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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불모터스(주) 송승철 사장 ②

[서울=아시아뉴스통신] 김은지A기자 송고시간 2016-04-04 16:24

푸조 '제 2의 도약' 시동 걸다

2편. 험난했던 창업에의 길,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김한묵 부회장이 만난 사람
한불모터스 송승철 사장. (사진제공=한불모터스)

이제 화제를 사업초기로 되돌려서 한불모터스 송승철 사장의 창업스토리를 들어보겠다.

II. 험난했던 창업에의 길

Q: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1981년 코오롱상사에 입사해 외환부에서 금융업무를 담당하시다가 1987년 코오롱상사가 BMW를 수입하면서 그 업무를 담당하시게 됩니다. 직무전환 시 고민은 없었습니까?

A: 그 당시 코오롱그룹은 봉제와 섬유가 주력사업이었기 때문에 국제금융과 외환거래가 활발하지 않았습니다. 입사 당시에는 국제금융에 관한 다양한 업무지식을 쌓으리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5년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단순한 업무에 답답함을 많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1987년 7월부터 수입차의 국내시장 개방이 결정되면서 코오롱에서 BMW와 독점 수입 계약을 맺고 1986년 가을부터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효성은 아우디와 폭스바겐, 한진은 볼보, 동부는 푸조, 삼환은 시트로엥 독점 수입 계약을 맺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저는 운전면허도 없을 때인데 수입차시장이 새롭게 열리고 앞으로 수입차시장은 커질 수 밖에 없으니 새로운 업무에 뛰어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모두가 출발선에서 같이 시작하는 것이니 열심히 노력하면 남들보다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 BMW를 거쳐 Saab 영업까지

Q: BMW 영업을 5년 간 하시다가 그 후에 스웨덴차인 Saab 영업도 하셨지요?

A: 1993년 스웨덴 Saab 임포터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제가 입사하기 전까지 Saab는 1년 판매대수가 1백대가 안될 정도로 미미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입사 후 전세계 연간 판매량이 10만대 수준인 Saab를 1년에 평균 1천대씩 판매하면서 스웨덴 본사의 인정도 받고 저도 영업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즐거움도 잠시, 1997년 IMF사태로 수입차시장이 죽어버렸습니다. IMF 경제위기가 닥치자 환율이 2배로 오르면서 수입차가격도 2배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수입차를 사치품으로 인식하던 때라 국가가 위기인데 수입차를 구입한다는 것은 국민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웠기에 수입차가 전혀 팔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수입차업체들이 면허를 반납하거나 철수했고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우리나라에 수입차시장은 없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IMF사태 이전에 BMW Korea를 세워 본사가 직접 수입판매했던 BMW만이 유일하게 지사를 유지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 드라마 같은 푸조와의 수입협상 이야기

Q: 평화자동차에 근무하시다가 창업을 결심하시게 됩니다. 창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해 주십시오.

A: IMF 사태 속에서 수입차시장이 얼어붙어 고생하다가 평화자동차에 입사했습니다. 2000년에 제가 입사할 당시의 평화자동차는 베트남에서 피아트와 쌍용차 조립공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김대중 정부의 대북화해정책에 따라 북한에도 조립공장을 세우려고 계획중이었습니다. 베트남 정부는 완성차 수입을 불허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동차조립 공장 만이 가능했습니다. 베트남과 평양에서 조립한 자동차의 국내판매계획을 세우던 중 다른 수입차도 함께 판매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독일차나 일본차는 본사가 직접 수입할 것이 분명하니 우리나라에서 철수했던 푸조와 협상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진행이 순조로워서 2001년 9월부터 판매를 개시하기로 하고 4월에는 MOU도 체결했는데 갑자기 평화자동차는 통일교와 관련 있으니 곤란하다는 통보를 받게 됩니다. 카톨릭국가인 프랑스의 간판기업인 푸조가 통일교 영향 아래에 있는 기업과는 국민정서상 거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푸조와의 상담실무 책임자였던 저로서는 낙담이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푸조 본사에 내가 다른 파트너를 찾아오거나, 아니면 직접 회사를 차려 수입할 테니 시간을 달라고 하자, 푸조 본사도 그 동안의 상담과정에서 쌓인 정 때문인지 오케이하더군요. 너무 쉽게 승락해서 제안한 저도 당황했습니다.

푸조에 제안한대로 먼저 몇몇 대기업과 접촉해보았더니, 제가 수입권을 따왔으니 그 보상으로 상당액의 보너스를 지불한 후 수 년간 사장 자리를 보장하겠다고 하더군요. 대기업마다 제게 제시한 조건이 거의 비슷해서 놀랐습니다. 대기업이 제시한 돈으로 빌딩 하나 사놓고 5년 후 부터는 여행이나 다닐까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김한묵 부회장과 대담 중인 한불모터스 송승철 사장./아시아뉴스통신=서유석 기자

그러다가 회사를 세워서 직접 수입?판매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기본적인 운영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친구와 지인들에게서 자본금 출자를 약속받고, 외환업무 담당할 때의 인맥을 찾아다니며 자동차를 수입하기 위한 거래한도를 확보했습니다. 프랑스로부터 우리나라까지 자동차가 배로 오는데 40일 정도 걸립니다. 선적 후 90일 결제 신용장 한도란 자동차가 우리나라에 도착하면 운송기간 40일을 뺀 50일 안에 자동차를 다 팔아야 은행거래를 계속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막상 푸조를 수입하려하니 수입자동차의 형식승인, 안전도 기준 등 규정 때문에 고생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수입규정은 미국의 규정과 거의 동일했습니다. 따라서 유럽차의 규정에 맞게 제작된 푸조를 우리나라 수입규정에 맞춰 제반 허가를 받는 데에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더군요. 그동안 직원들 월급을 포함한 고정비용은 계속 나가지, 수입은 없지 정말 피말리는 시간이었습니다.

2001년 회사를 설립한 후 말씀드렸던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2003년 말에 푸조206이 드디어 국내에 들어왔습니다. 디젤차가 생소했던 당시, 연비가 뛰어나고 디자인이 세련됐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도입초기에 히트를 쳐서 회사가 정상궤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Q: 회사 설립 시 친구들의 도움으로 자본금을 마련했다고 하셨습니다. 벤처캐피탈 등 다른 금융기관의 지분은 전혀 없었습니까?

A: 순수한 개인들의 자금만으로 회사가 설립됐고 벤처캐피탈 등 금융기관의 지분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 푸조가 대기업을 마다하고 송승철을 선택한 이유

Q: 사장님께서 푸조 본사와 앞에서 이야기했던 수입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다른 대기업에서도 푸조에 파트너십을 제안했다고 들었습니다. 푸조가 대기업보다 사장님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G그룹에서 파트너십을 제안했다가 중도포기했고 D그룹과 마지막까지 경합했습니다.

저는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푸조에 대해 연구한 500페이지짜리 보고서와 300페이지의 사업계획서를 들고 푸조 본사를 찾아갔습니다.

1986년 코오롱상사에서 BMW를 시작으로 2001년 평화자동차에서 피아트를 취급할 때까지, 수입차시장에서 15년 동안 쌓은 저의 경험과 지식을 모두 사업보고서에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직접 회사를 세워 푸조와 운명을 함께 하겠다고 설득했습니다.

한불모터스 송승철 사장. (사진제공=한불모터스)

처음 푸조 본사와 회의를 할 때 면담스케줄이 하루만 잡혀있었습니다. 제가 첫날은 프리젠테이션, 둘째 날은 공장과 매장 방문, 셋째 날은 부품업체 방문 등 최소한 3일은 필요한데 상담일정이 너무 짧아서 수입업자로서 푸조를 충분히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했더니 놀라더군요.

저의 경력, 노력, 열정을 푸조 본사가 인정했기에 대기업을 제쳐놓고 저와 파트너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저희가 준비한 철저한 사업계획서가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저희가 워크아웃 기간 중에도 수입차종 다변화를 위해 시트로엥에 파트너십을 신청했습니다. S그룹과 최종 경쟁했던 이 때도 사업계획서 때문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상대는 천만 고객과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재벌기업이고 저희는 워크아웃 중이라서 앞날이 불투명한 기업입니다. 500페이지짜리 사업계획서와 USB를 들고 프리젠테이션을 마치고 나서 사실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우리 손을 들어주더군요. 그리고는 저희가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앞으로 새롭게 진출할 시장에 요구하는 표준사업계획서로 사용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보기에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기분이 좋아서 너무 쉽게 승락한 것 같아 지금은 조금 후회도 됩니다.

Q: 사장님, 지금이라도 저작권료를 청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웃음)
역시 머릿 속으로 그린 사업계획서는 몸으로 부딪치며 얻은 경험이 녹아있는 계획서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객관적 평가에서 불리한 약자가 오히려 정공법을 선택하신 것이군요. 워크아웃 중임에도 나의 경력과 열정이 깃든 사업계획서를 보고 당신들이 파트너를 결정하라고 했던 사장님의 배짱이 놀랍습니다. 이러한 사장님의 열정을 인정한 시트로엥도 좋은 회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2003년 드디어 푸조자동차 판매를 시작해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리먼브라더스 사태의 금융위기 속에서 수입차업계 최초의 워크아웃을 당하게 됩니다. 쓰라리시겠지만 워크아웃에 이르게 된 경위를 들려주시죠.

◆ 워크아웃의 수렁에 빠지다

A: 2008년 11월 리먼브라더스사태 금융위기가 일어났을 때 저희회사는 주문한 자동차가 팔릴때까지의 자금부담 때문에 캐피탈회사로부터 재고금융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평소보다 재고가 약간 증가해 약 1천대분의 재고금융액이 약 300억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리먼사태로 여신전문기관인 할부 회사들의 자금조달이 막히면서 신규거래가 중단되고 기존의 거래도 연장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저희로서는 누적적자를 기록한 것도 아닌데, 금융기관의 사정 때문에 회사가 위기에 빠지니 정말 황당했습니다. 처음 겪는 위기를 돌파하고자 갖은 노력을 다해보다가 결국 워크아웃을 신청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성수동 본사 서비스센터 전경. (사진제공=한불모터스)

그때는 저희가 대담 중인 성수동 본사와 화성의 PDI(Pre-Delivery Inspection)센터를 신축하던 중이었기에 여유자금도 모두 부동산에 묶여있었습니다. 은행권에서 임대소득 등 수익다변화를 위한 본사신축과 고객서비스에 필수인 서비스센터 설립은 불가피한 부동산 투자라고 인정해 부동산의 경매는 피할 수 있었지만 워크아웃신청은 정말 뼈아픈 경험이었습니다.

◆ 뼈를 깎는 고통으로 워크아웃 졸업하다

Q: 각고의 노력 끝에 2014년 12월 드디어 워크아웃을 졸업하게 됩니다. 워크아웃 졸업하기까지의 고생담을 이야기해 주십시오.

A: 우선 임원 월급은 30%씩 삭감했고 저의 월급은 50% 삭감했으며, 비용명세를 꼼꼼히 분석해 줄일 수 있는 비용은 모두 줄였습니다. 그 당시 경제적 고통 때문에 회사를 떠난 직원들도 있었지만, 고통을 분담하고 남아있는 임직원들은 이제 모두 가족과 같습니다.

안고 있던 부실 자산을 모두 떨어내어 워크아웃 시작 후 2년 동안 220억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그 당시 영업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했던 은행의 신용장 한도 등이 대폭 줄어들어 주어진 한도 안에서만 영업을 해야만 했던 점이 가장 불편하고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위기를 극복하는데는 본사의 지원도 큰 몫을 했습니다. 워크아웃동안 최대 800대까지 재고가 쌓여있었는데 그 중 500대 가까운 물량을 본사에서 다시 사줬습니다.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자동차는 주로 풀 옵션의 고급형입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팔리는 자동차는 실용적인 보급형이 대부분입니다. 가죽시트도 드물고, 라디오가 없는 차도 많습니다. 프랑스 국내시장에서 판매가 쉽지 않았을 텐데도 저희의 제안을 본사가 선뜻 응해준 것은 정말 예외적인 경우라서 지금도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제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수입 물량을 본사로 수출한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했는데 그동안 환율이 많이 올라서 이 거래에서는 수익이 발생한 셈입니다. 물론 선적비용은 부담했습니다.

이러한 주위의 이해와 도움이 있어서 워크아웃 3년 차부터 지금까지 5년 동안은 매년 3, 40억의 흑자를 기록했으며 결국 워크아웃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Q: 워크아웃에 들어간 기업의 회생을 위해 은행에서 원금과 이자의 일부를 탕감해주기도 합니다. 그런 도움도 있었나요?

A: 원금이든 이자든 한 푼도 탕감받은 것 없습니다. 모두 칼같이 계산해서 갚아나갔습니다. (웃음)

성수동 푸조 비즈타워. (사진제공=한불모터스)

◆ 앞으로의 사업계획은?

Q: 워크아웃을 졸업하자마자 2015년 들어 푸조가 폭발적으로 팔리면서 2015년 10월에는 푸조2008이 Best Selling Car가 됐습니다. 앞으로 한불모터스를 어떻게 키워나갈 계획입니까?

A: 비록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판매도 정상화됐지만 아직도 안정적인 경영에 이르렀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이릅니다. 수입자동차는 2달 전 주문하는데, 운송기간 2개월, 판매기간 2개월 등 자동차 1대가 팔릴 때까지 보통 6개월이 걸립니다. 회사는 그동안 환율, 재고 등 여러가지 리스크에 노출돼 있습니다. 따라서 외부 환경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유동성과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PDI센터, 렌터카 사업, 부품 조달 등 다양한 수익안정화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한불모터스 화성 PDI 센터 전경. (사진제공=한불모터스)

Q: PDI센터가 수익모델이 됩니까?

A: PDI센터는 Pre-Delivery Inspection Center의 약자로서 운송 중 발생할 수 있는 이상유무를 출고 전에 마지막으로 검사하는 곳입니다. 저희 화성 PDI센터는 출고검사수수료 수입창구일뿐 아니라 여유공간은 보세창고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푸조 본사가 직접 수입?판매할 가능성

Q: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달라고 하면 금년에 몇 대를 팔겠다, 또는 어떤 모델을 들여와서 대박을 치겠다고 대답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외형을 늘리는 것보다 안정화된 수익모델을 만드는 것이 먼저라는 말씀이 인상 깊습니다. 만일 푸조가 연 1만대 이상 팔리게 되면 푸조 본사가 지사를 세워 직접 판매한다고 하지 않을까요?

A: 본사가 직접 수입?판매하기 위해서는 투자비용과 수익, 그리고 위험요소들을 따져본 후 결정할 것인데 가까운 장래에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저희가 지사 및 자회사를 제외하면 세계의 딜러(Importer) 중 판매 5위입니다. 저희보다 판매대수가 많고 프랑스에서 가까운 딜러들을 먼저 검토하리라 생각합니다.

성수동 푸조 비즈타워 루프탑 야경. (사진제공=한불모터스)

III.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저성장의 그늘을 벗어나서 경제의 활력을 되찾기 위한 돌파구로 요즈음은 창업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앞장 서서 전국 각지에 창조경제혁신센터 및 스타트업지원센터를 설립해 운영 중입니다. 이제 창업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을 위한 사장님의 조언과 격려를 듣고 싶습니다.

Q: 사장님처럼 직장생활의 경험을 쌓은 후 창업하는 것과 자기가 원하는 사업을 바로 시작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유리할까요?

A: 업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직장생활경험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크게는 15년 간의 수입차영업경험, 금융권과 자동차업계에 쌓아놓은 인맥, 그리고 작게는, 직장생활에서 배운 보고서 작성 요령, 다른 조직원과의 팀워크 등은 모두 제가 직장생활에서 얻은 것입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명문대를 졸업해도 취업이 어려운데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한 직장생활 경험은 창업을 위한 준비과정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꼭 취업을 안하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창업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따져보고 착실히 실력과 경험을 쌓는다면 그것도 훌륭한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앞으로 저와 같이 무역업에 종사하고 싶다면 외국어는 필수적으로 준비해야겠고, 서류작업을 위한 엑셀과 파워포인트 등 컴퓨터 사용능력, 자기가 취급하고자 하는 품목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등이 준비과정일 것입니다.

Q: 지금 돌이켜볼 때 사업을 하시면서 겪은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이런 준비가 좀 더 필요했다고 느끼시는 점은?

A: 글쎄요, 준비란 아무리 하여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신이 세운 계획에 따라 나름대로 준비했다면 그 다음은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창업 활성화를 위한 제안

Q: 젊은이들이 창업의 꿈이 있어도 주저하게 되는 것은 실패의 두려움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창업이 활성화될까요?

A: 벤처창업의 메카로 불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과 정부에서 장려해 많은 젊은이들이 창업에 뛰어들지만 그 중 90%는 실패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디어가 좋고 회계처리와 자금운용에 잘못이 없다면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들의 성공확률은 50%라고 합니다. 두 번 실패한 사람들 중에도 엄정한 심사 끝에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지는데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진 사람의 실패 확률은 1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즉 패자부활의 기회가 주어져야 성공확률이 높아지고 그래야만 벤처창업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다행스럽게도 주위의 도움으로 워크아웃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게 되면 신용불량으로 금융기관과 거래를 할 수 없게 되는 등 사실상 ‘패자부활’이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스타트업지원센터 등 하드웨어는 이제 충분히 구비됐다고 보면,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이스라엘이나 실리콘밸리처럼 패자부활이 가능한 제도와 관행을 만드는 것이 창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라 생각합니다.
성수동 푸조 비즈타워. (사진제공=한불모터스)

◆ ‘열정’과 ‘신뢰’를 갖춘 기업인

Q: 자녀들에게는 직장인과 사업 중 어느 것을 권하고 싶으십니까?

A: 저의 두 딸은 각각 20대 후반과 20대 초반입니다. 저는 어느 길이 좋다고 강요하지 않고 그녀들의 결정을 존중할 것입니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결정하는 것이니까요.

Q: 사장님께 드리는 마지막 질문입니다. 사장님께서는 어떤 기업인으로 기억되기를 원하십니까?

A: 오늘 질문 중 가장 어려운 질문입니다. 저는 자동차수입업자입니다. 품질이 좋은 자동차를 수입해 합리적인 가격에 파는 것이 저의 본분입니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는 열정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덧붙여 제가 수입하는 자동차는 믿을 수 있다는 평가를 꼭 받고 싶습니다.
‘열정’과 ‘신뢰’를 갖춘 기업인이라고 기억됐으면 합니다.

◆ ‘주어진 여건 안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라’

Q: 이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A: ‘주어진 여건 안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남의 손 안의 떡은 아무리 크고 맛있어도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해 보아야 해결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가지고 있는 조건과 능력을 냉정히 분석한 후 할 수 있는 것부터 치열하게 준비하는 열정이 있다면 목표는 어느 사이에 가까이 와 있을 것입니다.

김한묵 부회장과 대담 중인 한불모터스 송승철 사장./아시아뉴스통신=서유석 기자

저희가 그동안 만나온 사회 각계각층의 리더들은 대부분 카리스마가 강하고 자기 주장이 확실한, 개성이 뚜렷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만나 뵌 사장님은 온화한 인상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자랑할만한 수상 경력이나 판매실적도 저희가 물어본 후에야 확인해 주시던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사장님 인물평에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사장님의 이러한 친근함, 소탈함, 진실함이야말로 주위의 자발적 도움을 이끌어내어 워크아웃을 졸업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 시대의 리더는 탁월한 전문성과 따뜻한 인품, 그리고 강함과 부드러움의 조화가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앞으로는 사장님과 같은 리더십이 더 환영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희는 소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집안의 도움으로 순탄하게 사업을 하는 경영자보다는, 기업의 규모와 관계없이, 어려운 창업과정을 거쳐 수많은 시련을 극복해온 ‘자수성가형’ 경영자에게 더 큰 관심과 존경을 보내고자 합니다. 이것이 오늘 저희가 사장님을 찾아온 가장 큰 이유입니다.

‘제2의 도약’ 시동을 건 한불모터스의 발전을 기원하면서,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신 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담진행 : 김한묵 부회장 / 사진 : 서유석 기자 / 글 : 김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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