 모아 제지공장을 지었다고 한다.

이 공장에서는 중국이 비밀로 지켜왔던 종이 제작법을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종이 사용이 이슬람 세계에 전파된 것은 이 무렵이었고, 이후 13세기에 유럽으로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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