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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세계 어깨동무 장애인 선교단 사무총장 조동천 목사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2-13 13:49

장애인 전문인 선교사 조동천 목사.(사진제공=어깨동무)

요3:16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사도인 요한이 기록한 요한일서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두 번씩이나 기록한 것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요일4:8, 16) 이렇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할 만큼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부으셨다고 했고(롬5:5), 이 사랑은 한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롬8:32)이라 하였고, 더욱이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은 물론 그 밖에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끊어낼 수 없는 영원한 사랑임을 천명하고 있고, 오히려 우리는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롬8:37-39에서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에 나타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내용면애서나 분량에 있어서 다 열거하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이지만 전 성경의 요절이라고 일컬어지는 요3:16절의 약속의 말씀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인가를 상고하고자 합니다.

본절의 헬라어 원문을 직역하면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므로 독생자를 주셨다. 이는 그를(독생자를) 믿는 모든 자는 멸망치 않고 반대로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라고 볼수가 있습니다.

본절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의 이처럼 이란 말의 헬라어는 ουτως(우토스)로 우리 말 번역에는 중간 쯤 나오지만 헬라어 원문에서는 이 ουτως가 문장 초두에 나오는 이 단어는 이 같은 방법으로 라는 뜻으로 앞 절에 나타난 내용과 같은 방법으로 라는 의미입니다. 앞 절 13절 부터의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들려 올려져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하늘로 올라가신 유일한 인자이심을 밝히면서 이 인자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 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지만 이 종교들은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절대자로서 타락한 인간 세상과는 전혀 상관할 수 없는 그래서 초월해만 계시는 분으로 믿는 종교이며 대표적인 교는 마호멧드교 회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구원은 인간 편에서 초월자를 찾아가야만 하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초월하신 하나님을 찾아가는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그들이 신에게로 직행하여 구원에 도달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대표적인 행위는 성전(聖戰)에서의 전사나 자폭하는 것이며 이것은 거짓이고 사기이며 속된 표현으로 자폭해서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께로 직행하는 것이 아니고 지옥으로 직행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죄에 빠진 인간은 어떤 행위로도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유의 종교에서는 구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음은 범신론 계통의 종교라고 할 수 있으며 이들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은 부인하고 우주 만물과 인간 자체를 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들의 구원은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으로 보고 자신의 깨달음과 해탈을 구원으로 여기지만 그러나 만물과 인간 자신을 신으로 보고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부인하는 형이하학적인 종교 즉 초월자가 없는 종교에서는 어떤 고행을 하고, 또 철학적으로 깊은 깨달음이 있어도 이들에게는 결코 구원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궁극적으로 초월자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인간의 구원은 초월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심으로 된다는 것이다. 창조자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고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인간 구원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는데 이 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따라서 구원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나타납니다. 이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말씀이십이 다.

그러면 요3:16절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첫째로 하나님은 이와 같이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세상을 사랑하신 것을 의미 한다. 어떤 이들은 세상이란 단어 대신 의미상 우리라는 말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말씀하시는 세상은 문자 그대로 세상이지 다른 의미가 없다.

앞절 13절에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은 아들로 세상에 오신 것을 의미한다. 요13: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라고 증거 한다. 이처럼 거룩한 하나님께서는 캄캄한 세상을 사랑하셔서 인간의 몸을 입으신 아들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추악하고 더러운 세상에 오신 것이다. 본문 다음 절인 17절에서도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했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고 하셨다.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는 이 말은 세상에 대한 심판이 없다는 말씀이 아니고 이어지는 19절 20절을 보면 심판은 범죄 한 인간을 멸하시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행위라기보다는 심판은 인간 스스로 자처해서 행해지는 것으로 증거하고 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악한 행위가 빛에 의해서 드러나고 밝혀 질가 봐 그래서 빛으로 나아오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빛을 미워하고 어둠을 더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죄와 심판은 바로 이것인데, 정죄와 심판은 인간이 스스로 자처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벧후3:9절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처럼 “하나님이 빛 되신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이 빛에 의해서 모든 사람의 악한 행위가 드러나고 밝혀 질 때 각 사람이 회개 하고 빛으로 나와서 아무도 멸망치 않고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지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세상이 자신의 악한 행위가 빛에 의해서 드러나게 되고 밝혀 질가 봐 그래서 빛으로 나아오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빛을 미워하고 어둠을 더 사랑하므로 정죄와 심판을 자처하게 된다는 것이고, 따라서 정죄와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행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셔서 이 세상을 구원 하시려고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이다. 요일2:2절에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말씀하고 있다. 이 구절을 해설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은 우리만 위할 뿐 아니고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증거 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쉽게 세상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을 본다. 특히 동성결혼과 관련해서 악으로 규정하고 단죄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부패하고 썩은 세상일수록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절대적으로 요청 된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판단하고 정죄할 것이 아니고 이러한 세상을 안타까워하고 긍휼이 여기고 빚진 심정으로 저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고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어야 겠다.

둘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주신 사랑이다. 요일4:9,10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말씀 한다.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낸 것이라 했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여기에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화목제물로 죽게 하셨다는 것이다. 롬5:8절에도 “우리가 아 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실히 증거 하셨다고 말씀한다. 이 말씀을 해설하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은 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절정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라는 말씀이다.

죄 값은 사망이라 했다. 우리 모든 인간은 죄 값으로 사망에 처해야 하고 멸망을 받아 마땅한 데 이 값을 대신 지불하기 위하여 인자이신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고, 마침내는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이다. 따라서 허물과 죄로 죽어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이 속죄함을 받고 영원히 살게 되는 구원을 얻은 것은 세상에 오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 해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 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목숨을 버리시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이 주님의 사랑보다도 더 큰 사랑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십자가에 달려서 저주의 죽음을 죽으신 것은 고난의 절정을 보여주는 것보다도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주는 절정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롬8: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기록하였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 자신과 자신의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다 내어주시는 무한한 사랑임을 증거 하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보다도 더 큰 것이 없지만 만일에 이 보다도 더 큰 것이 있어도 그것 까지도 아낌없이 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 요3:16절에 나타난 세 번째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기 전에 잠시 믿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자 한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는 말씀대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전부와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들을 내어 주시는 동일한 사랑으로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해서 에덴동산에서 인간과 함께 지상낙원을 이루시고 일정한 수가 차면 일시에 들려 올라가서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 하시고 그곳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더불어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도록 계획하시고 경영하신 것이라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 지상낙원과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인간과 더불어 함께 이루어갈 때 완성될 수 있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없이 인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고, 인간이 하나님으로 살아가고 하나님으로 사역해 나가는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이루어 가도록 하신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으로 살고 하나님으로 사역하게 되면 하나님처럼 살고 사역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으로 살고 사역함에 있어서 의존적 피조물인 인간에게 필히 요청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다.

이것은 의존적 피조물인 인간이 반드시 따라야 할 근본적인 순종이었다. 인간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저버리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거부하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처럼 살고 행하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인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게 되었고 멸망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아주 버리지 아니하시고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주시고 죄 값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죄의 사람이 함께 죽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그와 함께 살아나게 하셔서 인간으로 하여금 다시금 하나님으로 살고 하나님으로 사역해서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을 완성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마찬가지로 의존적 피조물인 우리들에게 똑 같이 요청되는 것이 있으니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세상을 사랑하셔서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는 모든 자들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고 말씀 하신다. 롬5:2절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는 말씀 중에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 는 이 부분의 헬라어 원문을 직역하면 은혜 안에 서 있는 우리가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된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은혜 안에 서서 이 은혜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시고 그 아들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는 이러한 은혜 안에 우리가 세워지고 그 은혜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으로 얻게 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세째 이렇게 믿는 자들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하게 하시는 사랑이다. 영생의 헬라어는 ζωη αιωνιος(eternal life)이다. 이 영생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ζωη αιωνιος 란 말은 단순히 육신의 목숨(ψυχη)을 연장 시켜서 영원토록 살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한마디로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영원토록 살아가는 삶 자체를 뜻하는 것이다.

인생사에 있어서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별 없이 헤어짐이 없이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처럼 하나님 자신과 자신에게 속한 전부를 내어주는 사랑으로 구속한 그의 자녀들이 성령 하나님으로 사는 삶을 통해 주님처럼 되어 완성된 영원무궁한 나라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더불어 영생 복락을 누리며 살아가는 이러한 영생은 하나님이 믿는 자들을 한 없이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이 영생, ζωη αιωνιος(eternal life)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러한 영생은 완성된 영원무궁한 나라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땅에서도 얼마든지 영생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요일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 기록하고 있다.

위에서 잠간 언급했듯이 영생은 곧 성령 하나님으로 영원토록 살아가는 삶으로, 주님처럼 살고(갈2:20) 주님처럼 사역해(요14:12) 나가는 것이라 했다. 이렇게 이 땅에서도 성령 하나님으로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 영원토록 주님처럼 살고 주님처럼 사역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전부를 내어 주는 사랑에 의해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연합하여 우리의 죄의 사람이 함께 멸함을 받게 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주와 함께 살아나게 해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신비적인 연합을 이루게 하셨기 때문이다.(롬6:4-8) 요14:20절에서는 이 하나님과 연합함의 사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말씀 한다. 이 구절 초두에 나오는 그 날은 성령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영원토록 내제하시게 된 날을 말하는데,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내재해 계심은 우리가 하나님과 신비적으로 연합함의 보증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연합은 우리가 영원토록 성령 하나님으로 살아가는 삶의 원천이고 능력이다.

우리가 이렇게 성령 하나님으로 살아가는 삶을 펼쳐갈 때 현실에서도 교회를 통해서 사도행전적인 지상낙원을 건설할 수 있고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이 교회가 들려 올라가서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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