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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산본교회 이상갑 목사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3-28 17:14

청년사역연구소 이상갑 대표.(사진제공=청년사역연구소)


1. 신학을 하려고 했을 때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려서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었다. 제자도를 생각하면 <너무 힙겹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2. 왜냐하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는 제자도를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3. 그런데 혈기왕성한 나이에 자기를 부인한다는 단어 자체가 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솔직하게 아주 힘겹다. 말은 쉽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삶은 그리 쉽게 살아지지 않는다. 너무 힘겹다.

4. 청년 시절에 이 말씀의 의미를 삶으로 해석하고자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 하였다. 실제적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가보지 않고서 이 말씀의 의미가 해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5. 언어의 유희로 냉소적인 비판을 일삼으면서 신학과 신앙을 난도질 하기는 쉬워도 삶으로 해석하기에는 우리 삶의 자리가 너무 힘겹다.

6. 그런데 본문을 주목해서 살펴보면 예수님이 먼저 그 말씀의 의미를 삶을 통해서 보여주고 들려주셨음을 깨닫게 된다.

7. 예수님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막8:29) 라는 영광스러운 고백을 받으신 이후에 오히려 비천해질 것과 낮아질 것을 말씀 하신다.

8. 막8:31절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9. 여기에는 우리가 싫어하는 단어가 3번이나 언급되고 있다. <많은 고난을 받는다. 버린바 된다. 죽임을 당한다.> 고난, 버림받음, 죽음이란 말은 세상이 듣기조차 싫어하는 말이다. 회피하고 싶은 단어들이다. 무척 힘겹다.

10. 그런데 왜 예수님은 중요한 순간에 이 말씀을 하셨을까? 그 해석의 열쇠는 이어서 나오는 구절에 담겨져 있다. 고난, 버림받음, 죽음이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죽음이 생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망의 권세가 생명의 권세로 연결되고 있다.

11.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은 영광스러운 부활을 향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결코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사흘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찬란하게 부활하는 소망으로 향한다.

12. 결국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원함으로만 그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자발적으로만 그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제자도는 율법적 의무가 아닌 은혜에 대한 반응인 것이다.

13. 요즘 개인적으로 담임목사로서 느끼는 부담감의 무게는 생각보다 너무나 크다. 코로나 상황에서 2월 24일 이후로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예배드리지 못하니 안타깝다. (동영상 설교에서는 오프라인 예배만 드리니 ~라고 표현했다. 피곤해서 잘 못 말한 것이다.) 동시에 사회적 책무가 있기에 공적 의식을 가지고 어찌하든지 지역 사회를 섬기고 작은 교회를 섬기고자 씨름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강제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힘겨움을 넘어서는 은혜에 대한 반응이다.

14. 코로나 이후 계속해서 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 예배를 실시간 유튜브 방송으로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주일날도 1번 녹화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주일 1,2,3,4부 예배를 4번 다 실시간으로 드린다. 누가 억지로 짐을 지우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더 무거운 책임의식과 소명감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리는 중심인 것이다. 이 또한 힘겨움을 넘어서는 은혜에 대한 반응인 것이다.

15. 새벽에도 전임목회자는 한분도 빠짐없이 매일 새벽을 깨우고 있다. 누가 강제하는 것에 의해서라면 못할 일이다. 개인적으로 밤에 잠들기 전에 매일 코로나 상황을 체크한다. 그리고 수시로 잠에서 깬다. 그래도 매일 새벽이면 새벽예배 시간에 맞춰 눈이 떠진다. 그러면 교회로 향한다. 자리에 앉으면 환우들이 떠오른다. 어려운 분들이 떠오른다. 그러면 저절로 <주여~ 주여~ > 독백처럼 나온다. 기도가 저절로 이어진다. 기도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니다. 이것은 힘겨움을 넘어서는 은혜에 대한 반응인 것이다.

16. 혹시 힘겨운가? 맞다. 그것은 현실이다. 그때 해야 하는 일은 십자가를 붙잡고 묵상하는 것이다. 그러면 은혜가 중심부에 차오른다. 그 은혜가 차고 넘침으로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는 힘겨움을 넘어서서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살아간다. 

* 오늘도 무거운 짐이나 부담이 아닌 자원함으로 감사함으로 힘겨움을 넘어서는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주님의 흔적을 따라 가고 싶다. 
힘겨운 누군가를 위해 잠시 기도 드린다. 

<주님의 은혜가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속히 자유롭게 예배 드릴 수 있기를....... >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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