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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이천사동감리교회 홍성현 담임목사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장하준기자 송고시간 2020-04-02 07:00

이천사동감리교회 홍성현 담임목사 설교 중인 사진 /사진제공= 이천사동교회

제목:양동에서 사동으로

경기도 양평(楊平)의 동쪽 끝자락에 있다 해서 양동(楊東), 내 목회의 꿈을 이룬 첫 목회지다. 1989년 1월 양동으로 이사하는 날에 눈비가 섞여 내렸다. 어릴 때부터 꿈이던 목사의 길이 마침내 이렇게 이루어졌다. 영동고속도로 여주 톨게이트를 빠져나와서 북내면을 지나 양동으로 들어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였다. 덜컹거리며 가는 이 길이 앞으로 펼쳐질 험난한 목회 여정의 서막 같았다. 그래도 꿈이 이루어졌으니까 눈비에 소망을 품고 달리는 비포장도로 위에는 기대와 설렘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렇게 시작했던 목회가 벌써 30여년의 시간을 달려왔다. 그 후 열정을 불태우던 첫 목회지 양동은 목회 여정 가운데 처음을 잃지 않게 붙들어준 내 목회의 성지(聖地)가 되었다. 때로 안일하게 목회 게으름에 안주할 즈음이면 아내와 나는 일상을 뒤로하고 불쑥 이 성지를 찾는다. 오직 예수님께 붙들려 한 사람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여기며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목소리를 나팔소리처럼 날려 천국 복음을 외치던 시절이고 목이 쉬도록 부르짖으며 기도하던 때다. 한 번은 적은 수가 모인 금요철야기도회에 파출소 순경이 찾아와서 우리의 기도 소리에 놀란 주민이 밤잠을 방해받으니 자제해 달라는 민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내 양을 먹이라고 명령하신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베드로처럼 내게 양동은 목양을 명령받은 갈릴리였다. 2016년 11월에 제2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 양동은 그 때 그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으므로 양동을 찾는 일은 일상에서 잃어버린 첫 사랑을 회복하는데 최적의 장소였다. 그렇게 처음 사랑을 잃지 않는 목회는 벌써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는 시간을 달려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 사동(巳洞)에서도 동일하게 이 마음 가지고 목양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더욱이 사동에는 양동에서의 첫 사랑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 있어서 더욱 이 마음을 가지게 했다. 찬양대 지휘자 박정희 권사가 바로 그다. 그를 양동에서 만난 때가 1993년 1월이니까 25년만의 재회였다. 어휴! 어떻게 이런 일이? 이 마음은 박 권사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는 한참 지난 시간의 간극을 좁혀 보느라 저 멀리 망각의 숲에 묻혀 버린 옛 사람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애썼다고 했다. 아련하게 흑백의 영상이 머리에 스칠 때 비로소 꼭꼭 닫아둔 마음의 빗장을 풀고 웃음 띤 얼굴로 맞이할 수 있었다. 이래서 사동은 내 목회의 또 다른 양동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사건이 또 하나가 나를 기다릴 줄이야! 지난 주 백기화 원로권사 가정에 심방할 때였다. 그는 뜬금없이 양동이야기를 불쑥 꺼냈다. 어떻게 그 시절 양동의 일들을 잘 알고 있을까? 그리고는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그 당시 그는 백칠녀 집사였다. 음력 칠월 칠석에 태어났다고 해서 칠녀(七女)였는데 나중에 백씨(白氏) 집안 행렬 자 基에 꽃(花)을 붙여 基花로 개명을 했다고 한다. 이름도 바뀌었고 그의 얼굴도 세월의 변장술에 감쪽같이 없어졌으니 그를 알아볼 재간이 없었다. 그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면 내내 그렇게 지냈을 것인데 심방을 기해서 그는 이렇게 커밍아웃을 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얼굴에서 세월이 못다 지운 흔적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말투도 그렇고 예배 후에 준비한 다과에 빠지지 않는 복숭아 통조림, 자기 집을 찾아준 모든 심방 대원들에게 주는 과자와 사탕이 들어 있는 자상한 선물 보따리는 세월이 지우지 못한 그의 흔적들이었다. 그는 영락없는 그 백 집사였다. 벌써 세월은 50대 씩씩한 가장(家長) 아줌마였던 그를 80대 자상한 할머니로 만들어 버리고 그 증거로 검은 머리는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 당시 성남에 직장이 있어서 주일에만 예배에 오던 그가 어느 날 교회 와 보니 담임목사가 바뀌어서 제대로 이별인사도 하지 못했다고 그 아쉬움을 25년이 지난 이제야 들려주었다. 믿음생활의 본이 되었던 崔慶愛 권사의 이야기는 서로 양동의 추억에 젖게 했으며 더욱더 친밀한 목자와 양으로 다가설 수 있게 했다.

또 다시 첫 목회지에서 만났던 성도를 여기 사동에서 만나게 된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리라. 이 세상에 우연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지금은 내 40년 목회가 중후반부로 접어드는 시점이다. 이쯤 되면 안일함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꾸물꾸물 올라온다. 적당주의가 터를 잡아가기 시작하고 만사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인식으로 채워진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하나님 말씀을 곡해하며 새로운 것을 향한 도전정신을 땅에 묻고 산다. 괜히 일하다가 일거리 만들까 두려움이 앞서서 이제는 뒷짐을 지고 거드름 피우는 짓이 마치 중년의 멋이라고 착각한다. 양심의 화인 맞은 자와 같이 오랜 습관이 가져다주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지 못한다. 마음마저 마비되어가다 보니 늙어가는 시간을 익어가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할 지혜를 버리고 산다. 주님 앞에 섰을 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과 벌을 면치 못할 종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런 시간에도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주인에게 인정받으려면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동에서의 목회도 진정 양동의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양동(楊東)을 兩(2)洞으로, 사동(巳洞)을 四(4)洞으로 바꾸어 생각하기로 했다. 사동에서는 양동의 마음을 두 배로 가지라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듯하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 2:5).

gkwns44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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