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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120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홍근진기자 송고시간 2018-09-26 09:28

[기고]1만 5000km를 달려가는 세상에서 가장 먼 성묘 길
남북통일 기원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본지는 지난해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년2개월 동안 16개국 1만6000km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중국과 북한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예정인 통일기원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의 기고문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편집자주]
 
추석 무렵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진저우(錦州) 지역을 달리고 있는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사진=장용)

중국의 시(詩) 중에 ‘달은 고향의 것이 더 밝네(月是故鄕明).’라는 시가 있다.

“모든 사람들은 고향이 있고, 고향마다 달이 있지만 사람들이 고향의 달만 사랑한다.”

나는 지금 랴오닝성(遼寧省)의 진저우(錦州) 지역을 달리고 있다. 중국의 하늘에도 달이 휘영청 떠오르는데 고향의 달이 그립다.

작년 추석에 이어 올 추석도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마음이 애틋하다. 

그러나 지금 마음속에 보름달처럼 꽉 차오르는 꿈을 안고 달리는 발걸음엔 힘이 붙는다.

좀 늦어지겠지만 이 길은 난생처음 할아버지 산소에 성묘를 하러 가는 세상에서 가장 먼 성묘길이다. 나는 1만 5000km를 달려서 성묘하러 가는 길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어느 나라도 추석과 비슷한 명절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각별한 추석은 없다.

그 속에 유교적인 전통이 어우러진 조상과 가족, 마을 공동체, 고향의 끈끈한 연이 녹아있다.

그 추석날 모두들 즐거워하지만 마음이 아파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실향민들이다. 
 
중국의 중추절은 단오 청명 춘절과 함께 4대 전통명절이다. 추석을 맞아 붐비는 전통시장.(사진=강명구)

나는 할머니와 아버지, 작은아버지들의 아픔을 지켜보면서 자라며 슬픔을 물려받았다.

잠시 이별인줄 알았던 핏줄을 영영보지 못하는 아픔을 안 당해본 사람들이 어찌 알겠는가?

이산가족 대부분이 고령인 점을 고려하면 늦었지만 남북 모두의 큰 결단이 절실하다.

중국의 중추절은 단오절, 청명절, 춘절과 함께 4대 전통명절이다.

월요일이지만 공휴일이라 아침의 거리는 한산하고 공원에는 모여서 기공 체조하는 사람들과 수십명의 아주머니들이 무지갯빛 부채를 들고 군무를 추는 모습과 둥그렇게 둘러서서 제기차기 모습이 정겹다.

자주 보는 모습이지만 이 사람들 제기 차는 발기술이 대단하다.

발을 앞발 뒷발 다 사용해서 제기를 차는 모습이 마치 무술영화의 신공 같기도 하다.

이렇게 발재주들이 좋은 사람들이 왜 축구에서는 공한증에 떠는 지 이해가 안 갈 정도이다.
 
월요일이지만 공휴일인 중추절 아침 공원에 모여 기공 체조하는 중국 랴오닝성 사람들.(사진=강명구)

추석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우리나라에 송편이 있다면 중국에는 월병이 있다. 영어로는 Moon cake이라 부르는 것이다.

보름달 모양으로 둥근 빵에 돼지기름, 설탕, 달걀, 호도, 밤 등 견과류를 넣어서 만들어 중추절이 되면 보름달에 이 빵을 바쳐 가족의 행운과 안녕을 비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월병은 중추절에 가장 많이 주고 받는 선물이고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고 한다.

월병의 역사는 은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다 장건이 비단길을 열고 서역으로부터 호두와 깨가 들어오면서 그것을 월병 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호두로 만든 월병을 호병(胡餠)이라고 불렀다. 중추절 밤 당 현종이 달을 보며 양귀비와 호병을 먹다가 호병의 호자가 오랑캐 호자를 연상시킨다고 투덜거린다.

휘영청 밝은 달을 바라보며 보름달의 정취에 젖어있던 양귀비는 자신도 모르게 ‘월병’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호병이 월병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랴오닝성의 한 공원에 모여 형형색색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정겹다.(사진=강명구)

중국의 중추절은 달구경이나 가을잔치의 개념이지만 우리의 추석은 대동제의 성격이 강하다. 월병은 꽉 찬 보름달과 같고 송편은 반달과 같다.

보름달은 기울어갈 것이고 반달은 차츰 커져서 만월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미래지향적이었다.

이제 그리도 오랜 세월 꽉 찬 보름달이 되고픈 우리가 바야흐로 통일을 이루어 꽉 찬 보름달 같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세계를 향한 대동제를 신명나게 펼쳐나갈 때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추석을 맞아 한국의 극장가에서는 ‘안시성’이라는 영화가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하는 것 같다.

안시성은 내가 지금 지나는 후루다오(葫蘆島)와 진저우를 조금 더 가면 랴오닝성 하이청(海城)의 동남쪽에 있는 영성자산성(英城子山城)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당나라군은 안시성을 공격하기 전 개모성, 요동성, 백암성을 함락했다. 당군은 이제 안시성을 함락하기 위해 총공세를 펼쳤다.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후루다오시(葫蘆島市) 건축물 벽에 설치된 이채로운 미술작품.(사진=강명구)

그러나 성과가 없자 당 태종 이세민은 안시성보다 높은 토산을 쌓아 성으로 쉽게 넘어가려 했다.

60여일 만에 토산이 완성되었는데 갑자기 토산이 무너지고 안시성 성주 양만춘과 병사들이 새벽에 기습 공격해 토산을 점령해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당나라 보급을 맡은 수군이 풍랑을 만나 몰살당하는 상황에 이르자 88일 만에 이세민은 전군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

이때 양만춘 장군이 추격하다가 당 태종의 눈에 화살을 정확하게 박았다.

이 지역이 옛 고구려의 땅이었거니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이 부근에는 석유시추공이 수없이 보인다. 갑자기 배가 아파진다.

668년에 고구려가 멸망하자 이곳은 요동지역에서의 고구려 부흥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신채호는 그의 <조선사 연구초>에서 하이청 부근을 고평양(古平壤), 즉 고조선의 옛 수도라고 지목했다.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후루다오시(葫蘆島市) 부근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석유 시추 시설.(사진=강명구)

고평양이니 고조선이니 하는 말 앞에 ‘고(古)’자가 붙은 것은 후의 평양,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학자들이 붙인 말일 것이니 이곳에 진짜 우리의 평양이 있었고 조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일대가 고구려의 중심지였다. 나는 가끔 내 안에 광개토대왕 유전자가 있어 ‘만주벌판을 달리는 꿈을 꾸었나!’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는 지금 그의 위엄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의 땀과 그의 말의 땀방울이 떨어졌을 이 땅 위에 나의 땀을 섞으며 할아버지 묘소에 성묘하러 가고 있다.

개인적인 성묘 길에 ‘남북평화통일’이니 ‘세계평화’니 하는 거창한 표어를 내걸어서 미안한 생각이 든다.

다시 한 번 고백하지만 나는 통일열사로 교육받거나 거창한 사상이나 이념 같은 것 없다.

더군다나 평화운동가로 내 인생의 목표를 삼은 적도 없었다. 더군다나 내 체력이란 것도 그리 대단한 것이 못되어 시작할 때 나는 내 자신도 이렇게까지 거뜬하게 달려올지 의심했었다.

그러니 나를 열사니 초인이니 이런 말로 오글거리지 않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후루다오시(葫蘆島市) 부근에서 서해를 가리키며 포즈를 취한 필자.(사진=장용)

70여 년간 남북 무장군인 백만여 명이 철통같이 지켜낸 안시성보다도 더 견고한 저 삼팔선을 뚫고서 성묘 갈 길은 도저히 없었다.

그래서 1만 5000km나 되는 우회로를 생각해냈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성묘 길을 보장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북평화통일’이니 ‘세계 평화’란 간판을 도용했다. 그러니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죗값을 단단히 치루겠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먼 길을 오는 동안 기적 같이 평화가 내 길동무를 해주었다. 평화가 내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어 행진하여 주었다.

내가 성묘를 다녀오고 또 누군가가 성묘를 다녀올 수 있다면, 추석 하루만이라도 성묘 길을 열어준다면.

그 길은 성묘 길이 되고, 그 길은 수학여행 길이 되고, 또 신혼 여행길이었다가 자유왕래 길이 될 것이다.

내가 ‘남북평화통일’이니 ‘세계 평화’란 간판을 도용한 것을 나무라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허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평화운동가로 행세를 하더라도 크게 나무라지 말고 용기를 주었으면 좋겠다.

다만 열사니 초인이니 이런 말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으니 피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국의 동해안 길을 따라 달리는 길에 가을바람이 넉넉해서 달리기에 더없이 좋다.
 
※사외 기고는 본사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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