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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호치민영락교회 김치두 목사 '산상수훈(8복)에 관한 새 이해 정리'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8-10 22:54

호치민영락교회 담임 김치두 목사.(사진제공=호치민영락교회)


산상수훈(8복)에 관한 새 이해 정리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신 이후 공식적인 설교이다. 즉 예수님의 사역과 의미 그리고 사역의 결과에 대한 기조를 설명한 자리라고 보는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나타날 대 변화에 대한 선포인 것이다. 

필자의 이해가 기존 해석과 차이는 기존 해석이 누릴 복에 관점을 둔 것이 비하여 필자는 주께서 십자가를 지러 오심으로 달라진 사항에 관점을 둔 것이다. 예를 들어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복으로 받는 다는 표현에서 심령이 가난함이 천국을 누리는 인과관계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십자가 이전에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천국을 복으로 받아 누림이 불가능 했는데 이제 주께서 십자가를 지러 오심으로 달라진 사항이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누리게 되었다는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 해석과 큰 차이를 실감하지 못했다면 아직 필자의 해석을 이해하기 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천국 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의 경우에 대한 언급은 일반적으로 그런 모습을 취함으로 복있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설교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천국을 누릴 수 없는 사람의 모습의 나열이다. 

도무지 천국을 누릴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자진 사람들이 복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천국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선포이다. 이 선포의 이유와 명분은 바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러 오심인 것이다. 

팔복이라고 명명해 불려지고 있는 이유는 8가지 복에 대한 언급 때문이다. 하지만 그 8가지 복은 천국을 누리는 복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팔복이 아니라 복은 천국으로 하나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8복”이라는 제목 사용을 지양한다. 

앞서 언급한 내용을 바탕으로 소위 8복 본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란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심령이 가난해서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복을 누릴 수 없는 상태인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을 다시 누리게 된 것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란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사람이 애통함으로 복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그 고통과 절망 때문에 영원히 울어도 그 고통에서 헤어날 수 없었는데 십자가의 은혜로 그 근본 문제를 해결받고 진정한 위로를 얻게 되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란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착한 마음을 품어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복을 누리기는 커녕 손해보며 바보 취급을 받는 경우가 일반적인 시대를 살지만 주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착한 마음을 먹는 사람이 하나님을 봄으로 천국을 누리게 되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란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온유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함으로 복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희생하며 참고 인내함으로 온유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복을 누리지 못했던 상황이 이제는 주께서 십자가를 지러 오심으로 변화되어 온유한 사람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 천국의 복을 누리게 되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이 온유함이란 부당한 것에 대하여 대항할 수 있는 명분과 능력이 충분하지만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대행하지 않고 참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부당한 갑의 횡포에 대하여 을이 갑을 향하여 주먹을 불끈 지었으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의 입장에서 쥐었던 주먹을 풀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분노를 속으로 삼키고 부드러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란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함으로 의의 배부름의 복을 누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의를 경험하며 살기를 갈망하여 주리고 목말라 했지만 누리지 못하던 인생이 이제 주께서 십자가를 지러 오심으로 그 공의를 누림으로 의의 배부름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란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긍휼히 여기지 않다가 긍휼히 여김으로 복을 받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긍휼히 여김의 삶을 쭉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긍휼히 여김의 복을 누리지 못했지만 이제 주께서 십자가를 지러 오셨기 때문에 그 삶에 대하여 긍휼히 여김을 받는 천국을 누리게 되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란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평을 위하여 이쪽에서도 욕먹고 저쪽에서도 뺨맞는 삶에 대하여 주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 샌드위치의 삶에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음으로 천국을 상속받아 누리게 되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란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을 누리는 시대가 예수 십자가의 은혜로 도래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저의 소견이지만 이것이 성경이 본래의미라고 생각하고 이 글을 발표한다. 페러다임이 전환된 해석의 시도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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