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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종록 작가, 진안을 소재로 한 소설 ‘금척’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서도연기자 송고시간 2018-11-15 18:22

고종의 비밀 특명 제1호 금척프로젝트 다룬 팩션
 소설 '금척' 김종록 작가.(사진제공=진안군청)

밀리언셀러 작가 김종록 인터뷰

작가 소개
진안 출신 김종록 작가는 1963년생으로 성균관대 대학원 한국철학과를 졸업했다. 선 굵은 서사에 풍부한 교양과 현란한 사유, 특유의 직관이 담긴 독보적인 글을 써왔다. 마이산을 큰 바위 얼굴 삼아 성장했다는 김 작가는 청년시절 2년 동안 마이산에서 머물며 밀리언셀러 《소설 풍수》를 집필하기도 했다. 이후로 소설 《붓다의 십자가》,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 《달의 제국》 같은 화제작을 펴냈으며, 인문교양서로는 《근대를 산책하다》, 《한국문화대탐사》,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 《바이칼》 《현장 인문학》 등을 펴냈다. 문화국가연구소㈜ 대표로서 한국학 문화콘텐츠 작업과 칼럼리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Q1. 소설 금척을 쓰게 된 계기는?
A1. 대한제국의 역사는 그간 너무 많이 왜곡돼 왔습니다. 나라는 빼앗겼어도 끝내 정복되지 않은 이들이 온몸을 바쳐 피로 써내려간 국민전쟁의 역사지요. 그런 눈물겨운 역사가 일제 식민지 프레임이나 망국 책임론에 갇혀 매도되거나 희화화되는 꼴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이산 금척을 소환했지요. 마이산 금척이 고종황제에게 전달되고 비로소 올바른 국가리더십이 작동하는 역사를 담았죠. 이 소설로 진안고원 마이산이 아주 특별한 장소로 주목받고, 대한제국과 고종에 대한 재평가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Q2.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 주신다면?
A2. 이 소설은 두 개의 신문기사와 마이산 금척 전설을 버무려 완성한 것입니다. 진안고원 마이산의 금척이 소설의 주인공 금바우를 통해 대한제국 고종황제에게 전달되고, 고종황제의 금척은 1909년 9월 15일자 샌프란시스코 교민신문 <신한민보>에 한 자루의 권총삽화로 게재됩니다. 그리고 동년 10월 27일 러시아 신문 <노바야 지즈니> 기사에는 안중근이 26명의 특파독립대 일원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보도 되죠. 모두 명백한 사실입니다. 장편소설 《금척》은 뒤통수치기의 달인 고종황제가 금척정신으로 재무장하고 나서, ‘열 번은 패했으되 꼭 한 번은 크게 이기는 승리의 서사’입니다.
 
 김종록 작가의 장편소설 '금척'.(자료제공=진안군청)

Q3. 진안 마이산에는 금척전설이 있는데, 소설과는 어떤 연관이 있나요.
A3. 진안 마이산에는 조선왕조 창업자 이성계가 꿈에서 신인으로부터 금척을 받은 곳으로 유명하죠. 금척은 예로부터 백성을 다스리는 국가리더십이고, 바른 식습관과 의약의 신기술이었습니다. 그리고 반 생명이나 바른 도리에서 벗어난 것들을 베는 정의의 칼이기도 했죠. 고종황제의 금척 프로젝트는 바로 태조 이성계가 금척을 받은 장소인 진안고원 마이산으로부터 금바우를 통해 전해진 금척을 복원하면서 비롯됩니다. 결국 진안 마이산은 대한제국 저항정신의 진원지이자, 민족혼의 중심점이었던 것이죠.

Q4. 글을 쓰는 과정에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A4. 저는 마이산 암마봉을 가끔 오릅니다. 뿐만 아니라 동서남북 다양한 위치에서 마이산을 바라봅니다. 고금당 금당대에서 석양녘에 바라보는 마이산은 황금빛으로 물들죠. 그게 곧 장엄한 금척입니다. 마이산 금척이 나라가 위급했을 때, 고종황제가 있던 서울 덕수궁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상하이, 블라디보스토크, 하얼빈에서 독립정신으로 빛났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작가로서 더 없는 열락과 숙명을 절감했습니다. 《금척》이 발간되기 직전에는 진안의 두 선배님과 새벽4시에 헤드 랜턴을 켜고 해발 1133m 운장산과 그 동쪽 곰직이산에 올라 운해 속에서 드러나는 성산 마이산을 보며 《금척》의 성공을 기원했습니다.

Q5. 작가님에게 고향 진안은 어떤 곳인가요?
A5. 진안은 가난과 고난의 연대기가 서린 땅입니다. 저의 할아버지들은 마이산 아빠봉 아래 지금의 은수사 터에 정명암을 짓고 수행하셨습니다. 고종황제가 승하했을 적에는 운장산 독제봉에 단을 쌓고 남학 동도들과 북향사배하며 제사를 지내셨죠. 마흔 명의 제관들로 구성된 대규모 제사는 해마다 이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일제의 핍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가멸던 집안 살림이 기울어갔음은 물론이었습니다. 저에게 고향 진안은 핍박과 고난의 성지입니다. 지금은 관광과 힐링 명소로 떠오르고 있지요.
 
 전북 진안 마이산.(자료제공=진안군청)

진안은 ‘영성이 어린 땅’입니다. 젊었을 때 바이칼·세도나·카일라스·카미노 등 세계적인 영성기행 명소들을 두루 다녀봤습니다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정작 고향 땅의 진수를 제대로 못 봤던 것 같아요. 지천명, 오십이 넘어 다시 돌아온 나의 고향 진안의 자연환경은 국내 최고입니다. 마이산은 세계적인 명소가 분명하고요, 용담호나 운장산, 성수산, 백운산의 맑고 힘찬 기운들은 전북인의 생명력입니다. 특히 늦둥이 봄이 찾아오는 진안고원의 꽃동산은 무릉도원입니다. 머잖아 고향에 터를 잡고 내려와 명작의 산실로 삼고자 합니다.

Q6. 주 활동무대인 서울을 떠나 진안에 오기 힘드셨을 텐데요.
A6. 우선 지역문화콘텐츠 개발의 필요성에 남다른 소명을 지닌 이항로 진안군수님, 원봉진 애향운동본부장님의 제안과 이재명 진안문화원장님의 주선으로 진안에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중앙 일간지와 서울이라는 활동무대를 떠나 지방에 내려오는 데에는 남다른 결심이 있었습니다. 한 해라도 젊었을 적에 마이산 이야기를 쓰자는 생각에서였지요. 많은 분들이 제가 이곳 진안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우려를 표했습니다. 진안은 성공보다 실패의 경험이 많은 곳이었으니까요. 제가 반드시 성공해야 나중에 다른 문화인들이 활동할 여지가 생깁니다.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고 절반의 성공은 했다고 자부합니다. 《금척》이 널리 읽혀서 영화나 드라마로까지 제작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자면 책이 많이 팔려야겠죠(웃음)? 많은 애정 바랍니다.
   
Q7. 책이 금덩이처럼 묵직하고 두툼합니다. 그런데도 흥미롭게 읽혀서 술술 넘어갑니다.
A7. 원고지 2000매를 썼습니다. 두 권 분량이었죠. 그런데 출판사에서 2권은 부담스러우니 1권으로 줄이자 해서 1300매로 압축, 1권으로 발간했지요. 무척 재밌게 읽었다는 독자들이 문자를 보내올 때 기쁩니다.
   
 '금척'.(자료제공=진안군청)

Q8.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8. 제가 이번에 집필한 《금척》은 저만의 책이 아닙니다.  《금척》은 진안군민들 모두의 책이며, 전북인들, 아니 대한민국 국민의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놀라운 고향 이야기, 우리가 덮어뒀던 근대사의 충격적인 이야기이니 많이 입소문 내주셨으면 합니다. 부디 이 한 권의 책이 진안군민과 출향민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민족혼을 일깨우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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