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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신진도 고가에서 조선 수군진촌 문서 추가발견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이광희기자 송고시간 2020-07-23 17:34

태안 국문학사 새로운 장 마련 계기될 듯
24일 오후 1시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서 공개
태안 신진도 고가에서 발견된 초서체 '인간계화락'한시

[아시아뉴스통신=이광희. 이수홍 기자]

‘사람이 계수나무꽃 떨어지듯 하여, 
밤은 깊은데 춘산도 적막하다’
(人間桂花落 夜靜春山空, 인간계화락 야정춘산공)

조선시대 태안 앞바다인 안흥량을 지나는 배들이 급물살에 난파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수군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시 한 구절이 이런 아픔을 잘 드러내고 있다.

‘사람이 계수나무 꽃처럼 떨어진다’는 표현은 너무나 화사하지만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아픔이다. 아비규환이 따로 있었을까. 게다가 이를 지켜보는 깊은 밤 태안의 봄 산은 어둠속에서 할 말이 없을 수밖에....

조선시대 태안 안흥량 수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공개된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직무대리 심영섭)는 지난 6월 태안 신진도 고가에서 조선 수군의 명단이 적힌 수군 군적부와 한시를 발견한 이후 수거된 벽지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수군진촌의 역사와 서정을 느낄 수 있는 다수의 한시 등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당시 발견된 태안 신진도 고가는 상량문에 적힌 ‘도광(道光) 23년’이라는 명문으로 1843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고가에 거주했던 후손 최인복 씨의 증언에 따르면 가옥은 대청을 중심으로 ‘ㅁ’자형 건물 배치이며 260평의 대지에 방 5칸, 광 6칸, 부엌 3칸, 소 외양간 1칸, 말 우리 등을 갖추고 있었으며 실측결과, 현재는 ‘ㄷ’자형 구조만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광 6칸이 존재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안흥진 수군을 관리했던 관가의 건물로 추정된다”고 했다.
도광(道光)은 청나라 도광제(道光帝) 선종의 연호를 적은 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한시 「聞新設開宴四方賢士多歸之」(문신설개연사방현사다귀지)는 ‘새로 짓고 잔치를 베푼다는 소식을 듣고 사방에서 선비들이 모였다’는 뜻으로 1843년 7월 16일 태안 신진도 안흥진 수군의 관가로 사용될 집을 짓고 다음 해 안흥진 첨사 조진달의 재임 기간인 1844년에 잔치를 베풀어 사방의 손님을 맞이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안흥량은 태안 앞바다 일대 신진도, 마도, 관장목을 연결하는 물길이 험한 구역으로 수군을 관리하고 통솔하는 종삼3품 벼슬인 첨사가 관리했다. 
태안 신진도 고가에서 발견된 황맥양출가 한시

또 다른 한시는 「黃麥打麥羊 出家家」(황맥타양출가가)란 제목으로 ‘집집마다 찰보리를 타작하여 거두어 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군포를 내라는 조칙이 있는데도, 갑자기 지난밤 보리를 보내어 왔구나’(布詔行令曾如此 忽然昨夜麥秋至). 
이 문장을 통해 이 가옥이 안흥진 수군을 관리하기 위해 군포나 곡식을 거두어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군포는 군복무를 하지 않는 병역의무자가 그 대가로 납부하는 삼베나 무명 등 포목인데도 불구하고 형편이 어려운 병역의무자들이 그 대신 보리를 걷어왔다는 참혹한 상황을 그리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안흥진 수군의 중요 임무 중 하나였던 조운선의 안흥량 통과를 위한 호송과정에서 발생한 인명의 희생과 이를 비유한 한시도 새롭게 발견돼 시대의 아픔을 가늠하게 한다. 

이 시는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 699-759)의 오언절구 한시 「조명간」(鳥鳴澗, 새가 시냇가에서 울다)의 형식을 빌려 능숙하게 쓴 초서체로 발견됐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사람이 계수나무꽃 떨어지듯 하여, 밤은 깊은데 춘산도 적막하다.’(人間桂花落 夜靜春山空, 인간계화락 야정춘산공)‘ 수많은 인명이 안흥량 앞바다에 빠져 희생된 상황을 해양구조대 역할을 했던 당시 수군들이 그대로 묘사하고 있어 아픔이 묻어난다.

이런 사실은 기록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안흥량을 왕래하는 선박 중 뒤집혀 침몰하는 것이 10척 중 7~8척에 이르고, 1년에 침몰하는 것이 적어도 20척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바람을 만나 사고가 많으면 40~50척에 이른다’(1667년인 현종 8년 윤 4월조)라고 기록돼 있다. 

이렇게 사고가 많은 해역의 특성으로 인하여 수군과 조운선을 관리하는 이 고가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기원한다는 ‘無量壽閣’(무량수각)’이란 문구도 발견됐다.
태안 신진도 고가에서 발견된 무량 글씨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이번 태안 신진도 수군진 유물 발견을 계기로 민간에 전승되어 내려오는 안흥진 수군과 관련한 개인문집과 문학작품을 찾아 번역할 예정이다. 
태안 신진도 고가에서 발견된 수각이란 글씨

관련된 주요 문집으로는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의『백곡집, 栢谷集』, 김규오(金奎五, 1729-1791)의『최와집, 最窩集』,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의『은송당집, 恩誦堂集』등이며, 수군진의 문학과 역사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24일 오후 1시에 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서 개최하는 「제2회 태안 안흥진의 역사와 안흥진성」학술대회에서 해당 유물들을 공개할 계획이다.

태안 신진도 고가 인근 초등학교 주변으로는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시대 건물로 추정되는 전통 기와집이 다수 남아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2kwang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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