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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상국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서울=아시아뉴스통신] 박광석기자 송고시간 2020-04-03 09:50

“공인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다”
오랜 연구 끝에 목판과 활자를 고증작업을 거쳐 밝혀내고 책 출간
 
'남명천화상송증도가,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의 탄생' 표지

[아시아뉴스통신=박광석 기자] 우리고서 전문조사학자인 박상국 동국대 석좌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역임)가 오랜 연구 끝에 목판과 활자를 고증작업을 거쳐 공인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가 세계 최고로 알려진 활자본(직지심경)보다 138년 앞선 1239년에 금속활자로 간행된 책임을 밝혀내고 책까지 출간해 화제가 되고 있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당나라 현각이 중국 선종의 6조인 혜능을 직접 배알한 후 크게 깨달은 심정을 서술한 ‘증도가’에, 송나라 남명선사 법천(法泉)이 계송을 붙여 깨달음의 진면목을 설파한 책이다. 줄여서 ‘남명증도가’, ‘남명집’ 등으로 불린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본은 1377년에 흥덕사에서 간행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우리 학계는 고려의 금속활자가 강화천도(1232)전에 발명된 것으로 판단했다. 뿐만 아니라 고려 말까지 중앙정부에서 금속활자를 주조하여 서적을 간행했으며, 이 기술을 바탕으로 조선조 태종 3년(1403)에 주자소를 설치하자마자 바로 계미자를 주조하여 인쇄한 것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박 교수는 고려시대에 금속활자가 발명된 것은 사실이나 금속활자 간행과 발전이 지속되지 못했고, 조선 초기에 전래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공인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권말에 붙어 있는 최이의 지문은 금속활자 간행지문이고, 공인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1239년에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최초로 간행한 책이다”라는 엄청난 명제를 제시한 박상국 교수를 만나 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어봤다.
 
- 최근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의 탄생,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펴냈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무엇인가.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이하 남명증도가)는 영가(永嘉)의 증도가에 남명 법천(法泉)화상이 계송(繼頌을 읊은 내용이다. 즉 대부분 7언구(言句)에 대해서 뜻을 풀이하듯 3구씩 송을 달아 영가 증도가의 진면목을 알려주고 있는 4언 절구로 된 책이다. 전체 319편의 절구로 구성돼 있다.
 
박 교수는 "첫째 장 공인본과 삼성본의 광곽과 주변 글자들이 다르다. 동일한 판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은 1377년에 흥덕사에서 간행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로 알려져 있다. 공인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직지심경’과 무엇이 다른가.
 
▶우선 간행년도가 틀린다. 공인본 남명증도가는 1239년에 간행되었고, 직지심체요절은 1377년에 간행되었다. 그리고 고려시대 금속활자로 간행된 책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두 책은 시기를 달리해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는 명예를 누려왔다. 현재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은 남명증도가이고, 아마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다. 그러나 두 책 모두가 고려는 금속활자 사용국이 아니었음을 알려주는 증거가 되고 있는 아이러니를 지니고 있다.
 
- 또 다른 금속활자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가 있는가.
 
▶현재 금속활자본 ‘남명증도가’는 공인본이 유일하고, 이를 번각한 판본 3종을 포함해서 10여종의 목판본이 현존하고 있다.
 
- 공인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소유자는 누구인가.
 
▶경상남도 양산 지방의 스님이고 공인박물관을 설립했던 분이다. 그래서 일명 공인본이라 일컫고 있다.
박상국 교수는 "목판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글자인데, 공인본에는 수두룩하다"고 밝혔다.

- 공인본이 삼성본과 달리 금속활자본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공인본과 삼성본은 동일한 번각본이라고 했다. 그러나 공인본은 삼성본과 비교해보면 전혀 다른 판본이다. 먼저 첫 장에서, 동일본의 특징처럼 보이는 광곽의 흠결이나 그리고 눈에 띄는 글자마저, 전혀 다른 판본의 특징이 되고 있다. 첫째 장, 둘째 장,(책 62쪽~66쪽) 만 검토해 보더라도 두 판본은 전혀 다른 판본임을 알 수 있다. 금속활자본과 목판번각본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공인본에는 삼성본에 없는 너덜이, 획의 탈락, 보사, 가필, 활자의 움직임, 뒤집힌 글자, 농담 등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것은 금속활자본의 특징일 뿐 아니라 최초의 금속활자본이 아니면 볼 수없는 특징이 되고 있다. 초창기의 활자가 아니라면, 그것도 어쩔 수 없이 수용하여 간행한 금속활자본이 아니라면. 절대로 수용할 수 없는 엉터리 주조 활자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권말에 붙어있는 최이의 지문이 웅변으로 답을 해 주고 있다. 목판번각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판본이다.
 
박 교수는 "마지막 장 공인본과 삼성본 최이의 지문을 보면 광각크기는 같은데 글자 크기가 눈에 띄게 다르다"고 밝혔다.

- 기존 문화재위원들의 판단을 뒤집는 엄청난 일인데, 이를 어떻게 재조명 하실 계획인지.
 
▶삼성본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지정 상황과 현재는 많이 다르다. 삼성본이 지정될 때인 1984년 당시에 권말에 붙어 있는 최이의 지문에 ‘중조주자본,重彫鑄字本’이란 글자가 있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실물을 유추할 수 있는 고려시대 금속활자에 대한 기록으로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사실 이 기록은 1931년에 처음 알려졌고, 1954년에도 소개되었으나 삼성본과는 달랐다. 삼성본은 고려본 판식을 지닌 번각본이고 후쇄본이라서 최이의 지문을 번각할 때의 간행 기록으로 착각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잘못된 판단으로 최이의 지문은 번각본의 지문으로 오판하였고, 2012년에 지정한 공인본 역시 권말에 최이의 기록이 붙어 있어 삼성본과 동일한 번각본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최이의 지문에 대한 재검토로 이 지문은 1239년에 ‘거듭 주자본으로 간행하였다’ 는 금속활자본의 지문이고, 공인본은 실태조사 결과 금속활자본임은 물론이고, 최초의 금속활자본임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순간적인 오판으로 잘못된 인식을 바꿔야 하는 일이고 더구나 문화재위원회에서 결정한 사실을 뒤집는 일이기에, 몇 편의 논문으로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여 책을 간행하게 되었다. 모든 국민들이 책을 보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언하고 싶은 것은, 당시 최고 권력자인 최이는 최초의 금속활자본의 탄생 기념으로 기록을 남긴 것이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당시 제일 쉬운 간행방법인 번각본(요즘 복사본처럼)에 지문을 써 줬겠는가?
 
- 그렇다면 이 엄청난 일이 왜 지금까지 세간에 알려지지 않고 있는지.
 
▶문화재위원회에서 감정해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본은 고려본 판식을 지니고 있는 후쇄본이었기에 당시에 누구나가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지금까지 그대로 내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문화재위원회는 오랜 세월동안 우리나라 자문위원회 가운데 결정권을 지닌 유일한 기관으로 자리할 정도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기관이다. 각 분야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 권위의 인물들로 구성돼 있는 기관이라서 이곳에서 결정한 사실은 새로운 기준으로 알려지게 되어 일개 학자가 바로잡을 엄두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본인의 소개 좀 해 달라.
 
▶저는 문화재관리국에서 평생 근무했던 사람이다. 그곳에서 오랜 세월동안 문화재 상근 전문위원을 했고,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장, 문화재위원을 했다. 그리고 퇴직 후 재단법인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 국공립 박물관 평가자문위원 등을 역임하고 현재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로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우선 공인본이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는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번에 발간한 책이 그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는 10년 전에 반환받은 일본 궁내청에서 귀국한 조선왕실의궤와 이토 희로부미 대출도서의 귀국보고서 간행계획 등이 있다.
 
- 끝으로 하시고픈 말씀이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살수는 없지만, 자신이 알고 있고, 확신을 지닌 진실은 밝히고 싶다.
 
박상국 교수.

◇ 박상국 동국대 석좌교수
 
정통한 불교서지학자이자 고려대장경 연구의 권위자. 우리 문화재의 가치와 의미를 연구하고 대중에 알리는 작업에 오랜 시간 천착해 왔다.
 
불교학으로 동국대학교에서 석사학위, 일본 동경 대정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재관리국 전문위원을 시작으로 문화관광부 심의위원(전통사찰),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장, 프랑스 외규장각도서 환수 자문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또한 한국문화유산연구원 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위원, 국립산악박물관, 국립항공박물관, 송파책박물관 등 국공립박물관 평가자문위원이자 한국전적문화재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1990년대 이래 전적조사연구회를 꾸려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을 50여 차례나 오가며 해외에 유출된 우리 고서를 조사했다. 특히 2011년 일본 궁내청 소장 도서 1205책을 돌려받을 당시 반환 실무협상에서 한국 측 대표 역할을 담당했는데, 그 공로로 문화재청장 표창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그동안 ‘해인사대장경판 재고찰’, ‘대장도감과 고려 대장경판’, ‘고려대장경의 진실’, ‘국외전적문화재 환수와 그 과제’ 외 다수의 논문과, ‘신라사경 대방광불화엄경’, ‘전국사찰소장 목판집’, ‘사경’, ‘한국의 책 문화’, ‘세계 최고의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고려대장경판의 판각과 남해’ 등의 책을 썼다.


kbott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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