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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102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홍근진기자 송고시간 2018-07-21 20:23

[기고]장건의 선물 보따리 같은 유라시아 평화 초원의 꿈
남북통일 기원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본지는 지난해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년2개월 동안 16개국 1만6000km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중국과 북한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예정인 통일기원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의 기고문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편집자주]
 
중국 간쑤성(甘肅省) Yujia Zhaizi에서 뜨는 해를 바라보며 달리고 있는 강명구 마라토너.(사진=장용)

지구상에 가장 고독한 길! 신장 우르무치에서 감숙성 란조우까지의 길! 그 황량한 사막을 달리고 달리다보면 희망에 부푼 꿈을 단번에 녹여버릴 것 같은 뜨거운 태양.

굳게 마음속으로 다짐한 초심을 사정없이 날려 보낼 것 같은 거센 바람과 마주 서 있는 초라한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그 목마름은 세상의 어떤 통증과 비교할 수 없었다. 달려도 달려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듯한 무료함이 영혼까지 갉아 먹을 것 같다.

황량한 사막에서 꽃을 피운 야생화, 내 모습 같아서 발을 멈추고 눈을 맞춘다. 삶은 사막을 건너는 일, 나는 지금 끝없는 사막을 묵언수행하며 달리고 있다.

여기서도 꽃을 피워낸 야생화의 생명력이 큰 위로를 준다. 말라버린 땅이 눈물이 말라버린 슬픔처럼 푸석푸석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은 절망을 넘어야 일과가 끝난다. 이제 그 절망 너머에 희망의 문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중국 간쑤성 Yujia Zhaizi에서 Shajingzhen로 가는 길에 야생화와 포즈 잡은 필자.(사진=강명구)

하루 42km씩 달리는 최고의 육체적 탄력감이 마음의 충만감을 이끈다. 오랫동안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달리는 길 위에서 심오한 영감의 세상을 맛보게 된다.

문득 세상이 나를 버리고 나는 홀로 텅 빈 사막을 달린다는 절망감에 빠질 때도 있지만 바로 풍요로운 상상의 숲을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언제나 멋진 결과는 과정을 즐기고 우연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이뤄진다.

오아시스 마을을 지날 때 수로를 만난다. 설산의 눈 녹아 흐르는 이 물에 발을 담그면 금방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그 시원함을 좀 더 오래 즐기고 싶지만 1분도 견디지 못하고 발을 빼야한다. 눈 녹은 물에 발이 녹아 없어질 것 같다.

이 물에 미역을 감다가는 심장마비 걸리기 십상이다. 그저 머리에 물을 적시고 땀에 절은 웃통을 벗어 헹구어 입으면 그 시원함이 10분은 지속한다.
 
중국 간쑤성 Yujia Zhaizi에서 Shajingzhen로 가는 길에 오아시스에서 발 씻는 필자.(사진=장용)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이 길은 인류가 만들어 낸 길 중에서 가장 위대한 길로 일컬어지는 실크로드이다.

이 길을 통해서 무역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가 교류되며 발전하였고 그 시너지 효과로 세계사의 명운을 돌려놓았다.

지금 내가 지나는 감숙성은 옛날 흉노의 영토였다.

실크로드는 한 무제가 유사 이래로 중국인들에게 목에 가시 같은 존재인 흉노를 치기위해 결전을 앞두고 동맹을 구하기 위해 월지국으로 장건을 파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개인의 역사건 국가의 역사건 역사란 필연일 수도 있지만 우연에 의해서 물줄기가 확 바뀌기도 한다. 내가 평화마라톤을 시작한 것도 우연이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중년 사춘기가 나를 길 위에 나서게 했고, 그것이 나홀로 미대륙횡단 마라톤이었다.

나는 아무 깊은 성찰 없이 자칫 아무 의미도 없을 이 마라톤에 ‘남북평화통일’이란 표어를 내걸었었다.

그것이 내가 평화마토너로 불리게 된 계기가 되었고 그렇게 나는 평화마라토너가 되어갔다.
 
중국 간쑤성(甘肅省) 주취안(酒泉)에서 Yujia Zhaizi로 가는 길에 점심을 먹고 있는 필자.(사진=장용)

장건도 이렇게 우연히 실크로드의 아침을 연 사람이 되어갔다.

흉노로 인해 골치를 않던 한 무제는 잡은 포로로부터 우연히 서쪽 지역이 월지국이 있다고 들었다.

흉노는 월지국의 왕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어 술을 마실 정도이며 그들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 서쪽으로 밀려나 흉노와 원한관계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아직 한나라는 홀로 흉노를 물리칠 만큼 강건하지 못할 때였다.

무제는 월지국과 동맹을 맺기 위해 장건에게 100명의 궁마에 능한 장사를 내주고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하서주랑을 통해 사신으로 가도록 명령했다.

장안을 출발한 장건은 며칠 지나지 않아 흉노의 포로가 되고 만다.

그는 이곳에서 10년간 포로로 억류돼 흉노인 아내를 얻고 가정을 꾸렸지만 한나라 사신이라는 신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러다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탈출한 그는 월지국에 도착했다.

그러나 월지국은 원래 살던 곳보다 땅이 비옥하고 생활이 안정되어 강력한 흉노를 상대로 싸움을 할 엄두도, 또 그럴 이유도 없어졌다.

장건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하기로 결심한다.
 
중국 간쑤성(甘肅省) Yujia Zhaizi 근처 사막지대를 지나고 있는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사진=장용)

장건은 오손국을 거쳐, 울지국, 강하, 강거 등 많은 작은 나라들을 지나며 보고 들은 상황을 한 무제에게 상세히 고했다.

한 무제와 황실 사람들은 장건의 귀국 보고를 듣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언제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없다.

서역에는 한혈마라 불리는 명마가 있고, 아름다운 여인이 많고, 금은보화가 그득하고, 중국의 특산품인 칠기와 비단을 사고 싶어 하는 나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의 목적은 이루지 못했지만 장건이 가지고 온 서역의 진기한 물건들과 알찬 정보는 한 무제로 하여금 새로운 전략을 세우게 하였다.

그렇게 흉노와 주변국들의 정세를 더 많이 알게 된 무제는 흉노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대신 위청과 곽거병이라는 두 쌍두마차를 앞세워 과감한 전쟁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거기에 장건 또한 길을 안내하는 등 한몫을 단단히 하게 된다.
 
중국 간쑤성(甘肅省) Shajingzhen 근처 마을을 지나고 있는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모습.(사진=장용)

새로운 안목이 트인 한 무제는 BC 104년부터 101년까지 페르가나국에 군사를 보내어 왕의 목을 치고, 남북실크로드의 중요한 길목에 자리한 누란(樓蘭)도 정복하였다.

그리고 BC 60년에는 흉노마저 격파하고 서역을 완전히 손에 넣게 되었다. 이때부터 중국의 비단은 본격적으로 로마까지 팔려 나갔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기린, 사자와 같은 진귀한 동물과 호마(胡馬: 말), 호두, 후추, 호마(胡麻: 깨) 등이 전해졌고, 유리 만드는 기술도 전해졌다.

장건이 가지고 온 농산물과 가축의 종자는 전국으로 보급되었고 좋은 혈통의 말들을 번식시켜 전투력을 배가 시켰다.

이때부터 서역의 악기들이 보급되어 음악의 발전을 이룩했고 간다라 미술이 들어와 미술의 발전에도 이바지했다. 
 
중국 간쑤성(甘肅省) Shajingzhen 근처 마을을 지나고 있는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모습.(사진=장용)

이 길을 통해 중국의 비단과 종이가 서역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서역문화는 중원문화와 융합되어 새로운 중화문화로 꽃을 피워 당나라 때 최고 전성기를 맞는다.

그러다 명나라의 쇄국정책으로 이 길은 동맥경화에 걸리기 시작한다.

장건은 흉노에 잡혀 사는 동안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버리질 못했다. 조국으로부터 부여받은 소임을 잊지 않았다.

그는 원래의 임무를 완수하지는 못했지만,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문화의 개방과 융합에 크게 이바지 했다.

조국으로 향하는 나에게는 장건이 가져갔던 진귀한 물건들의 선물보따리는 없다.

다만 유라시아를 평화의 푸른 초원으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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