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9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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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의 테스형!, ‘태수형?’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이광희기자 송고시간 2020-10-03 12:57

이시대 민초들의 아픔을 호소하는 울림이다.
나훈아의 신곡 '테스형'은 이시대 민초들의 아픔을 호소하는 울림이다.[출처kbs2홈페이지]

[아시아뉴스통신=이광희 기자. 소설가]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콘서트는 많은 뒷얘기를 남기고 있다. 더욱이 그가 발표한 신곡 가운데 ‘테스형!’은 포털 검색순위 상위를 랭크하기도 했다. 그만큼 관심이 뜨거웠다.
‘테스형!’이 뭘까. 노래를 들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게다가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고개를 갸웃거리기 일쑤다. 
‘테스형!’ 처음 이 곡을 접했을 때 ‘태수형!’을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훈아가 부산태생이다 보니 사투리가 심하게 섞인 거라고 받아들였다. ‘태수형’을 ‘테스형’으로 발음한 것일 게다라고 짐작했다.
남자들은 종종 친근감의 표현으로 그렇게 부른다. 당연히 나훈아가 어린 시절 동네에서 불렀던 형들 가운데 한 사람 쯤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태수형’이 ‘테스형!’이 된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노래가 두어 소절을 지나면 웃음이 ‘빵’터지고 만다. ‘테스형!’은 바로 그리이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였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으로 유명하다. 4대성인으로 꼽는 그의 철학을 이 한마디로 풀이하기에는 인간의 지식이 알량하다.
하지만 나훈아는 노랫말에 그의 한마디를 넣어 화두를 던졌다.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테스형 중에서) 

결국 ‘삶은 알 수 없는 것’이란 명제를 던진다. 하지만 나훈아가 던지는 화두는 단순히 알 수 없다는 것 이상이다. 노랫말을 풀어보면 재미있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테스형 중에서)

우리는 일상을 통해 그냥 웃으며 산다. 하지만 그 삶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따르고 있는가. 작금의 상황은 더욱 그러하다. 
코로나19로 난생 처음 경험하는 세계를 맛보고 있다. 모두가 찢어지고 헤어지고 떨어져서 살고 있다. 서로 만나는 것을 거부하며 마스크라고 하는 물건을 뒤집어쓰고 살고 있다. 길가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보면 도리어 그를 의심하는 세태가 됐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외면하기 일쑤다. 서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맨얼굴이 낯선 세상이 됐다.


이런 모습은 불과 1년 전만 거슬러도 상상치 못했다. 아니 이렇게 살지 않았다. 서로 인사하고 웃으며 만났다. 간간이 만나는 것을 권했다. 사람은 만남 속에 사는 것이라고 일렀다.
사회생활은 당연히 만남의 연장이라고 확신했다. 그것이 바른 것이었다. 기침이나 감기가 심하지 않은 상황에서 마스크를 쓰는 것은 사회에 대한 저항이었다. 
하지만 그 확신이 1년도 안된 사이에 무너져 버렸다. 사회적 신뢰가 허물어져버렸다. 이웃도 맨얼굴을 하면 고개를 돌리는 세태가 되었다. 많은 생각을 웃픈 웃음 속에 묻고 산다. 
이러다보니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테스형 중에서)

반복적인 일상을 거듭하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 되었다. 과연 이런 삶이 우리 생을 관철한다면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고단할까.
우리는 벌써 코로나19가 일상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듣는다. 의학자들은 이렇게 온 코로나가 앞으로 수년 혹은 더 이상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어쩌면 인류의 삶과 같이 갈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한다.또 코로나19가 아니면 이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인류의 삶을 괴롭힐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런 노정 속에 던져진 존재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테스형 중에서)

허공을 향해 묻지만 대답은 없다. 수많은 인류가 왔다가 사라져갔지만 그 대답을 남기고 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몇몇 선지자들 가운데는 삶이 ‘무엇이다’라고 정의한 사람이 있다. 그럼에도 인류는 그 정의에 모두 찬동하지 않는다. 모른다는 것 외에 어떤 것도 찬동하지 않기에 삶은 늘 의문을 달고 산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이다.

이 대목에서 나훈아는 아버지를 찾는다.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가버린 아버지.....
우리는 그 아버지의 자식이다. 그 아버지의 피를 받아 오늘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갔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일상이 바쁘다는 것을 핑계 삼아 외면하고 있다. 가깝게 있다 할지라도 대함이 그리 살갑지 않다.

아버지는 그러려니 한다. 무뚝뚝하고 힘겹고 고단하고 그래서 늘 단내가 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아버지도 그 누군가의 아들이었다. 동시에 아버지를 대하고 있는 우리는 또 누군가의 어버이이다. 자식들도 우리를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테스형 중에서)

아버지를 찾는 마음은 그래서 무겁다. 자주 가지 못하기에 늘 마음의 짐처럼 받아들인다. 
‘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테스형 중에서)
자격지심을 느낀다. 사흘이 멀다 하고 찾아뵙는다면 왜 마음이 무겁고 꾸지람을 듣겠는가. 그러나 일상이 그렇게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녹녹하지도 않다. 
반복되는 일상이 아버지로 혹은 어머니로 내몰고 있다. 가장이기에 아버지만을 생각하며 살수는 없다. 자식들을 책임져야 하는 게 현실이다.
죽은 조상보다 산 조상을 먼저 섬겨야 하는 게 우리의 굴레다. 그래서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푸념하고 또 푸념한다. 혼잣말처럼....

‘아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테스형 중에서)

우리는 살아 있기에 푸념하고 울고 외치며 산다.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에 그렇게 살고 있다. 고래고래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다. 어디론가 마구 달려가고 싶다. 살아 있다고 외치고 싶다.
하지만 참는다. 일상에서 그러게 하면 미친놈이란 말 외에 들을 말이 또 있을까. 그래서 속으로 삭히고 산다. 울면서 눈물을 삼킨다. 민초들이 삶이 그러하다. 

‘먼저가본 저세상 어떤 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 가요 테스형’(테스형 중에서)

아버지!. 저세상에 천국은 정말 있는 건가요. 이 고단한 삶을 살고 나면 또 다른 세상이 저곳에 있는 건간요. 그곳은 인간이 천국이라고 하는 그런 곳인가요. 걱정도 없고 고통도 없는. 그래서 너무나 행복하기만 한 그런 세상이 과연 있는 것인가요. 이 생의 삶이 고단한 민초인데 죽어서는 또 다른 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건가요. 라고 묻고 있다. 
간절한 바람이 녹아있다. 인도의 카스트제도에 얽매여 오늘도 신음하고 있는 하층민들이 다음 생에 귀족으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에 불평을 삼키는 삶을 연상시킨다.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이는 아버지를 부르는 간절한 목소리다.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오늘의 아픔에서 구해달라는 갈구의 호소다. 
‘아 테스형 아 테스형’ 민초들의 아픔을 호소하는 울림이다.
나훈아는 ‘테스형!’을 부르며 먼저가신 아버지를 불렀다. 그 아버지를 통해 민초들의 아픔을 노래했다.  
2kwang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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