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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77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홍근진기자 송고시간 2018-04-20 08:35

[기고]까레이스키와 함께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남북통일 기원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본지는 지난해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년2개월 동안 16개국 1만6000km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중국과 북한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예정인 통일기원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의 기고문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편집자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바부르 서울공원에서 열린 환영대회에서 어린이들과 기념촬영.(사진=강명구)

그 옛날 석국(石國)이라 부르던 타쉬켄트로 들어서는 발걸음은 왠지 모르게 힘이 붙었다. 습도가 없는 초원의 봄 공기가 상쾌하다.

보석과 보석가공 기술자가 많아 중국인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이곳은 750년 고선지 장군이 한때 점령하고, 이 나라 왕을 사로잡아 당나라 장안까지 데려갔었던 곳이다.

이렇게 시작한 우리와의 슬픈 인연은 한참 후에 까레이스키라 불리는 고려인의 이주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또 81년 후 나의 평화마라톤의 중간지점으로 내게는 잊지 못할 도시가 되었다.

타쉬켄트는 내 여정의 절반을 우여곡절 끝에 마치고 새로운 절반을 달리기 시작해야 하는 곳이다.

처음 러시아는 변방인 연해주를 개척하기 위하여 연해주로 이주해오는 한국인들에게 토지도 제공하고 여러 가지 혜택을 주면서 정착하도록 도와주었다.

많은 동포들이 수월하게 연해주에 정착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민족운동도 펼치며 의병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던 것이 1920년부터 태도를 돌변하기 시작했다.

만주사변으로 일본의 팽창을 우려한 소련은 숫자가 많고 단합력이 강한 연해주에 살던 까레이스키를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나자 그해 10월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켰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바부르 서울공원에서 열린 환영대회에서 권용우 대사 환영사.(사진=강명구)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거주 한인 강제이주 결정을 내리고 2~3일 내로 갑자기 이동 준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스탈린이 동원한 124대의 시베이아 횡단열차의 가축운반 칸과 화물운반 칸에 짐짝처럼 실린 동포들은 11월의 혹한과 배고픔에 시달려야했다.

그들은 그날 그 짐칸에서 얼마나 무섭고 기가 막히고 막막했을까? 상상하는 내 가슴이 금방 먹먹해진다.

까레이스키를 생각하면 잃었던 가족처럼 안타깝고 슬프고, 또 잘 살아줘서 고맙고 자랑스럽다.
 
힘없는 나라에 태어난 죄 밖에 없는 이들은 이때 우즈베키스탄에 7만6000명, 카자흐스탄에 9만5000명이 분산 이주되었다.

이들은 다시 다른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그리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으로 옮겨 5대에 걸쳐 거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소련정부는 이들에게 한국말 사용을 금지시켰고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였으나 고려인들은 이곳 우즈벡인들의 따뜻한 환대와 도움으로 토굴과 움막을 짓고 꿋꿋하게 정착해 삶을 이어나갔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바부르 서울공원에서 열린 환영대회에서 대동놀이 평화문화제.(사진=강명구)

그들은 성실하게 사막을 개간하여 논을 만들고 벼농사 등 농작물을 심었다. 그들은 이곳을 전세계에서 벼농사가 가능한 가장 북쪽지역으로 바꾸는 기적을 일구었다.

이곳은 북위 47도이다. 그들이 모여 살던 곳은 까레이스키 콜호즈(한인 집단 농장)라고 불렸다.

그들은 억척스럽게 살았고, 자식들을 공부시켰고 소련시절 노력영웅 200명 가운데 120명을 배출시키기도 하였다.
 
우리는 그들을 잊고 살았으나 그들은 조국을 잊지 않았고, 우리의 조국은 둘로 갈라졌지만 그들의 기억 속의 조국은 언제나 하나였다.

그들이 되돌아 갈 조국도 하나였다. 그러니 조국의 통일이 우리보다도 더 절실할 지도 모르겠다.

그 간절한 까레이스키의 염원이 나의 절반의 성공을 열광적으로 축하해주는 이유일 것이다.

까레이스키의 후손들과 우리교민들 그리고 한국이 좋아서 한국어를 배우는 현지인들이 300여 명의 환호는 나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과한 것이어서 통일된 조국의 이름으로 받아들였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바부르 서울공원에서 열린 환영대회에서 대동놀이 평화문화제.(사진=정연진)

공산주의 소련연방에 속해 있다가 독립해서도 독제자의 통제를 받던 우즈베키스탄에서 정부의 공식행사가 아닌 시민들이 300여 명이나 모여 경찰 사이드카의 호위를 받으며 가두행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더구나 고려인 이민역사에도 길이 남을 일이라고 한다.

북과 꽹과리의 장단에 맞춘 신명나는 한민족의 행진이 타쉬켄트 도심 한복판에서는 진행되는 장면은 한국에서 취재를 위해서 날아온 KBS 취재팀과 우즈벡 공영  TV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랜드 미르 호텔 앞에서 시작된 평화행진은 바브로 공원까지 아이들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를 아우르는 현지동포와 고려인들의 평화한마당 열기로 가득 찼다.

중앙아시아의 그 척박한 땅에도 우리 고려인이 씨 뿌리고 농사 지으며 자리 잡았듯이 평화의 씨도 이 격랑이 몰아치는 시대에도 싹을 피워내고 있다.

이 곳 바부르 공원 한가운데에 80여 년 전 고려인들이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한겨울에 내던져지다시피 이곳에 왔을 때 따뜻하게 맞아 준 우즈베키스탄 시민들의 우정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국정부가 조성한 서울공원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자리 잡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바부르 서울공원에서 LA서 온 김현숙씨가 발을 씻어주고 있다.(사진=강명구)

서울공원에는 서울에서 응원오신 분들과 LA의 정연진, 파리의 임남희 님이 김봉준 화백이 준비한 ‘평화의 띠’ 준비를 마치셨다.

특히, 8000km를 달려온 내 발을 닦아주는 세족식 행사에는 김종근 님이 특별히 지리산 계곡물을 떠와서 역시 LA에서 온 김현숙님이 내 발을 씻겨주었다.

8000km를 달려온 발의 피로뿐 아니라 몸과 마음의 피로도 한꺼번에 싹 가시는 듯 했다.

분위기는 고조되고 아리랑이 울려 퍼졌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목이 터져라 함께 부르니 금방 눈시울이 적셔졌다.
 
나는 머나먼 나라 우즈베키스탄에서 과분한 환송을 받았다.

전직 교육부 장관인 지랏씨가 호텔까지 찾아와 학생들에게 지금까지 유라시아를 달려온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부탁하셨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가서 학생들과 나누었던 시간을 내게 소중하고 귀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나는 60에 비로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세계 기록 도전에 나섰으니 이제 20세 전후일 그들에게 당신들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므로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나이가 71세이신 지랏씨는 이 도시에 들어오는 길에는 나와 함께 10여 km 같이 동반주도 해주고 떠나는 날에는 손으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은 우즈베키스탄 전통의상을 손수 입혀주면서 내게 몇 번이고 ‘영웅’으로 불러주었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바부르 서울공원에서 평화문화제 사절단과 기념사진을 찍었다.(사진=강명구)

지금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을 배우고 따라잡기에 최선의 노력을 한다고 한다.

지난해 이곳 대통령이 사상 처음 국회 연설을 하였는데 이 때 한국을 배우겠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전직 행자부차장으로 영입하기도 하고 이 날 나의 환영행사 때 이참씨가 나와서 악수를 청해서 깜짝 놀라서 물어보았더니 이곳 관광청에서 일한다고 한다.

그가 지난 정부에서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일했던 경험을 배우고자 한 모양이다.

또 이날 행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세종학교 교장 허신행씨는 26년 전 이곳에 와서 어려운 가운데 한국어 학교를 세우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한국어 학교로 키워놓았다.
 
이제 세상은 변화의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그 진원지는 한반도이다. 그 변화의 흐름은 기존의 냉전적 사고로는 읽어내기 힘든 새로운 바람이다.

보다 넓은 공간과 관념을 아우르는 전혀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가 집착해왔던 자본의 논리, 패권 경쟁과 냉전질서, 좌파 우파로 편 가르기 등은 편협한 사고라는 것이 이제 확연히 드러났다.

광대무량한 대륙에 서니 그동안 우리가 사소한 이기주의적 통념에 갇혀서 좁은 공간에서 이유도 모르는 채 서로 사랑해야 할 사람끼리 치열하게 싸워온 우매한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제 상식으로 몰상식을 걷어내는 간단한 일만 남았을 뿐이다.
 
※사외 기고는 본사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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