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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이천사동감리교회 홍성현 담임목사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장하준기자 송고시간 2020-04-08 08:55

이천사동감리교회 홍성현 담임목사 사진 6일/(사진제공=이천사동감리교회)
 
제목: 산관 할미

큰딸이 둘째 외손녀를 출산했다. 어머니의 길은 힘들다지만 특히 출산 이후의 산모의 삶을 두고 이르는 말 같다. 산모에게 산후 몸조리는 필수 과정이고 산바라지는 친정엄마가 해주는 것이 가장 편하다. 아내는 안사돈의 그 바통을 이어받고 산관 할미가 되었다. 

딸아이는 첫째 다온(多溫)이를 낳을 때보다 더 힘들어 한다. 돌봐야 할 아이가 둘이 생겼으니 당연한 일이다. 갓난아이는 제 때 젖을 주고 나면 특별히 보채는 일이 없으니까 비교적 수월한데 세 살 된 다온이는 그렇지 않다. 동생을 본 아이는 엄마를 빼앗긴 상실감이 커서 인격성장에 상처로 남는다는 보고가 있어서 다온이에게 더욱더 신경 써야 했다. 

잘 놀던 다온이는 엄마가 제 동생 다인(多仁)에게 젖을 주면 갑자기 시샘을 부린다. 엄마 품에 파고들어 동생을 엄마에게서 격리시켜야 마음이 놓인다. 설상가상(雪上加霜) 아기들이 아프다고 칭얼댄다. 이래저래 큰딸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출산 직후 두 아이의 육아현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그 한 가운데서 고생하는 큰딸을 보니 어찌 마음이 짠하다. 그래도 해산구완(解産救援)의 좋은 도우미인 친정엄마가 그 곁에 있으니 다행이다. 친정엄마는 같은 길을 걸어온 대선배로서 더욱더 애틋한 마음으로 산바라지에 힘을 쏟는다.

문득 30년 전 아내가 첫딸을 낳았을 때가 떠올랐다. 경기도 끝자락 양동에서 첫 목회를 하고 있었을 때다. 당시 아내는 국군간호사관학교 출신의 해군간호장교로 서울 해군본부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주말부부로 서울과 시골을 오갔다. 주중에는 내 어머니가 목회를 돕는 자로 아내의 역할을 대신했고, 반면에 아내는 인천 시댁에서 홀로 계신 시아버지를 모시면서 시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했다.

 평일에는 남편도 없는 시집 구석진 방에서 홀로 보내며 이른 새벽에 일어나 시아버지 식사를 준비하고 출근했던 아내의 신혼시절은 젊은 새댁이 안고 가기엔 너무 벅찬 현실이었다. 결혼 후 바로 임신을 한 아내는 빠듯한 출산 휴가를 온전하게 사용하려고 출산 당일까지 출근했다. 

산통(産痛)을 느낄 때도 혼자였고 급하게 입원한 것도 혼자였다. 교통이 불편했던 시골구석에서 아내의 입원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인천기독병원으로 갔어도 아내는 이미 출산한 뒤였으니 정작 산고와 출산의 엄숙한 순간에 남편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출산휴가를 마치고 출근하는 아내에게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곧 바로 둘째를 연년생으로 낳게 되었다. 아직 복무기간이 남아 있어서 여전히 일상은 달라진 게 없는데 두 아이의 엄마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결국 큰 아이는 양동의 할머니에게, 둘째 아이는 인천의 시누이에게 맡기고 시골과 서울, 인천을 넘나들며 사모로서, 두 아이 엄마로서, 시아버지를 모시는 며느리로서 그리고 직장인으로서의 1인 4역을 감당했다. 아내는 지치고 고단함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둘째 아이는 친정엄마의 해산구완을 받으려고 광주(光州)에서 낳았다. 입원 소식 듣고 열심히 달려갔지만 여전히 출산한 이후였다. 또 아내의 출산순간에 남편이 없었으니 마음으로 더 힘겨웠을 게다. 시쳇말로 ‘팔자에도 없던’ 목회자 아내의 길을 걸으면서 아내가 체감해야 했던 어려움의 정도는 꽤 컸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규율이 엄격한 군부대에서 장교품위를 유지하며 명령만 해도 되는 화려한 직업 이면에 이렇게 섬김과 낮아짐으로 맡겨진 사명을 감당했으니 믿음이 아니었다면 견디기 어려웠을 삶이었다. 드디어 의무복무 기간이 끝났다. 전역을 해야 했지만 당장에 해결되지 않는 생활고로 아내는 연장근무를 신청했다. 남편의 대학원 졸업 때문이다. 어린 딸들의 엄마요, 남편의 학부모요, 시부(媤父) 봉양하는 며느리 역할까지 담당해야 했으니까 아내의 신혼은 단꿈을 꾸어볼 새도 없이 이렇게 팍팍했다. 그러고 보니 그 어깨는 꽤 무거웠을 텐데 아내는 힘들거나 아프다는 말 한 마디가 없었다. 울지 않으면 아픈 줄 모르는 것이 남편의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러나 먼 훗날 세월이 한참 지난 후 아내의 간증을 들으면서 그 시절 아내의 고단함을 절절하게 깨달았다.

아내의 벅찬 현실을 충분하게 헤아리지 못한 나는 목양전념(牧羊專念)이 하나님 앞에서 성실한 목자의 삶이라 믿고 열심히 달려왔다. 그 옆에서 목회 동역자로 함께 달려온 아내는 어느덧 반백(半百)의 인생 고갯마루에서 세 손주를 본 할머니가 된 것이다. 

나이는 아직 중년인데 신분은 벌써 노년에 들어섰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큰딸의 산관 할미가 되어 애틋한 마음으로 산바라지하고 있다. 제 엄마에 비하면 좋은 환경인데도 힘들어하는 딸을 보면서 문득 아내는 너무나 어려운 일을 말없이 잘 감당했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아내는 진정 내 인생길에서 큰일 해낸 장사요 오늘의 우리 가정과 목회를 있게 한 공로자였다. 그런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적기에 표현하지 못하고 달려온 삶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으니까 남은 삶이라도 반복적인 시행착오(試行錯誤)를 줄여야 하리라. 어디 내 아내뿐이랴? 아내가 되고 어머니의 길을 걸어가는 이 땅의 모든 여인들의 삶이 아니런가? 여자의 일생을 떠올리면 왠지 숙연해진다. 둘이 하나 되라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제정된 올해 부부의 날(5월 21일)은 특히 이 땅의 모든 남편들이 아내의 고마움을 마음 깊이 간직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섬광(閃光)처럼 스친다. 남편들의 듣는 귀가 복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로새서 3:18).

gkwns44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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