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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경자년, 고양이를 잡는 쥐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이두현기자 송고시간 2020-02-28 10:27

필자-정성수 전주비전대 운영교수/시인/향촌문학회장
정성수 시인, 향촌문학회장.(사진제공=향촌문학회)

올해는 경자년으로 희망과 기회가 왔다. 쥐는 다산의 상징이자 다복의 상징으로 당사주에서는 쥐띠를 자천귀(子天貴)라 하여 식복과 함께 좋은 운명을 타고난다고 하였다.

이는 쥐가 선천적으로 눈치가 빠르고 어려운 여건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습성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에다 생태적인 해석까지 달아 밤에 난 쥐띠는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쥐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쥐는 농작물을 해치고 곡식을 훔쳐 먹으며 더러운 곳에 사는 동물로 인식되어 있다.

이런 쥐가 신앙물이 된 것은 12지신에 들면서부터이다. 12지는 한국 문화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천문, 역법에서는 방위와 시간의 개념으로 풍수, 점복, 해명(解名), 택일, 사주, 궁합 등에서 길흉을 예지하는 비결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능묘의 호석, 사찰의 불화, 민화 등에서는 제액 수호신이나 길상을 상징하는 도상 형태로 표현되었다.

그 외에도 생활 용구나 각종 장식물에서는 장식 문양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전승되는 12지 띠 문화의 핵심은 개인의 운명과 심성을 파악하는 잣대이며 개인과 상호간의 융화 또는 상충 관계를 밝히는 체계이기도 하다.

12지 동물 중 맨 처음에 나오는 쥐는 앞 뒤 발가락 수가 다른데, 앞발은 짝수(4), 뒷발은 홀수(5)로 특수하다. 그렇기 때문에 맨 먼저 자리를 잡았고 그 뒤를 이어 소(4), 호랑이(5), 토끼(4), 용(5), 뱀(0), 말(7), 양(4), 원숭이(5), 닭(4), 개(5), 돼지(4)의 순이다. 이 순서는 발가락의 숫자에 의해 홀수와 짝수로 교차하여 배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시계가 없었던 옛날에는 시간 구분을 위해 하루를 12지로 나누어 2시간을 하나의 단위로 묶어 놓았다. 열두 띠 동물의 구성은 자(子):쥐, 축(丑):소, 인(寅):범, 묘(卯):토끼, 진(辰):용, 사(巳):뱀, 오(午):말, 미(未):양, 신(申):원숭이, 유(酉):닭, 술(戌):개, 해(亥);돼지로 열두 동물을 각 시간과 그 방위에 배열하여 동물의 발가락 수와 그 시간에 나와서 활동 하는 동물을 들어 표시했다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쥐가 12지의 맨 첫자리가 된 사연을 말해 주는 설화가 있다. 즉 하늘의 대왕이 동물들에게 지위를 주고자 했다. 이에, 그 선발 기준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정월 초하루에 제일 먼저 천상의 문에 도달한 짐승으로부터 그 지위를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각 짐승들은 기뻐하며 저마다 빨리 도착하기 위한 훈련을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소가 가장 열심히 수련을 했는데, 동물들의 이런 행위를 지켜보던 쥐가 작고 미약한 자기로서는 먼저 도달한다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 중 제일 열심인 소에게 붙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정월 초하루가 되어 동물들이 앞 다투어 달려갔는데, 가장 부지런한 소가 제일 먼저 도착하였다. 바로 그 순간 소에게 붙어 있던 쥐가 얼른 뛰어내리면서 가장 먼저 문을 통과한 것이다. 소는 분했지만 두 번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쥐가 십이지의 첫 머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자신의 미약한 힘을 일찍 파악하고, 약삭빠르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쥐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의 성격은 지혜롭고 영리하다고 한다.

또한 작은 일엔 잘 놀라나 큰일에는 오히려 대범하게 대처한다. 성격이 날카롭고 냉정하며 고상한 기품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인색할 때는 한없이 인색하고 후덕할 때는 무척 후덕하여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경자년 쥐띠의 해.(출처=정성수 시인)

대담한 성격에 큰일을 당해도 걱정 없이 진행해 나가지만 평소에 남에게 믿음이 적어 의심하는 버릇이 있으며 집안에서나 사회에서도 남을 잘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특히 금전 거래 에서는 더욱 의심이 많아 큰일을 하기 어렵고 남과 같이 화목 하게 지내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남을 믿지 않고 의심 하다가 실패를 하고서 후회와 한탄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 큰 사업을 해도 사력을 다해 도와주는 사람이 적어 외롭다.

성품은 정직하고 근면하며 어떠한 곤경에 처해도 쉽게 해쳐 나온다. 순해 보이기는 하나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하고 마음의 기폭이 심해 마음 씀이 일정 하지를 못하다. 그러나 사교성과 애교도 있고 눈치도 빠르며 성품이 깔끔하여 상업적 소질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여러 사람을 위해 노력하고 일 하라는 운명이라고 한다.

쥐들에게도 시련의 시대가 있었다. 70년대 들어서면서 새마을 운동이 한참이던 시절‘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세’‘식량 증산’이라는 계몽 표어와 포스터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인구는 급속하게 늘어나고 식량 부족 문제가 심각했던 때였다.

다수확의 벼 품종 개발은 물론이고 한 톨의 쌀이라도 낭비를 막기 위해 정부는 총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판국에 쥐가 쌀을 먹어 치운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 될 수 없었다. 당시 벼를 보관하는 시설이 좋지 않아 쥐가 먹어 치우는 양이 상당했다.

대부분의 농가는 가을 추수가 끝나고 나면 짚으로 만든 가마니에 벼를 넣어 마루나 마당에 쌓아 두었다. 농사를 많이 짓는 집은 짚으로 마당에 두지를 만들어 벼를 보관하였다. 그러다 보니 쥐들이 밤만 되면 제 세상을 만난 것처럼 가마니와 짚두지를 뚫고 들어가 벼를 까먹었다.

날이 새고 나면 쥐들이 까먹은 벼쭉정이가 수북하게 나왔다. 쥐를 잡겠다고 쥐덫과 쥐약을 놓았지만 잡을 때 뿐이고 어디서 몰려오는지 끝없이 들락거렸다. 날이 어두워지면 흙담을 타고 쥐들이 이 집 저 집을 넘나들었다.

이 처럼 집집마다 쥐들이 판을 치다보니 그 피해가 막심했다. 국가에서는 범정부적인 쥐 박멸 작업에 나섰다.‘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어 죽게 되었다’‘한 집에 한 마리만 잡아도 수 만 명이 먹고 산다’이처럼 쥐잡기 구호가 요란했다. 한 마디로 쥐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정부에서는 집집마다 쥐약을 나누어 주며 한 날 한 시를 정해 전국적으로 쥐잡기 운동을 벌였다.

이 때 생긴 것이 학교 숙제인 쥐꼬리 제출이었다. 그것은 쥐덫에 고구마를 끼워 쥐를 잡으면 꼬리만 잘라 학교에 제출하는 것이다.

그 시절 새마을 운동의 주적은 바로 쥐였던 셈이다. 아이들의 숙제로 토요일까지‘쥐꼬리 5개 이상’이라는 목표가 떨어지면 식구들 모두에게 비상이 걸렸다. 길을 가다가 죽은 쥐라도 발견하면 모두 100m 달리기 선수가 되기도 하였다. 제일 먼저 달려갔지만 이미 쥐꼬리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는 순간의 낭패감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궁여지책으로 오징어 다리를 불에 구워서 진흙을 발라 제출했다가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꿀밤을 먹던 기억은 그 시대의 학생들만의 추억이 되었다. 요즘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나 청 ․ 소년들은 아마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지금 40대가 넘는 사람들의 유년 시절의 한 풍경이다.

쥐는 예로부터 재앙이나 사고 등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영물로 인식되기도 하였으며 어려운 여건도 꿋꿋이 이겨나가는 근면한 동물이자 왕성한 번식력으로 다산과 재물,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져 오고 있다.

우리들은 자기보다 힘센 사람 앞에서는 꼼짝도 못한다는 뜻으로 고양이 앞의 쥐라는 말을 쓴다. 물론 쥐는 고양이의 밥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아무리 힘센 사람도 마음먹기에 따라 이길 수 있다는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여 ‘고양이를 잡는 쥐’가 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두현 기자 dhlee3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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