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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천호동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 '의무인가 누림인가?'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1-16 00:59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의무인가 누림인가?]
(누가복음 6:1-11)

1. 안식을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의 태도 

유대 사회에는 안식일을 비롯한 각종 율법들이 있었는데,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들이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안식일 규정을  
어떤 태도로 지키고 있었을까?

(눅 6:2, 새번역) 그러자 몇몇 바리새파 사람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그들은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용도로 
율법과 안식일 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분명 그들은 안식일 규정을 철저하게 지켰을 것이다.
그러나 규정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만 했다.
즉 그들은 안식일의 정신과 율법의 정신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안식일에 대해서, 그리고 율법에 대해서 
지키기 어려운 목록만 잔뜩 만들어 놓고 
그 목록들을 세세하게 지키는 것을 자신의 의로 삼았다. 

그 뿐 아니라 그 세세한 규정들을 사람들이 지키는지 감시했고 
지키지 않는 사람이 보이면 맘껏 정죄하고 비난했다.

안식일 법을 포함한 율법을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도구, 
그리고 남을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2. 안식일을 대하는 주님의 태도

그렇다면 주님은 안식일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셨을까?
안식일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율법학자)들이 
주님을 정죄할 구실을 찾으려고 지켜보고 있었다. 

(눅 6:7, 새번역)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예수가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지 엿보고 있었다.

그 생각을 아시고 주님이 하신 말씀이 
안식일에 대한 주님의 태도와 자세를 보여준다.

(눅 6:9,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물어 보겠다.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건지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목숨 걸고 지키는
안식일 규정들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안식일에 하셔야 할 일을 하셨다.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은 '목숨을 건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손을 고치셨다.

'목숨을 건지는' 것이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이라고 천명하신
주님의 말씀을 보자 이해되는 사건이 있다.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가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서 먹어서 
바리새인들에게 비난을 받았을 때,
주님이 제자들을 옹호하신 사건이다.

남의 밀밭을 지나가다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은 
분명 잘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주님은 다윗의 이야기로 제자들을 옹호하셨다. 

(눅 6:4, 새번역)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제단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주님은 '안식일 법을 무시해도 좋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는 길을 반복해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

안식일 규정에 매여서 종교적인 행위를 자세하게 지키는 것이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함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다윗은 허기진 부하들에게 제사장들만 먹는 진설병을 나눠주었고, 주님은 허기진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허용하셨다.
안식일에는 사람을 살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3. 현대 기독교인들의 태도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니,
주일을 지키는 현대 교회와 교인들의 태도를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주일에 대한 현대 기독교인들의 태도 중에서 
두 가지 상반된 잘못된 개념이 있는 것 같다.

첫째, 주일은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는 태도다.

이런 태도를 가진 교인은,
 주일은 반드시 본교회에서 지켜야 하고 
모든 예배에 빠지지 말아야 하고 
예배를 드린 후에는 교회 안에서 봉사하고 섬기는 일에 
하루 종일을 다 드려야 한다고 믿는다. 

둘째, 자유를 강조하는 태도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인용해서
주일도 자유롭게 지키면 된다고 믿는 교인들도 있다.

이런 태도를 가진 교인은
시간이 되면 예배를 드리고, 
다른 약속이 있으면 예배를 빠뜨려도 되고,
주일이라도 놀러 가서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면 좋고,
예배를 드리고 힘든 상황이면 예배를 안 드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둘 다 틀린 태도다.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규정을 지키는 것으로 
주일을 올바르게 지키는지 아닌지를 정할 수 없다.

주일은 의무를 지키는 날이 아니라 
생명을 누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4. 주일을 올바르게 지키는 태도는?

주일을 목숨 걸고 지켜도 생명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건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이고,
예배조차 드리지 않고 주일을 자유롭게 보내면서 
참된 생명에 무관심하다면 
그것도 주일을 바르게 지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주일을 올바르게 지킨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주일은 어떤 의무를 지키는 고된 날이 아니라,
모든 의무를 탈피해야 하는 방종의 날도 아니라,
주일은 '참된 생명을 누리고 나누어주는 날'이다.

주일에는 의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참된 생명을 누려야 한다.
그리고 풍성히 누린 생명을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의무'에만 집중하면 바리새인이 될 수밖에 없고 
'의무의 파괴'만 주장한다면 신앙을 버리게 된다.

주일의 초점은 '의무'에 있지 않고 
'생명을 누리고 나눔'에 있다.

주일을 올바르게 지키려면 
말씀의 은혜를 깊이 누려야 하고 
그 은혜를 성도들과 깊이 나누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교회 공동체에 속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바르고 깊이 있는 말씀이 전해지고,  
많은 봉사나 교회 일이 아니라 
성도의 교제와 나눔에 집중하는 교회를 선택해야 한다. 

생명이 있는 공동체에 속해서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고 
그 생명을 나누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주일에 해야 할 일이다.

대면예배를 반드시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주일 예배의 형식이 대면이냐 아니냐는 
주일의 본질과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주일은 의무인지 누림인지를
깊이 돌아볼 필요가 있고,
비대면 예배를 통해서도 충만하게 생명을 누려야 하고
화상 나눔을 통해서도 성도들과 
말씀의 생명을 나누는 것이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을 잘 지키는 태도일 것이다.

5. 나는?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성도 한 분이 나에게 주일성수에 대해 물으셨다.

그 분은 남편이 불신자에 가까운 초신자였는데
주일에 친구들과의 모임이 많은데
예배를 드려야 하니 그 모임에 계속 못 가게 했다고 한다. 

남편분의 불만이 자꾸 커지고 있는데 
주일에 놀러 가서 근처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도 되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래도 좋다고, 
그곳에 가서도 예배를 드리면 되고 
다른 교회는 예배 분위기가 어떤지 살펴볼 기회되 되니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 뒤로 그분은 가끔씩 남편을 따라 주일에 놀러 가셨고 
외부의 다른 교회에서 예배 드린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조금 문제가 생겼다.
월 1회 정도 우리 교회에 오고 
대부분의 주일을 놀러 가서 외부에서 보내셨고,
친구들과 함께 노는 중에 일부러 나와서 교회에 가는 것이 어색해서 
점점 교회에 가지 않는 횟수도 잦아지셨다는 문제였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교회의 중요한 결정 과정에는
빠지고 싶어하지 않으셨다. 

예배를 통해서 누리는 생명의 경험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유를 선택해 버리면 위험해진다는 것을 그 때 알게 되었다.

반대로 주일을 집착하듯 본교회에서만 지켜야 한다고 
고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이 보아왔지만,
그런 분들은 대부분 자기 의로 가득 차 있었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은근히 또는 대놓고 비판하고 정죄했다. 

그 두 가지의 극단적인 태도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이 틀렸다고 말하면, 그리고 무엇이 옳다고 말하면 
결국 '종교적 행위'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그 두 부류의 문제는 주일에 '생명' 특히 '말씀의 생명'을 
누리지 못함에 있다. 
말씀의 생명을 누리는 날이 주일이었다면
거의 매주일에 놀러 갈 수는 없었을 것이고,

말씀의 생명을 누리는 것에 초점을 두는 주일성수를 했다면
주일성수라는 문제로 자신의 의를 삼고 
남을 정죄하고 비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목사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예를 들어서 '이번 주일에 친구 결혼식인데 결혼식에 가야 할까요?'
라고 성도 중 누군가가 질문한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간단하다.
'알아서 하세요.'다.
목사라고 해도 그건 정해줄 수는 없다.
본인이 생명을 누린다는 기준으로 선택해야 한다.
주일 성수는 '의무'가 아니라 '누림'이기 때문이다.
주일 뿐 아니라 신앙생활 전체가 '의무'가 아니라 '누림'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누리고 나눔'을 기준으로 
본인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일이다. 
어느 누구도 그 선택을 대신 해 줄 수는 없다. 

의무에 치우쳐가고 있는 기존 대형교회들의 모습도 이상하고
자유에만 집중하고 있는 반대 편의 주장도 위험하다.

문제는 그런 겉모습이 아니라 
생명을 누리고 나누는 주일의 본질을 놓쳐 버렸다는 데 있다.

온라인으로 예배한지 거의 1년이 되어간다.
감사하게도 말씀의빛교회 성도들은 온라인 예배를 통해서도 
말씀의 은혜를 누리고 성도간의 나눔의 은혜도 누리고 계신다.

언제까지 이런 모습으로 예배할까?
그건 알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그저 주어지는 상황 속에서 말씀의 은혜를 누리고 
성도들과의 나눔 속에서 또 은혜를 누리는 
'생명'에만 초점을 두면 된다고 믿는다.

말씀의 생명을 누리고 나누는 
신앙의 본질을 결코 잃지 않기를,
어떤 상황이든 말씀의 생명을 더 깊이 누리고 나누는 
나와 성도들의 삶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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