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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도 등장한 '동학농민운동'이 갖는 의미는 대체 뭘까...'흔들렸던 조선, 그럴 수 밖에 없었나?'

[=아시아뉴스통신] 임채령기자 송고시간 2019-07-05 23:20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사진=SBS '녹두꽃' 제공)

드라마 '녹두꽃'에 '동학농민운동'이 등장한 가운데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동학농민운동이란 1860년 최제우에 의해 동학이 창시된 후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봉건사회를 반대하고 서학과 왜를 배척하는 반외세사상을 주장하면서 조선 사회에 그 교세가 확산되었는데 조선의 위정자들은 동학을 사교로 금지하고 1864년 혹세무민의 죄로 교조 최제우를 처형하였으며, 이후 동학교도들에 대한 조선의 탄압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동학은 농민 대중에게 더 퍼져나갔고 최제우에 대한 억울함을 해소하고 동학교도들에 대한 탄압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교조신원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교조신원운동 이후에도 계속되는 정부의 묵살과 더불어 전라도 군수 조병갑의 불법착취와 동학교도 탄압에 대한 불만이 도화선이 되어, 동학교도들은 1894년 1월 전봉준을 중심으로 전라도ㆍ충청도 일대 농민들을 모아 고부 관아를 습격해 고부민란을 일으켰다.

이에 정부로 부터 폐정을 시정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해산했지만 고부민란을 조사하러 온 안핵사 이용태가 오히려 민란 관련자들을 역적죄로 몰아 혹독하게 탄압하여 동학농민운동의 봉기의 원인이 되었다.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 3월과 9월로 나눌 수 있다. 동학농민운동의 민중봉기가 확산되자 정부는 군을 출병시키고 일본에 출병을 요청하여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도록 하였다.

이에 일본의 개입으로 고전하다 우금치전투에서 관군과 일본군에게 패했다. 결국 1895년 1월 전봉준에 이어 손화중 등 동학농민 지도부 대부분이 체포되고 교수형에 처해져 동학농민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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