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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검찰이 놓친 적실성이 대전시에 던지는 교훈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선치영기자 송고시간 2019-10-01 16:57

손규성 전 대전시일자리특보./아시아뉴스통신=선치영 기자

100만 명이 훨씬 넘는 인파가 갑자기(?) 모인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9월 28일 저녁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 도로에 집결해 “검찰개혁” 등을 외친 시민들의 숫자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런 시민들의 광장시위는 정치적 분노가 고조됐다하더라도 항상 예열이 필요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주제로 열 받아 모인다하더라도 100만 명 집결이라는 상징적 정점을 위해서는 소규모 집회가 여러 번 쌓이는 축적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번 과정에서는 그렇게 예비해온 과정이 없었다. 기회가 마련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격 출격한 모습이다.
 
무엇이 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전격적으로 출정을 하게 만들었을까. 검찰권 남용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가장 컸을 것이다. 시민들은 조국 법무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권 행사를 주의 깊게 지켜봤다. 주된 주시와 관심은 조 장관 일가의 ‘죄 있음’과 ‘죄 없음’에 대한 진실규명이었다.
 
그러나 수십 명의 인력을 투입한 수사가 한 달이 넘도록 ‘죄의 있고, 없음’이라는 본류보다는 피의사실 공표 등으로 여론재판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곁가지 사항만이 전달됐다. 검찰의 수사는 진실규명 보다는 조 장관 일가에게 도덕적 타락자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는 여론몰이에 더 치중했다. 따라서 시민들은 “수사라는 검찰권 행사를 통해 법무장관을 사퇴하라는 공개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라고 본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일반 시민들은 ‘검찰이 정치를 하고 있다’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치성이 짙은 검찰의 행위는 조 장관의 사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들게 했다. 이런 숨겨진 동기를 파악한 시민들은 검찰이 조 장관 집안의 ‘죄 있고 없음’을 밝혀내는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검찰개혁’을 막으려는 전략 속에서 이뤄진 ‘정치적 수사’라는 의심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로써 조 장관 일가에 대한 광범위한 검찰권 행사는 정치행위로 변질됐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키게 됐다. 일종의 ‘정치적 스노비즘’ 행태를 지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검찰의 수사는 적절성과 현실성, 정책지향성 등을 내포한 ‘적실성(的實性, relevance)이 없다’는 결론이 넓고 깊게 퍼졌다고 볼 수 있다.
 
검찰의 공적인 적실성 획득 실패는 100만 명이라는 상징적 숫자로 대변되는 검찰개혁 요구를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결정적 계기는 조국 장관 집의 11시간에 걸친 압수수색이라고 할 수 있다. 목표 물품을 정한 정교한 외과적 수술형식의 압수수색이라면 11시간의 집안 머무름은 있을 수 없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가택 압·색이 4시간 만에 끝난 사실과 크게 대비된다. 이런 시간 경과는 조 장관의 부인이나 딸의 속옷 등을 일일이 뒤집어 보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조롱 섞인 비난을 받을 만 했다. 검찰에서 2차례의 추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해 오해는 풀렸다. 하지만 그 긴 시간동안 수사관들이 집 안에서 머무르고, 점심까지 배달시켜 먹은 것은 사채업자가 조폭을 시켜 돈 갚을 때까지 집 안에서 죽치고 있겠다는 압박과 비슷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과정이 정상적인 검찰권 행사라고 볼 수 없었던 시민들이 박차고 나와 대검찰청 앞 도로를 가득 메운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가능하다. 적절하고 현실적이며 미래지향적인 검찰권 행사나 방법, 조직문화가 아닌 인권침해에 정치적 스노비즘에 가까운 검찰을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는 주권의식이 발로했다고 볼 수 있다. 적실성 획득에 실패한 검찰에 준엄한 경고장을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적실성 획득 실패는 적지 않은 후유증과 혼란을 낳는다. 적실성 문제는 대전광역시 사례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시는 최근 중구 중앙로 옛 충남도청사 안에 위치한 대전세종연구원을 유성구 전민동 옛 삼성SDS 건물로 이전하기로 하고, 소요예산을 추경에 편성했다. 대전세종연구원 이전에는 건물매입비 72억 원이 소요되고 연구원 시설로 활용하기 위한 리모델링 비용을 포함하면 약 116억 원이 필요하다. 시는 올 연말까지 소유권 이전을 마무리하고 리모델링을 해, 늦어도 내년 2∼3월까지 이전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대전시는 연구원 청사 이전에 필요한 116억 원 중, 63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나머지 돈은 연구원 스스로 충당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시는 50억 원의 추경예산을 편성해 이번 시의회 245회 임시회에 심의를 요청했다. 나머지 13억 원은 내년도 본예산에 편성할 예정이다.
 
이번 대전세종연구원의 유성 이전은 대전의 동서지역 불균형 문제와 원도심 활성화, 혁신도시 유치 등 대전시가 직면한 주요 과제수행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던지게 한다. 적절하고 합리적인 조처인지에 대한 적실성의 문제이다.
 
우선 대전세종연구원은 대전시의 싱크탱크 기관이며 공공기관이다. 시청 등 공공기관의 서구 둔산 새 도시로 이전하면서 원도심 지역인 동구와 중구, 대덕구 일대의 공동화현상이 나타난 지 30년이 지났다. 이의 해소를 위한 대전시의 직간접 재정투자가 1조2000억 원을 넘어섰지만, 해결은 아직도 난망한 상태다.
 
이런 와중에 그나마 원도심에 있는 산하기관을 인구증가와 기능유입 등의 붐을 이루는 유성지역으로 옮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원도심 활성화 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납득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더욱이 이전 대상 건물이 삼성SDS에서 사용하다 다른 지역으로 떠나 비어 있는 곳이다. 삼성이 대덕특구에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개발 등을 하던 곳으로 대덕특구의 각종 인프라 등을 활용해 기업적 이익을 창출하다 대전을 떠났다. 다소 악의적으로 표현하면, 대전에서 빼먹을 것을 다 빼먹고 더 이상 빼먹을 것이 없으니 이익을 챙기기 위해 수도권으로 이전한 기업의 건물을, 대전시가 왜 사들이는 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시민의 혈세를 들여서까지 지역의 자존심을 내팽개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지역 내 균형발전 노력을 해치는 이런 이전계획은 혁신도시 유치운동의 논리적 기반을 해칠 수 있다. 그동안 혁신도시 지정에서 제외돼 균형발전 혜택을 받지 못했던 대전은 혁신도시 대전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혁신도시로 지정돼 수도권 공공기관 등이 이전하면 이전 공공기관을 원도심에 배치해 내심 공동화를 방지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지역 안에서는 반 균형적 전략을 택하고, 외부로는 균형발전을 위한 기능과 업무의 이전을 요구하는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이해할 수 없다. 혁신도시로 경쟁을 해야 할 다른 지역에서 이 문제를 제기해 이전대상에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검찰의 적실성 획득 실패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 때문에 주권자의 무서움을 몰라 조직이기주의에 매몰되어 나타난 현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민선7기 대전시가 시민들의 뜻을 받들지 못한 채 균형발전의 큰 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전 대전광역시 일자리특별보좌관 손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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