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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새생명교회 조태성 목사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4-04 12:12

영목신학원 조태성 교수.(사진제공=새생명교회)

* 예배, 친밀함의 시간을 사모하라!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막 11:17)

1. 
주님께서 분노하셨던 이유는 누구든지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는 대표적 장소인 성전에서 날강도 짓을 하고 있어서다. 특히, 장사하고 있던 곳은 이방인의 뜰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방인의 뜰까지는 들어와서 예배할 수 있게 하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예배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편의제공을 명목으로 이방인의 예배를 가로막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수밖에 없으셨는데 예수님께서 그 마음을 표출하신 것이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열방을 향해 가라]라는 책에서 선교의 목적과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선교가 필요한 이유는 그들이 아직 예배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도 하나님을 예배드리게 하고자 선교하는 것이다.”

2. 
교회는 예배를 통해 성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접촉이 일어나는 장소이며 모임이다. 자녀로서 하나님께 하소연도 하고 위로도 받는 모임이다. 창조의 목적인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대표적으로 일어나는 곳이다. 온 몸과 마음으로 예배하는 장소다. 다윗은 그래서 예배를 통해 그분의 임재를 누릴 수 있는 성전을 사모한다고 반복적으로 고백한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각각 합당한 은혜를 부어주신다. 신학생 때였다. 방학 때 다니엘 예배를 드린다. 21일 연속 부흥집회다. 나는 2-3시간 일찍 간다. 빈 성전 앞 자리에 나아가 무릎을 꿇는다. 성령님을 기다린다. 집회 시작한지 며칠 안 되었을 때 갑자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눈 감고 조용히 성령님을 기다리는데 내 20-30m 앞에서 누군가 뜨거운 불덩어리를 던진 것 같다. 그 열기가 너무나 뜨거워서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없다. 안 보인다. 안 느껴진다.

‘이상하네. 내가 착각했나.’

3. 
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눈을 감으니 방금 느꼈던 위치에서부터 다시 그 불덩어리가 빠른 속도로 내게 날아옴이 느껴진다. 다시 눈을 떴다. 그런데 없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마자 느꼈던 위치에서부터 이어서 그 불덩어리가 빠르게 다가온다. 피할 수가 없었다. 피하기에는 늦었다. 

내 머리에 부딪혔는데 머리부터 얼굴로 서서히 내려오며 머무는 듯하다. 다시 천천히 턱과 목을 지나 가슴으로 내려간다. 그러더니 배속 깊은 곳까지 천천히 흘러내리는 꿀처럼 내려간다. 온 몸이 뜨겁다. 그런데 이상하게 취한 것처럼 기분이 좋다. 내 영혼이 예수님 크신 사랑을 더 깊이 절감하며 좋아한다. 

4.
그 다음 날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2시간 정도 일찍 가서 혼자 성령님을 기다리며 예배준비를 했다. 그런데 어제 체험한 현상이 다시 재현된다. 그 불덩어리가 강대상 앞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날아와서 내 머리에 부딪히고 서서히 뱃속 깊은 곳까지 내려가 머문다. 10일 정도를 동일한 경험을 한 것 같다.

21일 다니엘 부흥집회가 끝난 후 나는 깜짝 놀랐다. 그토록 간절하게 소원했던 성령님의 임재가 더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나 동행하시는 성령님이 믿음의 영역에서 친밀한 분으로 확실하게 믿어진다. 그때부터 나는 성령님의 임재를 느낌과 경험, 체험으로도 많이 경험했다. 

나는 우리가 체험주의에 중독 된 신앙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체험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종종 필요할 때가 있다.

5.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믿음(말씀)중심의 신앙이다. 느낌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 느낌에 집착하면 우리를 혼란에 던져 넣을 수도 있다.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들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느낌과 체험에 기준을 두면 현상이 없을 때는 정죄감에 빠지고, 현상이 나타나면 교만해진다. 그러나 믿음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느낌보다 믿음으로 성령님과 동행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함을 계속 강조하고 나누는 거다.  

6.
그렇다 할지라도 예배는 하나님께서 공개적으로 친밀하게 만나주시기로 약속하신 시간이다. 친밀하게 임재하시며 기름부으신다. 그래서 나는 그 누구보다 먼저 교회에 가기를 소원했다. 청년부 시절에 소그룹 식구들이 자가용으로 나를 태워준다고 해도 거절한다. 왜냐하면 나는 교회에 더 빨리 가고 싶어서다. 그 차를 타면 물론 빨리 가고 편하게 간다. 차비도 안 든다. 그러나 그 차를 타면 나는 예배당에서는 고작 30분 정도밖에 성령님과 교제를 못 나눈다.

나는 더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빨리 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래서 주중 예배들은 가능하면 2시간 정도 일찍 가서 홀로 성령님의 임재를 기다리며, 그분의 임재를 체험적으로 다양하게 경험하고 누리며 하나님의 시간을 경험하곤 한다. 교회를 개척한 지금도 예배드리는 날은 다른 일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자 노력한다. 성령님 안에서 몇 시간씩 마음의 예배를 드리며 예배를 준비한다.

7. 
오해하지는 말자. 내가 이렇게 하면 우리의 갈망과 갈급함, 사모함이 성령님의 임재를 조종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십자가로 사랑의 관계를 회복시키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랑에 기쁘게 반응하신다는 의미다. 우리에게 사랑의 임재로 반응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의미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우리 아이들도 요구사항이 많다. 딸내미들은 나와 아내에게 지나가는 말로 필요한 것을 말한다.

“자전거 사주세요.”

때로는 어디서 그런 큰 믿음이 나와서 내게 그런 요구를 하는지 모를 정도다.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힐 때도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내가 그 어이없는 요구를 들어주고자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랑해서 움직이는 거다.

8.
다큐를 잠시 보았다. 귀여운 아들이 뇌종양이라서 수술을 했다. 일부 기억을 잃었다. 바지를 입으라고 줬는데 입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던 아들은 잠시 당황한다. 자기 나이를 쓰는데 8이라고 쓴다. 9살이라고 아빠가 다시 알려준다. 아이가 물어본다.

“9를 어떻게 써?” 

수술 후유증으로 잊은 것이다. 아이가 세수하러 갔는데 아빠가 조용히 뒤로 와서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혼자 하도록 해야 하기에 돕지는 않지만 넘어지더라도 부축하거나 잡아줄 수 있도록 손을 뻗어서 긴장하며 바라본다. 

9. 
다리 근육 힘을 길러야 해서 산책을 하는데 살짝 오르막이다. 계단이 나온다. 아빠는 어떻게 길을 잘 걸을 수 있는지, 계단을 오르고 내려올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반복적으로 설명해준다. 가르쳐줘도 또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안타까워하며 말한다.

“항상 지켜봐야 합니다. 24시간. 일도 그만두고...”

10. 
이 다큐를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은가 생각하게 된다. 내가 얼마나 못났는지 성령님께서 항상 임재하셔서 떠나시지 못하신다. 물론 사랑해서 곁에 계신다. 하지만 나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실수투성이다. 그럼에도 성령님 도우심이나 임재의식 없이 쉽게 움직이곤 하는 부족한 사람이다. 언제나 성령님께서는 그 아버지처럼 노심초사하시며, 언제든지 붙드실 준비를 하시고 계신 것 같다.

나는 성령님의 친밀하심에 조금씩 더 반응하며 알아가고 있다. 십자가 사랑이면 충분함을 배우고 있다.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배우고 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친밀함을 사모하시면 좋겠다. 성령님을 끊임없이 갈급해 하자.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함을 추구하자. 그 갈급함과 사모함에 응답하시는 약속된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자. 성삼위일체 하나님과 친밀한 만남의 시간인 예배를 사모하도록 서로 격려하고 노력하자. 어려운 시기지만 여러분의 교회 위에, 예배마다 친밀함의 기쁨이 풍성하시기를 소망한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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