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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상진의 삼국지 탐구

[인천=아시아뉴스통신] 김선근기자 송고시간 2014-10-17 23:54

제12편 헌제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박상진 서울대학교 사범대 연구생./아시아뉴스통신DB

 망월폐견(望月吠犬)이 병법에 적용된 사례가 바로 비수대전(淝水大戰)입니다.

 100만 대군으로 호호탕탕 쳐들어간 전진(前秦)의 황제 부견(莩堅)은 오늘날 합비(合肥)에 해당하는 곳에서 강을 사이에 두고 동진(東晉)의 사현(射玄)과 대치했습니다.

 수적으로 우세했던 전진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 항장(降將) 출신 주서(朱序)가 동진의 편에서 군을 어지럽혔죠.

 후퇴하라고 외치는 바람에 전진의 군대는 서로 밟고 밟혀서 고작 8만의 동진 군대에게 참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일로 결국 부견은 몇 년 뒤 반군의 손에 시해되는 비운까지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오늘 이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이유, 혹 짐작하셨습니까?

 망월폐견의 백미는 예상을 벗어난 반전에 있습니다.

 이런 갑작스러운 일은 때로 결과를 뒤바꾸는 엄청난 결과를 자아내지요.

 비수대전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알 수 없다고 하는지 모릅니다.

 아마 한나라 헌제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지난 시간, 이각과 곽사의 장안 입성과 권력이동을 잠깐 살펴봤습니다.

 두 사람은 사실 왕윤의 죽음과 아무런 상관도 없었지만 운 좋게 선평문을 지키고 있다가 헌제를 잡아 출세를 했지요.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번 격입니다.

 문제는 관중사장이 이 행운에 나란히 동참하면서 시작됐다는 데 있지요.

 평소에도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는지 번조의 죽음을 시작으로 아웅다웅한 것입니다.

 섬현(陝縣)에 있던 장제(張濟)만 빼고 말이지요.

 그 상황은 일일이 다 설명드릴 필요도 없겠지요.

 목적의식을 상실한 군벌은 그저 늑대나 다름없으니 말입니다.

 한나라 헌제와 대신들은 또 다시 고통 속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조정은 그저 잔배냉적, 식은 음식과 다를 바 없었으니 말입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었다면 '헌제', 바로 그의 결단이 있었다는 차이겠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헌제 유협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황제에 올라 여러 권력자들 틈바구니 속에서 목숨만 연명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묵묵히 지켜봐야만 했고 산양공으로 물러난 이후 좀 편안해지나 싶었지만 영가의 난으로 인해 그 가족들의 비극적인 최후로 인해 후손을 절멸(絶滅)당하면서 사후까지 안타깝게 되고 만 인물이니까요.

 그러나 무엇보다 그런 그에게 가장 아름다운 비극이 있었다면 장안 대탈출, 바로 그것입니다.

 복 황후라는 평생 반려자를 만나 결혼한 지 얼마 뒤 그는 도주를 결심하고 이각과 곽사의 휴전 사이에 선평문으로 어가를 몰아 탈출에 성공합니다.

 많은 궁인(宮人)과 대신들을 데리고 당당하게 말입니다.

 기록을 보면 그가 이 탈출을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굶주림과 지침 때문이었습니다.

 백성을 도탄에 구할 생각은 안 하고 서로 권력쟁탈과 의심으로 인해 내전만 벌인 까닭에 군사들 모두 지쳐 버렸고 섬현에 있던 장제가 그 소식을 듣고 중재를 핑계 삼아 군사를 몰고 옴으로 인해 소란해진 때문이지요.

 무엇보다 그 소란을 기회로 만들어 탈출을 결심한 헌제의 이 탈출은 그의 감추어진 능력을 보여준 위대한 사건입니다.

 영제가 헌제를 후계자로 내심 생각했던 이유도 이런 면모를 보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 드렸듯 또 다시 역사는 ‘굽은 길’을 선택했습니다.

 연의에서도 상세하게 다루어지는 이 도주는 그야말로 비극적인 것이었습니다.

 이각과 곽사, 장제까지 연합한 추격군으로 인해 헌제는 장병과 대신을 많이 잃게 됩니다.

 그들은 헌제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던 것입니다.

 잠깐 1달 간 평온했던 이동은 그 후 노숙을 불사할 정도로 고통스럽게 됐고 한 때 효산(肴山) 동쪽의 계곡 사이에 갇혀 추위와 굶주림까지 덮쳤습니다.

 더욱이 이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헌제 일행을 외면하는 관동의 가식적인 제후들이었습니다.

 대의를 앞세워 거병까지 했던 그들이 정작 헌제를 죽음 앞에 수수방관하는 모순을 연출한 것입니다.

 맹주였던 원소조차 ‘천자를 봉행하는 것은 그의 뜻이 아니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저는 정치의 비정함을 봅니다.

 흔히 명분의 싸움이라고 하지만, 정치는 때로 핑계 없는 무덤과 같습니다.

 즉 죽어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죽어야만 하는 모순이 난무하는 곳이라는 얘기입니다.

 누군가의 죽음이 좋은 핑계가 되어 자기 정치적 목적에 이용당하고 인간의 당연한 감정이 선의가 아닌 악의로 악용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정치판이라는 곳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번 역시 말씀드린 것처럼, 헌제를 향해 달려온 조조인들 순수하지 않았다는 것은 당연한 결말일 것입니다.

 그 또한 한 제국의 비극과 황실 및 조정의 대란을 이용하고 싶은 비열한 정치인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히려 관동을 향해 탈출한 헌제가 도리어 순진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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