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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KEEN Ministry Coordinator 정서영 선교사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2-19 15:50

필리핀 바기오 정서영 선교사.(사진제공=드림플러스)

Jeremiah 41
6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 울면서 가다가 그들을 만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가자 하더라
Ishmael son of Nethaniah went out from Mizpah to meet them, weeping as he went. When he met them, he said, "Come to Gedaliah son of Ahikam."
7 그들이 성읍 중앙에 이를 때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 있던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 가운데에 던지니라
When they went into the city, Ishmael son of Nethaniah and the men who were with him slaughtered them and threw them into a cistern.
8 그 중의 열 사람은 이스마엘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우리를 죽이지 말라 하니 그가 그치고 그들을 그의 형제와 마찬가지로 죽이지 아니하였더라
But ten of them said to Ishmael, "Don't kill us! We have wheat and barley, oil and honey, hidden in a field." So he let them alone and did not kill them with the others.
9 이스마엘이 그다랴에게 속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던진 구덩이는 아사 왕이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을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가 쳐죽인 사람들의 시체를 거기에 채우고
Now the cistern where he threw all the bodies of the men he had killed along with Gedaliah was the one King Asa had made as part of his defense against Baasha king of Israel. Ishmael son of Nethaniah filled it with the dead.

Ishmael son of Nethaniah filled it with the dead.(9)
끔찍한 살인이 자행되는 장면이 그대로 묘사되는 41장에선 한 사람이 얼마나 교활해지고 잔혹해지는지 알 수 있다. 더욱이 살인을 한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하게 되는 모습은 정말 끔찍하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시기와 질투로 사람을 죽인 이스마엘이 자신의 생명이 위태해 질 때마다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 그리고 그 와중에도 뇌물을 밝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결국은 생명을 부지 하기 위해 그에게 붙어 있었던 사람들이 구원자처럼 등장한 요하난과 군지휘관들의 편으로 돌아서게 되자, 이스마엘은 도망을 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같은 민족을 죽이고 또 블레셋에 대항하며 블레셋 병사들마저 죽였던 이스마엘은 도망칠 곳도 없어져 버렸다. 말그대로 사면초가이다. 

비록 한 사람의 악행이 기록된 41장의 말씀이지만 비단 이 것이 어떤 한 사람의 죄악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그동안 읽어 왔던 구약의 이야기 속에서 얼마나 자주 그리고 계속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그리고 개개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악행을 자행해 왔었는지 알기 때문이다. 욕심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르게 된다는 말씀은 결코 가벼운 말씀이 아니다. 작은 욕심으로 시작해 살인에 살인을 더하는 죄를 짓게 된 이스마엘의 상황처럼 작은 죄로 부터 시작해 결국은 자신을 궁지에 몰아 넣게 되는 죄악을 저지르게 되는 건 단 한명에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누구나 욕심을 가질 수 있다. 그 욕심이 큰 죄악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이러한 욕심을 가벼히 여기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욕심이 어떻게 발전되고 전개되는지를 이러한 사건을 통해 이해하게 되면 결코 경시해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욕심이다. 작은 것으로 시작해 크게 되고, 하나로 시작해 전체를 잃게 되는 것이 욕심이 아닐까 싶다. 

사사로운 감정과 개인의 욕망 앞에 처절하리 만치 싸우고 이겨내는 카렌의 리더분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왜 좋은 곳에서 편하게 살고 싶지 않겠는가? 굳이 그런 밀림의 사지에서 살지 않아도 되는 자격을 갖춘 이들이고 그런 선택을 한다해도 그동안 수십년을 감당해온 희생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들이기에, 그리고 누군가는 또 그 자리를 감당해 낼 것을 알기 때문에 어쩌면 수없는 갈등들이 있어 왔을 그들이다. 나가면 들어오고 싶지 않고, 들어오면 다시 나가고 싶은 그런 반복되는 감정들과 싸우며 지금까지 살아온 그들에게서 결코 욕심이란 찾아볼 수 가 없었다. 오히려 작은 것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경계하며 스스로를 더욱 경책하려 하는 그들의 삶과 매 순간의 선택은 존경 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친구들에게 툭하고 터놓은 그들의 심경의 고백이 결코 쉬이 나오는 것이 아닐 것이며 또 그 고백을 들은 자로서의 심적 고통은 마음이 타들어 갈 것 같은 고통으로 다가온다. 어찌 해야 하나... 나는 무엇해야 하나.. 그러나 그들의 고백이 나 같은 작은자가 도울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님을 알고도 고백한 것을 생각한다면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로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의 이유와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 구하고 또 구하는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주께서 들으셨음을, 그리고 주님은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들을 위해 일하심을 믿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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