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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대 신학대학원 채영삼 교수,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9-14 03:32

백석대 신학대학원 채영삼 교수(신약학)./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코로나19가 터져서 함께 모이는 일이 어려워지면서부터, 가끔씩 중세의 수도원에서 신앙을 유지했던 수도승들이 떠오르곤 했다. 짧고 간결한 만남, 정기적인 기도 시간, 때로 긴 침묵의 시간, 말없는 노동, 절제를 통해 더욱 풍성하게 열리는 내면과 영적 세계를 추구함으로, 다시금 하나님의 아름답고 거룩한 세계의 질서를 되찾아갔던 신앙 말이다.

얼굴과 얼굴을 보고 마주 앉는 것 역시, 진실한 만남에 열려 있을 때에만 유익할 뿐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만나도 만나지 않는, 수 없는 만남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면으로 만나서, 그 만남에 반드시 있어야 할 진실한 만남의 요소들, 예컨대, 경청할 시간, 생각할 여유, 서두르지 않는 말, 내 속에 거짓을 거를 시간, 이런 것들이 없어지면, 그 만남은 자주 무익한 다툼이 된다.

3시간을 만나도 만남이 없는 만남도 있고, 3분을 만나도 진짜 만나는 만남도 있다. 대면으로 만나 예배드리며, ‘모이자, 돈 내자, 집짓자’가 전부였던 시절도 있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만난다고 해서 만남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듯이, 교회로 한 자리에 모인다고 코이노니아가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다.

코이노니아로서의 교회 안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말씀의 임재와 그 말씀을 통해 온갖 거짓과 상처, 위선과 모순, 죄된 욕망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시고 자유케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코이노니아의 중심에서 일어나야 때문이다. 진실한 말씀의 나눔과 성령의 살아 있는 역사, 치유하고 회복하시는 역사가 없다면, 코이노니아는 대면이라도 유흥이다.

그렇다고 비대면으로 서로 떨어진다 해서 진실한 만남이 되리라는 법도 없다. 교회가 흩어져 있는 상태에서, 말씀과 성령, 생명과 사랑의 나눔이 역사하는 코이노니아가 절로 되리라는 보장 역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를 직접 만나지 못할 때, 그 빈자리에서 우리는 그간 갖지 못했던 참된 코이노니아가 들어 올 뜻밖의 공간을 찾을 수는 있다.

상대의 말을 좀 더 오래 생각할 시간, 잘 들리지 않아서 더 경청할 공간, 내 말도 조금 가려서 하고 걸러서 해 볼 여유, 온갖 행사가 사라진 자리에서 펼쳐진 성경, 예배를 보아도 허전한 감정의 공백 속에서 열리는 기도, 하나님께 대한 갈망, 전염병과 불안, 싸움과 혼란의 세상에서 눈을 들어 바라보게 되는 새 하늘과 새 땅, 그 희망, 지금 나는,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그 영원한 생명을 살아야 할까에 대한 묵상, 깊은 기도와 작지만 진실한 실천.

이런 요소들이, 교회를 깊게 할 것이다. 교회는 코이노니아이므로, 코이노니아가 깊어질 때 교회도 깊어질 것이다. 자기 언약 백성으로부터 자주 자신을 감추시고, 보이지 않게 하시고, 그 백성을 어둠 가운데 놓아두셨던 하나님, 더욱 그분을 찾고 그립고 갈망하게 하셨던 하나님, 그렇게 우리를 길러 오셨던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이 어둠과 고독 가운데서 더욱 그분께 가까이 이끌어주시기를.

기도한다. 길어지는 비대면의 침묵이 주는 뜻밖의 만남들이, 얼굴과 얼굴을 맞댄 우리의 코이노니아를 그 이전과는 같지 않게 하기를. 더 진실하고 풍성하게 하기만을. 그 때까지,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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