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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35

  •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홍근진 기자
  • 송고시간 2017-11-18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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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차 강변의 추억(La Maritza)과 대동강변의 추억
남북통일 기원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본지는 지난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년 2개월 동안 16개국 1만 6000km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중국과 북한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예정인 통일기원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60)의 기고문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편집자주]
 
불가리아 벨로보에서 파자르지크로 가는 길에 비를 맞고 뛰고 있는 강명구 선수.(사진=김나라 동영상)

라~~라~ 랄 라라라 라라라, 라~~라~ 랄 라라라 라라라, 실비 바르탕의 '마리차 강변의 추억'의 후렴구를 흥얼거리면서 이 글을 읽어주기 바란다.

내가 마리차 강이 아직 계곡물에 불과할 때부터 그 아름다운 물길을 따라 며칠을 달리면서 흥얼거렸듯이 말이다.

실비 바르탕의 감미롭고 우수에 찬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 '마리차 강'은 늘 몽상에 사로잡혀 살던 소년에게 피안의 강이었다.

그 소년이 머리가 희끗희끗해져서 아직도 소년 같은 체력으로 소년 같은 꿈을 안고 그 강변을 달리고 있다.
 
"내 나이 열 살일 때 내게는 아무 것도 없었지, 그 흔한 인형도 없었고 낮은 소리로 흥얼거리는 후렴구 밖에는 라~~라~ 랄 라라라 라라라, 라~~라~ 랄 라라라 라라라...."


그녀는 불가리아의 소피아 외곽 산골마을 이스크레츠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던 해에 소련의 침공으로 불가리아는 공산화 되었다.

8살 때 공산주의를 피해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망명했다. 어린 나이에 고국을 등져야 했던 회한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음악이다.
 
불가리아 플로브디프에 있는 '마리차강'의 모습이 실비 바르탕의 노래를 연상케 한다.(사진=강명구)

그녀의 가슴에 마리차 강물이 언제나 애처롭게 흘렀듯이 공산주의를 피해 남한으로 온 내 아버지의 가슴엔 대동강물이 평생을 격랑을 일으키며 흘렸다.

잠시 피해있으면 모든 것이 금방 제자리로 돌아갈 줄 알고 기다리다 못내 눈을 감았다.

아버지의 회상과 시(詩)를 통해 대동강도 나의 마음에서 흐르며 나의 강이 되었건만 눈을 뜨면 대동강은 여전히 피안의 강으로 남아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해 11월 불가리아에서도 공산정권이 무너지고1990년 7월 민주주의 신헌법이 채택되고 그해 10월 마침내 실비 바르탕은 38년 만에 고향 불가리아를 방문해 소피아 국립극장에서 벅찬 가슴을 누르며 억지로 이 노래를 끝까지 부를 수 있었다.

"세느 강이 당신의 강이듯이 마리차는 나의 강입니다." 8살 때 프랑스로 아버지를 따라 망명해서 17살에 이미 프랑스의 아이돌 가수가 되었던 그녀에게도 세느 강은 당신의 강으로 남아있었다.
 
강명구 선수가 불가리아 플로브디프 지역에서 '평화통일'을 외치며 달리고 있다.(사진=김나라)

나는 단풍이 곱게 물든 마리차 강변을 대동강을 가슴에 품은 또 다른 가족과 함께 '평화 통일'이란 구호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상관없이 외치며 달리고 있다.

석양 무렵 새들이 모두 희망의 나래를 펴고 힘차게 솟아오를 때 나도 이들과 함께 대동 강변을 힘차게 달리고 싶다.

내가 혼자 달리며 외롭고 힘들어 지쳐 쓰러져 갈 때 일으켜 세워주고 힘을 준 이들과 마리차 강변의 달린 일들이 추억이 되었을 때 그 후렴구를 같이 흥얼거리며 희망의 미래를 꿈꾸며 함께 달리고 싶다.
 
플로브디프, 마리차 강의 운치를 품어 안은 불가리아 제 2의 도시이다.

이 도시는 기원전 342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에 의해 점령되면서 이름도 필리포의 폴리스라는 의미로 필리포폴리스로 불리다 플로브디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불가리아 플로브디프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사진=김나라)

2000년의 고도의 무너진 산성에서 평화를 지키다 쓰러진 옛사람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이곳은 지리적으로 동양에 가까워 로마의 원형 극장이 있는가 하면 오스만의 유적지인 금요 모스크와 성 엘레나 교회와 성 마라나 교회 등 동방정교의 교회들이 함께 있다.
  
이제 서양 여행이 마무리가 되어간다. 이제 며칠 후면 터키로 들어간다. 서양의 정신과 문화의 근간은 기독교이다.

기독교가 세계종교가 된 것은 시대적 배경이 영향을 주었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예수의 제자와 제자의 제자가 활동하던 1, 2세기는 로마제국의 황금시대이다. 

그 시절 전 유럽과 지중해 지역에 평화가 찾아왔다. 인류 역사상 드물게 찾아온 평화가 기독교 포교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왕래는 자유롭고 여행은 비교적 안전했다. 사람의 왕래가 자유스러우면 문화와 종교와 사상의 교류가 자유러워진다.

아쉽게도 이런 평화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다.
 
불가리아는 그리스정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곳곳에 그리스정교 교회들이 눈에 띈다.(사진=강명구)

그동안 우리는 서유럽의 시각으로 교육을 받아와서 그리스 정교는 잘 알지 못한다.

그리스 정교에서는 ‘정통’을 가톨릭에서는 ‘보편’을 강조하였다. 두 종파는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다가 1054년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된다.

그 뒤 비잔틴 제국과 동유럽 문화의 중요한 바탕이 된 그리스 정교는 로마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제례 의식을 보다 중시하며, 자치적인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의 권위가 그리 대단치 않고 각국별로 자립화가 되었다.

그리스 정교는 그 후 발칸반도에서 러시아로 넘어갔다. 지금은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러시아 등에서만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 정교국가들은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에 걸쳐 모두 오스만 튀르크에 정복을 당하게 된다.

이들 제국들은 서구 여러 나라의 지원을 받아 몇 번이나 오스만 군과 결전을 벌이지만 번번이 대패하고 말았다.

이들 나라들이 터키로부터 완전 독립을 이룩한 것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이다.

이들은 암울한 식민시대에 그리스 정교를 민족 고유문화로, 동질성의 상징으로 삼았다.
 
불가리아 파자르지크에서 파보메이로 가는 길목에 있는 언덕위에 건물과 거리 풍경.(사진=강명구)

누구나 가슴 속에 흐르는 강을 품고 살아간다. 센 강이 에디트 피아프의 강이라면 마리차 강은 실비 바르탕의 강이다.

대동강이 아버지의 강이라면 한강은 나의 강이다. 한강에 가서 고기 잡고 물장구치고 보트를 타던 어린 시절의 기억뿐만 있는 게 아니다.

최근에는 주말이면 거기 가서 달리면서 유라시아횡단 마라톤 준비를 하던 강이다. 내 기억 속의 한강은 평화의 강이기도 했지만 일순간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 강이기도 했다.
 
마리차 강변을 달리면서 나의 발걸음이 대동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나는 직감한다.

아버지가 살아생전 다시는 못 밟은 그 대동강의 솔밭 언덕을 대를 이어서라도 기필코 가야겠다는 것은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아버지의 회상과 시(詩)를 통해 내 피 속에서 강물이 되어 흐르는 유전자인 것이다.

내가 그 길을 달리는 것은 실비 바르탕이 38년 만에 귀국하여 소피아 국립국장에서 공연하는 감동과 비견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