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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 '세상의 복이 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인'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9-20 01:09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세상의 복이 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인]

(창세기 47:13-26)

1. 대제국이 살아난 이유

요셉 덕분에 이집트라는 대제국이 살았다.
요셉이 아니었다면 7년 흉년을 견디지 못하고 
그 엄청난 제국이 망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 이집트를 살리신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집트라는 세속적이고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를 구원하셨을까?

이집트를 위한 하나님의 자비였지만
그 구원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안전한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한 자비였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실 때
자기 백성의 보금자리가 되는 나라를 복주셔서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신다.

이집트는 요셉 덕분에 살아나고 구원을 받은 것이지만,
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구원을 받고 복을 받은 것이다.

2. 이집트의 체질을 바꾸다

요셉이 참으로 지혜로운 정책을 펼쳤다.
백성들에게 곡식을 공짜로 주지 않고 
돈을 받고 팔았다.
당연히 이집트의 모든 돈이 요셉에게로 왔고 
요셉은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지고 갔다. 
 
(창 47:14, 새번역) 사람들이 요셉에게 와서, 곡식을 사느라고 돈을 치르니, 이집트 땅과 가나안 땅의 모든 돈이 요셉에게로 몰렸고, 요셉은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지고 갔다.

백성들에게 돈이 떨어지자 
가축을 받고 곡식을 제공했고 
가축도 없어지자 토지를 받고 곡식을 제공했다.

토지마저도 없어진 이집트 백성들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을 종으로 드리고 
곡식을 받아갔다.

현대의 시각으로 보고 요셉이 시행한 이 정책을 
나쁘다고 보겠지만, 
그건 고대 사회를 모르고 하는 생각이다.

소수의 권력자들과 다수의 노예와 같은 백성으로 
고대의 제국들은 구성되어 있었다.
백성들은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착취당했다.

요셉은 기근을 통해 이집트의 체질을 
하나님 나라의 구조로 바꾸어 갔다.
요셉이 악한 의도를 가졌다면
바로의 종이 된 백성들을 가혹하게 부렸겠지만,
요셉은 오히려 백성들을 바로의 농업 노동자가 되게 했다. 

나라는 위기 때 잘 대처할 수 있는
중앙집권적인 나라가 되었고,
백성들은 1/5만 세금으로 바치기만 하면  
4/5는 자신의 곡식으로 먹을 수 있었다.

원래 그들은 세금을 내고 살았을 것인데,  

그 세금이 요셉이 부과한 세금보다 
결코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성들로서는 바로의 종이 된 후가 오히려 
더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모든 토지가 국가의 소유가 되었기에
백성들에게 공평하게 토지를 나누어주고 
경작하게 할 수도 있었기에
평등에 가까운 나라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요셉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 이집트라는 대제국이 
체질이 바뀌어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가까운 나라가 된 것이다.

3. 현대 기독교인들과 나라

현대의 많은 대형교회들과 목사들과 교인들은
나라를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 난 듯하다.

최선을 다해 바이러스와 싸우는 나라의 노력을 폄하하고 
광화문 집회를 열어 오히려 바이러스를 퍼뜨리더니,
다시 집회를 하겠다고 한다.

과거보다는 훨씬 공정한 정부를 향해서 
말도 안 되는 공산주의 프레임을 씌워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교회가 출처로 보이는 온갖 가짜 뉴스들은 
지금도 무지한 교인들 사이에 계속 돌아다니고 있다.

나라에 복이 되어야 할 교회가 
나라를 분란에 빠뜨리고 있고,
바이러스를 대놓고 퍼뜨리면서 
시민들에게 공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지독한 이익집단에 지나지 않는 모습을 
서슴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 
현대 교회들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그런데 참 교회는 따로 있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주류로 보이는 교회는 세속화되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언제나 그들의 참 교회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소수의 신자들의 모임이
공평과 정의를 구하는 참 교회였다. 

이 시대는 참으로 안타깝게도 
참 교회를 찾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지만,
눈에 보이는 큰 교회들 중에서 참 교회를 찾기 어려운 것이지,
참 교회가 없어서는 전혀 아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신자들의 숙제와 과제가 있다.
눈에 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이기주의와 탐욕으로 뭉친
가짜 교회들로부터 빨리 도망쳐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자 개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신앙을 세워가도록,
그리고 일상에서 참 신자로 살아가도록 돕는
바른 교회를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비록 어렵다 할지라도
신앙이 참되고 영원한 생명과 관계 있음을 참으로 믿는다면 
참 교회를 찾아나서는 여정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숙제요 과제임이 분명하다. 

4. 나는?

목사가 된 나의 삶을 돌아볼 때마다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목사가 되지 않았다면 나도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교회에 속해서 
그럭저럭 교회 생활 잘하는 것으로 
신앙이 좋은 것으로 착각하면서 신앙생활 했을 것이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 많이 벌어서
교회에 많이 헌금하는 것이 좋은 신앙이라 착각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으로 끔찍하다.

부산에서 다녔던 교회에서 목사님을 제법 존경했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나중에 제법 엄청나게 재정비리를 저지르고 있었고 
그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자신의 반대자들을 쫓아내고 
온전하게 은퇴까지 했다.

제법 좋은 교회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다녔고 열심히 봉사했었던 시간들이 생각났고,
목사가 되지 않고 그 교회 계속 다녔다면
나도 그 엄청난 소용돌이를 경험했어야 했다는 생각에 
끔찍한 마음이 든다.

수많은 교인들이 상처를 받아 교회를 떠났고
이리저리 다른 교회들을 찾아 가기도 했다고 한다.

어떤 교회가 참 교회이고,
어떤 목사가 바른 목사인지를 
제대로 고민하고 찾아 나선 교인들이 많다는 면에서는
오히려 잘 되었다 볼 수도 있겠다 싶다.

신학공부를 시작하고서야 
교회와 목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게 되었다.
그냥 흘러가다가는 그들과 비슷한 타락을 겪거나,
아니면 타락을 할 수준의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온갖 발버둥을 치며 목회를 하는 불쌍한 목회자가 되고 말겠다 싶었다.

신대원 2학년 때 교회를 개척하면서 
오직 말씀 한 가지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내가 집중하는 '말씀'의 포인트는
일반적인 교회들이 주장해왔던 것과는 좀 달랐다.

'저 교회 목사님은 말씀이 참 좋아.'
라는 측면의 '말씀'이 아니었다.
나는 목사 중심의 교회를 또 하나 세우고 싶지 않았다. 
성도 스스로가 신앙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의 신앙을 신자 각자가 세워나가는 
자발적인 신앙인의 모임으로 교회를 세워가고 싶었다.

쉽지 않았다.
교인들은 생각보다 목회자 의존도가 높았고 
스스로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 속에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스스로 듣는
성숙한 신앙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과정은 참으로 힘들었다.

계속 나를 의지하는 성도들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교인들의 거의 다 떠나는 일이 발생했다.
서럽고 서운하고 섭섭했지만, 
한편으로는 시원한 마음도 있었다.
스스로 신앙을 세워가는 성숙함을 향할 생각이 없다면
우리 교회에 계속 다니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은 어떤 상황이 되었을까?
너무 감사한 상황이 되었다.
나는 그저 말씀을 묵상했을 뿐이고,
성도들이 말씀을 묵상하도록 도우며 교회를 섬겼을 뿐이다.

주일 설교도 매일 묵상해오는 말씀 중에서 
중요하다 여겨지는 본문으로 
가능한 한 깊이 다루어 설교했다.

성도들은 스스로 묵상하며 일주일을 보내었기에
설교에 더 깊이 공감하고 은혜를 누리는 것 같다.

코로나가 찾아왔다.
온라인으로만 예배한 시간이 7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밴드에서 서로의 묵상을 나누고
주일에는 온라인으로 예배하고 
줌으로 나눔 모임을 하는 이런 상황 속에서 
성도들의 고백에 눈물날 만큼 감사한 마음이 든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내용으로 깊이 있는 설교를 듣고 
그 내용을 나눔을 통해 나눌 수 있으니,
코로나 시대가 오히려 복이 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신다.

물론 이런 시간이 오래 되니 
서로가 너무 보고 싶다고 하시지만,
상황이 이러니 때를 기다린다고 하신다.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참으면서 
온라인으로라도 예배하고 나눔을 할 수 있어서
감사를 누려가는 모습이 참으로 기쁘다.

짧은 목회의 시간을 보내왔고 
너무 작고 초라해 보이는 교회를 섬기는 목사이지만,
나는 목사로서 충만한 행복을 누려가고 있다.

교회가 세상에 복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무언가 위대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교회가 세상의 근심거리가 된 이 상황 속에서 
교회가 말씀으로 돌아가서 상식적인 모습을 가지게 되는 것,
신자 개개인의 일상 속에서 신자다운 모습을 가지고 
이웃과 동료들을 상식적으로 대하는 것,
그런 과정 중에 말씀이 주는 충동에 따라
최선을 다해 이웃과 동료들을 섬기는 것이 
이 시대 교회와 신자들이 해야 할 바른 일이 아닐까 싶다.

그저 잘 버티기만 해도 괜찮을 것 같은
이 코로나의 시대에,
교회가 세상과 싸워서 무언가를 쟁취해야 한다는 
헛된 생각을 버리고,
오직 말씀 하나에 삶을 거는 근본적인 신앙의 자세로 
돌아서는 신자들이 많아지길 간절히 소망하는 아침이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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