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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언약장로교회 유승원 목사 '성령으로 충만하여 착하게 삽시다.'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5-28 22:52

시카고 언약장로교회 담임 유승원 목사.(사진제공=언약장로교회)


<누가복음 6:27-38>

1. 누가복음에서 읽지만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 나와 있는 유명한 가르침들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 해주며 저주하는 사람을 오히려 축복합니다.

이 뺨을 치면 다른 뺨도 돌려 대며 겉옷 빼앗으면 속옷까지 벗어 주라. 달라면 주고 돌아올 것 없어도 베풀어라…

여기 말씀하신 대로 문자적으로 그대로 하고 살면 우리가 도대체 이 세상에서 생존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일상의 세계 속에서 사는 우리가 정말 이렇게 다 내어주고 사람들 요구대로 다 하다가 순식간에 파산하고 일찍 세상 떠나라고 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2. 우선 예수님이 이렇게 여기 쓰여 있는 대로 한 적이 있는지를 살펴보면, 일단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한 대 맞으면 더 때리라고 뺨을 내 주신 경우는 없습니다. 반면에 꼬치꼬치 따지기 좋아하며 딴지 거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는 ‘독사의 자식들’이라면서 험한 말로 되받아 치기도 하신 것 보면 그냥 간과 쓸개 다 내주고 사신 것은 아닌 듯합니다.

또한 제자들이 검을 지니고 다녔다는(눅 22:36-38) 것을 봐서 그룹으로 다닐 때 방어와 보호는 염두에 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산적 떼가 달려들면 그대로 제자들과 같이 죽으라고 목 내놓으신 것은 아닙니다.

한 번은 성전에 들어가서 채찍을 휘둘러 짐승들 몰아내고 환전상들 상을 뒤엎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회계가 있어서 돈 자루를 갖고 다녔다는 것은 앞뒤 재면서 재정관리를 하셨음을 뜻합니다.

제자들에게 비둘기 같이 순결하지만 동시에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권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몰리고 힘들면 사람들 없는 곳으로 피해 가서 쉬시는 retreat의 기록도 여러 곳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폭력 쓰는 사람들 앞에서 그냥 맞고 살라고 이 말씀하신 것 아님은 아셔야 됩니다. 남편이 폭력 쓰면 착한 아내가 맞아 죽을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것 아닙니다. 돈 잘 생각해서 사용하지 않고 길에다 다 뿌리는 것이 잘 하는 것 아닙니다).

3. 분명히 여기서 열거된 여러 예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특성 중 하나인 ‘수사법’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이런 가르침의 방법을 ‘과장법’(hyperbole)이라고 합니다.

산상수훈에 그런 경우들이 여럿 있습니다.
“29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 5:29-30).

여러분, 눈 뽑으면 안 됩니다. 절대로 그러면 안 되요. 눈으로 보다가 음욕에 빠지지 않게 하라는 것이 요지입니다. 계속 죄 짓다가 지옥 가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손 잘라 버리면 안 됩니다. 몸으로 죄 짓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4. 여기서 예로 드는 것들을 생각없이 따라하려고 고민하기 보다는 point가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됩니다. 그 포인트가 내 삶이 되게 해야 됩니다.

그렇습니다. 과장법의 경우 과장한 경우들을 문자적으로 따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리키는 포인트는 순종해서 실천해야 됩니다.

과장법이니까 농담으로 여기고 그 포인트까지 무시하면 그건 진짜 지옥 가는 길입니다. 포인트가 무엇인가요? 그 핵심은 6:36에 있습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Γίνεσθε οἰκτίρμονες καθὼς [καὶ] ὁ πατὴρ ὑμῶν οἰκτίρμων ἐστίν.)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헤세드, 인자함, 자비로움이지요. goodness, kindness, and mercifulness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산상수훈에서는 이렇게 구체적인 예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6:45).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악인을 심판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쫀쫀하게 햇빛 주실 때 선한 사람에게는 주시고 악한 사람에게는 ‘넌 안 돼’ 하고 가리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셔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 비 내릴 때 불한당에게는 방울 하나 튀지 않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햇빛도 비도 하나님께서 생명 가진 모든 자들에게 그들의 상태와 상관없이 똑같이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이 기본적인 은혜를 지금은 똑같이 내려 주십니다. 아주 이해가 잘 됩니다. 쉽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딸인데 같은 도량 있는 은혜의 마음을 가지는 것, 그것이 여기서 말하는 ‘자비함’입니다.

5. 이 ‘헤세드’, 하나님의 은혜를 본받아, 내가 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같은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산상수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내가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하심과 같이 내가 자비심을 품고 사는 것입니다. 은혜를 입었으니 은혜로운 마음을 갖고 은혜스럽게 살려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한 삶입니다.

이렇게 풀어서 묵상해 봅니다. 나에게 악하게 했다고 해서 복수하고 앙심 품고 괴롭히며 죽이려는 앙심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나를 괴롭게 하고 내 마음을 힘들게 해도, 그래도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웃어주는 것입니다. 욕하지 않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래도 필요할 때 살펴주는 것입니다. 나에게 잘못 했어도, 나에게 못 되게 굴었어도 나는 못 되게 굴지 않는 것입니다. 너그럽고 은혜로운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고아와 과부를 멸시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강도 만난 자를 위해 길을 멈추고 그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제자의 이름으로 살피고 돌보고 생각해주는 것입니다. 내게 100데나리온 정도 잘못한 자를, 내가 1만 달란트 탕감 받은 것을 생각해서 용서해주는 것입니다.

6. 하나님 아버지의 그 은혜의 마음을 나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가능성이기 이전에 당위입니다. 가능하던 가능하지 않던 해야 됩니다.

그런데 가능한 것입니다. 이상주의나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마음과 삶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내 마음에 품는 것입니다. 선한 자비심입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착한 사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으로는 어차피 가능하지 않은 것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비심을 갖는 것처럼 자비심을 품고 좋은 사람이 되라는 것이 이 명령입니다. 그래서 알고 보면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는 말씀입니다.

갈 5:22-23.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마음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착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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