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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환 교수의 '박팽년 영정' 인정

문광부, 국가표준영정 제81호로 지정

(아시아뉴스통신= 최정현기자) 기사입력 : 2010년 01월 11일 13시 54분

 윤여환 충남대학교 회화과 교수(58)가 2년여의 산고 끝에 제작한 박팽년영정(朴彭年影幀). 이 영정이 문화체육관광부 표준영정심의위원회 최종심의에서 표준 얼굴로 통과돼 11일 국가표준영정 제81호로 지정받았다.
(사진제공=충남대학교)

 충남대학교는 이 대학 회화과 윤여환 교수(58)가 2년여의 산고 끝에 제작한 박팽년영정(朴彭年影幀)이 문화체육관광부 표준영정심의위원회 최종심의에서 표준 얼굴로 통과돼 11일 국가표준영정 제81호로 지정받았다고 밝혔다.
  
 박팽년(1417(태종 17)∼1456(세조 2))은 그의 부친 박중림과 함께 집현전 학사였고, 세조 때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육신의 한사람이다.

 박팽년은 당시 세조의 혹독한 고문으로 8일 만에 옥중에서 순절(殉節)했다.

 평소 가야금 타기를 좋아해 스스로 취금헌(醉琴軒)이라는 호를 지었다.

 그는 조상대대로 터를 잡고 살았던 회덕현 흥농촌 왕대벌 (지금의 대전시 동구 가양동)에서 태어났다.

 1668년 선비들이 그 집터에 박팽년선생유허비(朴彭年先生遺墟碑)를 세웠는데, 이상한 일은 그 비석에서 지금도 신비의 검은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어 세간에는 당시 풀지 못한 한을 표현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박팽년영정의 얼굴은 순천박씨 용모 유전인자 계측도를 토대로 제작됐다.

충남대 윤여환 교수
(사진제공=충남대)
 윤여환 교수는 2008년 11월부터 박팽년의 얼굴 특징을 찾아내기 위해 '얼굴 연구소'에 의뢰해 박팽년의 직계후손들의 집성촌인 달성군 하빈면 묘리를 중심으로 순천박씨 문중얼굴을 촬영했다.

 또 순천박씨가 가지고 있는 동일형태의 용모 유전인자를 분석한 계측도를 모본으로 해 박팽년선생의 고결한 학자적 품격과 충절의 기상을 담아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박팽년영정의 의상과 색상은 당시 고증에 따라 재현했다.

 아청색(鴉靑色) 비단으로 만들어진 단령(團領)은 깃이 완만하게 패이고 깃 너비도 좁다. 단령 안에는 붉은색 철릭(帖裡)과 청색 답호를 받쳐 입었다.

 이러한 복식은 출토복식연구소에 의뢰해 당시와 가장 가까운 출토복식 중에서 호조판서 임백령(?~1546), 판결사 김흠조(1461~1528), 변수(1447~1524) 등의 출토복식을 재현해 제작했다.

 박팽년영정의 사모와 사모날개 등은 신숙주영정에서만 볼 수 있는 가늘고 긴 형태가 보편성이 결여 돼있고 다른 영정과 일관성이 없어 결국 이색, 황희, 하연, 정몽주영정 등에 그려진 형태를 따랐다.

 박팽년영정의 대(帶)는 삽은대(鈒銀帶)를 착용했는데, 백한흉배로 된 윤중삼(尹重三, 1563~1618), 이사경, 장유영정 등에 그려진 삽은대를 참조했다.

 박팽년영정의 족좌대와 백목화(白木靴)는 조선초기영정들의 특징을 살렸으며, 의습선도 개국초기의 기상을 보여주는 듯 직선적인 표현이 많아 그 표현방식에 따랐다.

 박팽년영정의 표정과 자세는 학자적 품격과 충절의 기상이 서린 모습의 전신교의좌상으로 가로 110cm, 세로 180cm 크기의 견본채색 작품이다.

 박팽년표준영정은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육신사기념관'에 봉안되고 전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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