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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불확실한 신앙'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2-16 12:15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담임목사.(사진제공=중앙루터교회)


<불확실한 신앙>

자기 존재와 생명의 근원을 깊이 고민해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 불확실성이 사람의 마음을 무한한 정열로 타오르게 한다. 

왜냐하면, 참된 진리란 불확실한 것을 선택하는 무한하고 정열적인 모험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리는 신앙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신앙은 곧 진리라는 말을 의역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모험 없이 신앙도 없다. 신앙은 마음에서 무한한 정열이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그 방향과 결과가 무엇인지 모르는 불확실함 가운데 일어나는 갈등이다. 

내가 신을 내 손 안에 붙잡아 맬 수 있거나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그것은 신도 아니고 신앙도 아니다. 내가 그분을 잡아 둘 수 없기때문에 믿어야만 한다. 

손에 잡아 두고, 내 맘대로 부릴 수 있을만큼 확실한 대상이라면, 믿을 이유가 없다. 그런 것이 신이라면 내가 주인이 되어 종으로 부리고 사용하면 그만이다. 그런 종류는 신앙이라 부를 수 없다.  

신앙을 고수하려면 불확실함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 망망대해에 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믿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진리는 신 앞에 몰려 있는 군중이 아니라, 신 앞에 서 있는 단독자를 필요로 한다.
 
거기서 필요한 것은 군중의 의견이 아니라, 단독자로 서 있는 개인의 솔직함이다. 

불확실함, 알수 없음은 불신앙의 표식이 아니라 신앙의 모험이 시작되었다는 위대한 뱃고동소리다.

<십자가 복음>

도무지 불가능하고 실현될 수 없는 사건에 자신을 던져버리는 의지와 정열이 곧 신앙이다. 이 때 이성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바울이 가르치는 십자가의 역설이 이것 아닐까?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고린도전서의 표현은 이성의 견지에서 볼때, 매우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이다(고전1;18-31). 다른 말로 하면, 복음의 세계는 불확실한 세계라는 표현이다. 

그 때문에 신앙의 순교를 통해 이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십자가의 역설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세계이며,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역설의 세계가 복음의 세계인가 보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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