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7월 11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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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빛교회 운용 목사, 주님이 나의 목자시라는 말의 의미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5-26 12:00

말씀의빛교회 운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주님이 나의 목자시라는 말의 의미]

(시편 23편)

주님이 자신의 목자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시23:1)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삶에 어려움이 전혀 없도록 이끄신다는 뜻일까?
풍성하게 잘 먹고 잘 살도록 인도하신다는 뜻일까?

1. 그렇다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시23:2)

우선 그런 의미가 있다.
양에게 푸른 풀밭은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기에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물가로 이끌어 쉼을 주신다는 말은
먹고 살아가는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이 목자로서 하시는 건
탐욕을 채워주시는 것이 아니다.

정상적으로 먹고 정상적으로 쉬도록 해주신다는 의미다.
바라는 먹고 살아가는 수준과 쉼의 수준이
일용할 양식을 먹는 것을 넘어서고
정상적인 쉼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면
그건 양으로서 목자에게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이다.

탐욕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충분히 주시고
충분히 쉼도 누리게 하신다.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늘 모자라는 듯한 마음을 갖고 
쉼 없이 달려간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고,

반대로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주님이 채워주실 것이라 믿으며
기본적인 성실한 삶조차 살아가지 않는다면
그건 게으르고 나태한 것이리라.

성실하게 살아가면서 주님을 신뢰하면
목자되신 주님은 자기 백성을 
충분히 먹고 살아가도록,
그리고 충분한 쉼을 누리도록 인도하신다.

2. 그렇지 않다

그럼 주님이 목자되시는 삶에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을 것일까?
그건 전혀 아니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시23:4)

주님의 백성에게도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 때가 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고 어두운 때가 
주를 믿는 백성에게도 있을 수 있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 
주의 백성은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먼저는, 그 상태가 주의 백성으로서 
정상적인 상태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일은
주의 백성에게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시인이 노래하는 대신,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주께서
자신과 함께 해주신다고 노래한다.

어려움과 고통의 순간이 없는 것이
주의 백성의 삶의 특징이 아니라,
고난과 아픔과 절망의 시간이 찾아오지만
그때에도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주께서 함께 해주심이 주의 백성의 삶의 특권이다.

3. 왜 죽을 것 같은 고통을 허락하실까?

아무리 생각해도 죽을 것 같은 고통의 시간을 
애초부터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자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은데,
왜 주님은 그런 시간을 겪게 하실까?

그 이유는 주의 백성을 단순히 보호하는 것만이
목자이신 주님의 의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은 자기 백성을 성숙시키길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아픔과 고난을 허락하시고
그 고통의 순간에 함께 하심을 경험하게 하심으로
그가 살아가는 삶에 두려움을 극복하는 
참된 성숙함을 주신다.

두려움을 극복한 삶은 
영원토록 주님의 집에 거하고자 하는
깊은 갈망으로 연결된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시23:6)

4. 나는?

'왜 이렇게 삶이 힘들어야 하나?'
라는 생각을 참 많이도 했었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든 적도 제법 많았으니
내가 신앙이 좋다는 생각을 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그저 살고싶었다.
살고 싶어서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하루에 거의 15시간 정도까지 죽도록 일을 했다.
몸이 부서질 것 같이 피곤했다.

그런데도 원하는 만큼 재정이 넉넉해지지 않았고
피곤에 절어 살아가야 했기에
쉼이라는 단어는 나와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주일에는 아침 7시 1부예배부터
고등부 예배, 셀모임, 그리고 밤 예배까지
쉼없이 예배와 모임에 참석했다.
당연히 쉴 수 있는 날이 없었다. 

그렇게 살다가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을 때
갑자기 소름끼치게 무서웠다.
신자의 삶이 아닌 듯 보였기 때문이고,
일만 하다 죽는 것은 참으로 비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선 메마르고 삭막한 내면을 가진 삶에서 벗어나야 했다.
말씀을 재대로 묵상하기 시작했고
주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회복하자
눈물이 회복되었고 내면의 삭막함도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일하는 시간은 여전히 길어서
아침부터 시작한 일이 밤 12시가 넘어서 끝났고,
피곤으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매한가지였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는 중에
말씀은 서서히 내면에 충문해져 갔다.
다른 건 모르겠고 말씀을 나누고 가르치는 삶고 싶었다.

말씀이 마음에 주는 충동을 따라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경기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우선 재수생 수업을 할 수 없게 되었기에
오전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학원을 운영했기에 마음의 긴장은 커졌으나
시간적으로는 여유가 조금 생겨서
몸의 피곤은 많이 줄이들었다.

학원를 운영하면서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신학 공부하는 중에 교회를 개척했다.

3가지 일을 하면서도
부산에서 일했던 것보다는 힘이 덜 들었다.
매일 밤 10시면 일이 마쳐졌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3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보니
학원 운영이 조금씩 어려워졌다.
신학교를 휴학하고 학원 운영을 정상화시킬까 
고민을 하기도 했으나 금세 마음을 바꾸어
신학공부를 끝마치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두기로 결정했다.

말씀을 나누고 가르치는 삶에
가장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던 삶에서
이렇게 삶의 우선순위를 바꾼 것이
나에게는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그 결과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을까?
그럴 리가 없다.
학원 5개를 말아먹은 것으로 대표되듯
내 삶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나는 소위 이중직 목회자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교회를 섬겼다.
참으로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했다.

교회에는 어려움이 없었을까?
역시 그럴 리가 없었다.
큰 어려움이 있었다.
개척한지 2년 반만에 교인들이 거의 전부
교회를 떠난 것이다.

그건 새롭게 죽을 듯한 고통이었다.
그때 난 주님께 그 상황에 대해
하소연하고 울었다.

이게 뭐냐고, 왜 이런 일이 생겼냐고,
내가 목회자 자격이 없다면
신학공부 시작하기 전에 말쓴을 해주시지,
왜 신학공부하도록 충동을 주시고
교회 개척할 충동도 주셔서 이런 아픔을 겪게 하시냐고
하나님께 얼마나 따졌는지 모른다.

사실은 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길임에도
나는 목자이신 주님께 따지고 또 따졌다.
목자이신 주님께 안 따지면 누구에게 그러겠는가 싶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걷고 있던 나와
주님이 함께 걸어주셨던 것이다.
살 것 같았다.
그래서 남은 성도 3명과 함께
다시 교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릭 지금은 이렇게 행복하게
목사로서의 삶을 누려가고 있다.
매일 묵상하는 말씀이 나를 살리고,
매주 설교로 그 말씀을 나누는 것이 행복하고,
묵상 세미나와 일대일 성경공부 세미나를 통해
말씀의 사람을 세워갈 수 있음은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

그리고 점점 두려움이 사라져간다.
삶에 어려움이 찾아올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실 것이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믿어지기 때문이다.

나의 남은 삶이 주의 집에 영원히 거할 날을 사모하며
오늘 하루하루를 주와 동행하는
복된 삶이길 소망하는 아침이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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