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6월 05일 금요일
뉴스홈 종교
시카고 언약장로교회 유승원 목사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생각!'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5-22 00:00

시카고 언약장로교회 담임 유승원 목사.(사진제공=언약장로교회)


<사 2:1-22>

1. 여호와의 날을 언급합니다.
‘욤 아도나이’ – 여호와의 날이지만, 여호와를 발음하지 않고 아도나이, 즉 ‘나의 주님’으로 읽기 때문에 ‘나의 주님의 날’입니다. 줄여서 말하면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주일’입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유다를 바로잡으려고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서 개입하시는 날입니다.

이 날은 자리가 잘못된 것들이 다 제 자리로 질서 잡히고 당연히 하나님께서 제일 윗 자리에 앉으시는 날입니다. 그날 있게 될 일이 언급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2-3절).

요즘 같은 때에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고대하게 되는 날입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4절).

이것이 어떻게 가능해지나요? 하나님께서 가장 높은 곳에 앉으심으로써, 즉 하나님께서 왕이 되어 직접 통치하심으로써 이뤄집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사역으로 외치셨던 ‘하나님 나라’입니다.

2. 이 일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요일을 특별히 ‘여호와의 날’, 즉 ‘주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구약적인 안식일이라기 보다는 종말론적인 주님의 날, 주일입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는 날, 그분께 예배하는 날, 그분이 말씀하시는 날, 그분 안에서 평화의 복음이 주장하는 날...

주일마다 우리는 이 여호와의 날을 생각하고 여호와의 날을 적용해야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한 주의 시작일을 주일이라 부르는 것은 그렇게 시작한 모든 날이 다 여호와의 날, 주님의 날, 하나님 나라의 시간임을 알고 살자는 뜻이지요. 그래서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날입니다.

3. 여호와의 날에 이루어지는 일을 언급합니다.

“11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12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11-12절).

여호와의 날에 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1절, 12절, 17절에 나와 있습니다. 눈이 높은 자, 교만한 자, 거만한자, 자고한 자...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사람의 교만이 설 곳이 없습니다. 교만이 모든 죄의 근원입니다.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것,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께 닿으려 하는 것,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자기가 왕이 되어 다른 모든 것을 자기 아래 두려 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자신의 성품을 ‘겸손과 온유’로 정의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래 자신을 둔 사람의 모습입니다. 교만의 반대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내 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벧전 5:5).

우리는 은혜 없이 못 삽니다. 은혜는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흘러 흘러 내려 갑니다. 가장 낮은 곳이 바다입니다. 그곳에서부터 우리는 해발, 즉 높이를 측정합니다. 그 해발의 장소인 바다를 가 보셨지요? 그 어떤 것도 범할 수 없는 광대한 물이 그곳에 차 있습니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가장 낮은 곳입니다. 겸손한 마음입니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미덕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겸손한 마음이 은혜의 바다입니다.

4. 여호와의 날이 내게 지금 여기서 이뤄지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네, 겸손입니다. 은혜 받는 겸손을 위해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에게 사도 바울이 온유와 겸손이 그 성품인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합니다.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겸손의 그리스어 말 뜻은 ‘낮아짐’입니다. 바로 앞에서 풀어서 얘기했지요.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원래 겸손의 뜻입니다. 마음을 낮은 곳에 둡니다. 자신을 하나님 아래 두고,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깁니다.

마음을 낮추세요.
겉으로만 아니라 진심으로 정직하게 마음을 낮추는 것이 겸손입니다. 교만을 버려야 하는데, 이 교만은 뱀처럼 교활하게 사람 마음의 깊은 곳을 오염하고 있습니다.

가장 겸손한 행위인 예배와 기도와 금식과 고행을 하면서 지극히 교만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가장 신앙적인 사람이 교만한 이유, 매사가 종교적인 사람이 이상하게 교만한 이유...

마음을 낮추지 않았기 때문에 겸손한 모양은 있어도 겸손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심각하게 교만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고 자부하면서 매사를 하나님 말씀으로 장식했던 바리새인들이 가장 교만해서 예수님을 박해했습니다.

진실하게 낮추는 것이 가장 안정된 것입니다. ‘오뚝이의 원리’를 생각하세요. 밑으로 내려가면 됩니다. 모든 것이 다 낮아져 밑으로 내려가면 무게 중심이 잡혀 넘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일어납니다. 그것이 오뚝이의 원리지요. 넘어뜨리면 다시 일어납니다. 바닥에 무게가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너도 나도 위에 있으려고 하면 그것이 교만인데 그 경우 무게가 위로 쏠리니까 자꾸 자빠집니다.

오늘도 주님의 날입니다. 주님이 주님 되게 하시고 그 아래서 안정된 생명으로 사랑과 평화를 누리십시오.


jso8485@naver.com

[ 저작권자 © 아시아뉴스통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제보전화 : 1644-3331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의견쓰기

댓글 작성을 위해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 시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포토뉴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