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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 '죽기까지 용서받지 못하는 죄'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8-08 20:46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죽기까지 용서받지 못하는 죄]

(이사야 22:1-14)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께 죽기까지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을까?
그런 죄가 있다고 하신다.

(사 22:14, 새번역) 그래서 만군의 주님께서 나의 귀에 대고 말씀하셨다. "이 죄는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받지 못한다." 주 만군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죄이길래 죽기까지 용서받지 못할까?

1. 달라야 하는데 다르지 않음

유다는 이집트나 앗시리아나 바빌론과는 달라야 했다.
다른 나라들은 우상을 섬기는 패역한 나라였고 
유다는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이름은 '환상 골짜기'였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것이 가득찬 성읍이었기 때문이었다.

(사 22:1-2, 새번역) [1] 이것은 '환상 골짜기'를 두고 하신 엄한 경고의 말씀이다. 너희가 무슨 변을 당하였기에, 모두 지붕에 올라가 있느냐? [2] 폭동으로 가득 찬 성읍, 시끄러움과 소동으로 가득 찬 도성아, 이번 전쟁에 죽은 사람들은 칼을 맞아 죽은 것도 아니고, 싸우다가 죽은 것도 아니다.

'환상 골짜기'에 폭동과 시끄러움과 소동으로 가득찼다.
우상에 취한 환락의 도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방 나라들과 달라야 하는데
전혀 다르지 않아서 
동일하게 우상에 취한 나라가 되어버렸기에
하나님은 유다를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나라이면서 이방 나라들과 다를 바 없이
우상에 취하고 타락한다면
죽기까지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될 것이다. 

2. 하나님을 배제한 대책

바빌론이 들이닥치자 유다는 대책을 세운다.

(사 22:8-11 a, 새번역) [8] 유다의 방어선이 뚫렸다. 그 때에, 너희는 '수풀 궁'에 있는 무기를 꺼내어 오고, [9] '다윗 성'에 뚫린 곳이 많은 것을 보았고, '아랫못'에는 물을 저장하였다. [10] 예루살렘에 있는 집의 수를 세어 보고는, 더러는 허물어다가, 뚫린 성벽을 막았다. [11] 또한 '옛 못'에 물을 대려고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기도 하였다.

유다는 '성전이 있으니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가지고 위기에 대비하지도 않고 있다가,
막상 방어선이 뚫리자 그제야 허겁지겁 대책을 세웠다. 

무기를 꺼내 오고 물을 저정하고 
뚫린 성벽을 막고 저주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하나님'께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사 22:11 b, 새번역)  그러나 너희는 일이 이렇게 되도록 하신 분을 의지하지 않고, 이 일을 옛적부터 계획하신 분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나름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하나님은 배제한 대책에만 골몰했던 유다는
가장 결정적이고 효과적인 준비는 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 없는 대책과 대비와 대응은
쓸데 없는 실책이 될 뿐이다.
하나님 없는 준비로 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되어 
심판과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

3.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은 먹고 마시자

사실은 마지막까지 돌이킬 기회는 있고 
회개하여 회복될 기회도 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회개하길 원하시고 
진정으로 회개한다면 용서하시고 회복시키는 분이시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다.
마지막이 될 것을 알고 그들이 가진 태도는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사 22:13, 새번역) 그런데 너희가 어떻게 하였느냐? 너희는 오히려 흥청망청 소를 잡고 양을 잡고,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은 먹고 마시자" 하였다.

이런 자세는 신자로서 결코 가질 수 없는 태도가 아닌가?
결국 유다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없는
패역하고 악한 이방 나라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음을
마지막까지 보여준 것이다.

4. 왜 이런 태도가 나올까?

왜 유다는 이방 나라들과 다를 바 없이 우상에 취했고 
왜 하나님 없는 대책만 세웠고 
왜 마지막까지 회개하지 못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은 유다를 자기 백성으로 삼고 
품에 안아 사랑을 해주셨지만,
유다는 하나님의 백성의 길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걸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임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성전 불패'라는 거짓 신화에만 사로잡혀
헛된 구별의식만 키웠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헛된 자존심으로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신자는 무조건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까?
그럴 리가 없다.
신자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안으로 들어온 사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변화가 없음에도 
'교회만 다닌다면 ' 하나님이 조건 없이 지켜주시고 
온갖 세상적인 복을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래서 불신자와 다를 바 없이 
또는 그들보다 더 악하고 이기적으로 살아간다면
그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죄를 짓고 있음에도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 아니라,
회개를 할 때 용서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도 않으면서 
헛된 구원의 확신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면,
교회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거짓 확신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면,
그리고 그 삶은 여전히 탐욕과 욕망의 노예로 살아간다면,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먹고 죽자'라는 태도로 살아간다면,
그 교인은 죽기까지 용서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5. 나는?

학원 강사로 살아가던 시절에 평생의 고민이 있었다.
왜 나는 신자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일까?
왜 나는 불신자들과 근원적인 면에서 다르지 않는 것일까?
왜 나는 일상에서 충만한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
등의 고민이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시원한 해결책이 없었고,
제법 좋은 교회를 찾아서 다녔음에도 
교회에서도, 목사님들에게서도 답을 얻지 못해서 너무 답답했다.

하루를 살아가다가 퇴근할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신자로서 무너지고 넘어지고 쓰러진 처절한 내면을 만났다.
슬프고 절망스럽고 우울했다.

그 슬픔과 절망과 우울을 해결하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았다.
교회만 다니면 구원을 받는다면 개념이
나는 전혀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이라는 개념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나는 예수를 믿었지만 
전혀 예수를 믿는 사람다운 내면과 삶이 아니었기에
'구원의 확신'이라는 개념에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나중에 살기 위해서 말씀을 붙들고 
말씀 속에서 조금씩 살아나고 회복되었다.

그제야 '구원의 확신'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릴 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임을 알았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전혀 맺고 있지 않으면서도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다면 그건 거짓일 가능성이 높은 것임도 알았다.

구원의 확신이라는 개념에 매달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매일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누리고 
울고 웃는 시간들을 보내었고,
일상의 삶에서도 조금씩 절망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왜 마지막까지 '먹고 죽자'의 태도가 되는지 나는 너무 잘 안다.
말씀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때
나의 내면은 너무 허약해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다 포기하고 무너져 버리지 뭐'
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말씀을 매일 묵상하면서 점점 깊이 생기는 확신이 있다.
나의 삶에 대한 가장 중요한 대책은,
나의 노후에 대한 가장 중요한 대책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삶을 거는 것이라는 확신이다.

할 수 있는 만큼은 다른 것들도 준비해야 하겠지만,
말씀에 삶을 걸어서 하나님의 교제를 중단하지 않는 것만큼 
중요한 대책은 없다는 사실을
여기저기에서 사람들과 상황들을 만나면서 더 깨닫게 된다.

다른 것은 없어도 죽지는 않을 것 같다.
다른 것들이 없다면 불편하고 어려울 수는 있어도 
내면이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리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이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은 
죽을 것 같은 고통의 삶이었다.
그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껴보았기 때문에,
그보다 더 큰 고통은 없음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것은 잘 모르겠다.
목회도 더 잘 하는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목회를 '더 잘'하는 방법에 관심이 없다.

그저 말씀 하나에 삶을 걸어서 내가 
신자답게 살아가는 삶이 조금씩 성숙해져 가고,
그 삶을 나누어서 성도들도 함께 그렇게 살아가는 것만이
내가 관심을 가지는 유일한 것이다.

헛된 대책을 세워야 하나 하는 어리석은 걱정에 빠지지 않고,
말씀만이 대책이고
말씀을 통해 만나는 하나님만이 대비책인 
참된 신자의 삶으로 한 걸음씩 더 깊이 들어가길 
간절히 소원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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