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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생명교회 조태성 목사 '성령님께서 기준이시다.'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7-02 00:29

영목신학원 조태성 교수.(사진제공=새생명교회)


1. 나의 하루 일과는 여유 있다면 여유 있고 타이트하다면 참 타이트하다. 객관적으로 일정이 타이트한 날도 있고 여유 있는 날이 있다. 그러나 내가 주관적으로 느끼기에는 일정이 분명 바쁜데 내면은 여유 있는 날이 있다. 반면 일정은 여유로운데 내면이 바쁘고 분주해서 정신 못 차리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밤이 되면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아... 이... 한심한 녀석아... 왜 그랬어...’ 

다른 이유가 아니다. 성령님과 교제 나누는 것이 성공적이었는지, 부족했는지의 문제다.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며 동행하는 삶에 주목했는지 잊고 살았는지의 문제다. 내가 느끼는 여유의 기준은 언제나 성령님을 의식하며 존중해드리는 삶이다.

2. 평균적인 하루의 삶, 사역 내용은 이렇다. 오전에는 성령님 의지하며 예수님 안에 머무는 시간이다. 하늘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영혼몸의 쉼과 회복, 충전의 시간을 가진다. 전화나 SNS를 멀리 한다. 내가 다른 분들보다 부족하기에 이런 부분에 충분히 집중해야 한다. 

점심 먹고 교회와 집에서 성령님과 삶 속의 교제를 중요하게 여기며 오후 일정을 시작한다. 가급적 매일 운영 중인 카페와 블로그, 페북에 올릴 글을 작성한다. 물론 글은 밤에도 작성한다. 설교 준비도 해야 한다. 설교준비는 말씀 자체도 준비해야 하지만 사실 24시간 1년 내내 열린 마음으로 생활하며 준비한다. 우리 교회 찬양 인도 및 기도 인도를 준비해야 한다. 

3. 예배가 없는 날 저녁에는 집에서 식사를 하고 뉴스와 토론 프로그램도 본다. 중보적인 기도제목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가끔 재밌는 드라마 있으면 가족들이 함께 본다. 신앙, 신학 책들과 문화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책들을 읽으면서 휴식을 취한다. 

일정이 바쁜 날은 지금까지 나눈 일정들 포함해서 예정 된 상담 및 집회, 세미나도 다녀야 한다. 상담이든 교제든 가급적 한 분만 만난다. 나는 관계에서 부족함이 있다 보니 약속을 여럿 잡으면 집중을 잘 못한다. 약속이 둘 이상 되면 금방 피곤해져서 충분히 공감과 사랑, 정성을 쏟을 수 없다. 자꾸 다음 약속을 생각하면서 시간에 쫒기다 보니 관계에 마이너스가 된다. 도움과 위로가 필요해서 만나게 된 분이 자칫 내게서 조급함이 느껴진다면 상처받으시거나 오해하실 수 있다. 

4. 그래서 보통 만남의 약속 시간을 정오 이후로 잡는다. 만나면 보통 점심 식사 하고 커피 마시며 교제 하든지, 아니면 오후에 커피만 마시며 충분히 교제 나누든지 한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어서 책을 집필하는 시즌도 있다. 사실 지금도 책을 집필하는 시즌이다. 밤에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서 글을 쓰고 있다. 이것들만 해도 내가 너무 부족하여 시간이 부족하다. 

5. 그래서인지 성령님께서는 일정이 바쁘든지 여유 있는지와 상관없이 성령님의 영향만을 받기 원하신다. 계속 배우는 것은 이런 사역 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목사가 아닌 아들로서 하나님 앞에 머무는 시간이다. 내 영혼부터 잘 사역해야 한다. 그래서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며 교제 나누는 삶이 중요하다. 

성령님의 친구의 자리에 얼마나 엉덩이 붙이고 버텨내었느냐가 중요하다. 나를 사랑하시는 성령님과 시간을 보내는 만큼 맡겨주신 사역들이 감당된다. 그래야 기계에 기름칠해서 매끄럽게 돌아가듯이 일정이 바빠도 사역 하느라 성령님을 안 놓친다. 성령님을 놓치면 예수님 놓치고 하늘 아버지의 영광을 가리게 되는 거다. 

6. 내가 주의하는 부분이 있다.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지 않아도 기복적으로 떼쓰고 기도하면 또 뭔가 되어짐을 주의한다. 신앙적으로 못된 버릇이 생기는 거다. 그걸로 왕이신 하나님을 조종할 수 있을 거라 착각하기에 이른다. 예전에 유명한 드라마 <모래시계>에 이런 대사가 유행했었다. 

“이러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조종당하시지 않으신다. 멈춤과 기다림, 믿음의 훈련으로 되돌아가신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간 광야로 돌아갔듯이 말이다. 

7. 종종 하나님 나라를 위한 비전이랍시고 내가 하나님 보다 앞서서 흥분하여 추진할 때 재정적 지원의 기적들이 경험된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하나님께서 재정적 지원 해주신다고 해서 지금 바쁘게 추진하는 일이 꼭 하나님 사역은 아닐 수 있음이다. 

돌아보면 자상하신 부모님이 떼쓰는 아들에게 실패를 경험해보라고, 정신 차릴 기회의 현장을 마련해주는 것과 같다. 돈을 맡겨서 하고 싶은 일 해보고 실패를 통해 배우라는 의미다. 값진 경험이 앞으로 인생의 큰 밑거름이 될 것을 알기 때문에 지원해주는 것이다. 

8. 물론 두려워해야 한다. 아무리 실패를 통해 배우길 원하셔도 내가 배우지 못하는 걸 두려워해야 한다. 성장하지 못하는 걸 두려워해야 한다. 부모 원망하고 친구 원망하며 아집과 고집으로 똘똘 뭉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 가운데서도 나는 성령님과 어제보다 더 친밀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해야 한다. 그래서 성령님께 가끔은 이렇게 여쭤본다. 

“사랑하는 성령님, 저 잘 하고 있나요? 어제보다, 이전보다 성령님과 친해지고 있나요? 이전보다 성령님을 소홀하게 대우해드리지 않았나요? 만약 그렇다면 성령님, 기다리시지 마시고 제 마음을 두드려주시지 않으시겠어요? 부디 생각나게 해주시고 깨닫게 해주세요. 성령님께서는 제 가장 귀한 친구이십니다. 제 전부이십니다. 성령님께도 제가 그런 친구이길 원합니다.” 

9. 오늘도 잠자리에 들 때 사랑하는 성령님의 이런 음성 듣기를 갈망한다. 

“사랑하는 태성아, 오늘 너는 나와 친밀했느니라. 오늘 너는 나와 동행하였노라. 오늘 너는 나의 친구였노라. 네가 나를 이렇게 존중해주니 내 마음이 참 기쁘구나!”

10. 내 소원 중에 하나는 <전무후무>가 아닌 <전무>한 사람이 되는 거다. 과거 어느 누구보다 성령님과 친밀한 사람으로서는 전무한 사람이 되는 거다. 현재 존재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성령님께서 느끼시기에 가장 친밀한 사람이길 소망한다. 

왜 <후무>한 사람은 아닌가? 다른 소망도 간절해서다. 나 혹은 누군가를 통해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친밀함을 누리는 분들이 많이 생겨나길 소망한다. 그 중에 나나 다른 분들을 넘어서는 성령님의 친구의 자리를 차지하시는 분들이 계속 생겨나길 소망해서다. 그 소망이 겸손히 이 글을 품어주시고 읽어주시는 여러분 가운데 많이 이루어지길 갈망한다. 할렐루야!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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