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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미래로교회 서상진 목사, '내가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이유'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10-13 03:59

대구 미래로교회 서상진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내가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이유>

우리가 나 스스로를 드러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주위의 환경이나 상황을 보고 드러냅니다. 내가 드러나야 할 때가 있지만, 상황과 환경이 나에게 불리한 쪽으로 전개가 되어진다면, 나의 드러냄을 주저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비겁했노라고 자책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용기 있기 행동을 하는 순간도 찾아옵니다.

누구나 용감하지도 않고, 비겁하지도 않지만, 용감하다고 하는 사람도 내심 그 안에는 두려움이라고 하는 감정이 있습니다. 내가 권력이 있다고 용감해지는 것도 아니고, 비겁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많이 배웠다고 용감해지고, 비겁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그런 것도 아닐 것입니다. 

어떤 경우를 보면, 막말을 많이 하고, 행동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향해서 용감하다고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런 사람들은 거칠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고 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용감해지고, 담대해지고, 대담해지는 경우는 언제일까요? 내가 많이 안다고 용감해질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지만 내가 아는 지식을 가지고 내가 용감해지거나 담대해질 수는 없습니다. 그것보다는 내가 믿고 있고, 신뢰하는 것이 나를 용감하게 만들고, 두려움이 없게 만들고, 담대하게 만듭니다. 그 믿음과 신뢰가 막가파식의 믿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른 앎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담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천하고 천한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머리 둘 곳도 없으셨습니다. 끼니를 걱정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기득권자들에게 핍박을 당하셨고, 그들과 늘 논쟁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성전모독죄와 신성모욕죄라고 하는 굴례를 씌워 가장 처참한 죽음인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가 남겨 놓은 유품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의 죽음이 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담대하고, 용감하고,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게 합니다. 아리마대 요셉, 그리고 밤 중에 몰래 찾아왔던 니고데모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이 두 명은 모두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습니다. 지명도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부족함이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빌라도를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합니다. 

예수님을 장사 지내기 위해서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무덤을 내어 놓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그 당시 수 많은 유대인들의 눈에 띄었을 것입니다. 두려워서, 당당히 나서지 못했던 제자들의 행동과 정반대의 행동을 했습니다.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낸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의 삶과 십자가의 죽음이 무엇이기에 그들로 하여금 용기있고, 당당하고, 담대한 드러냄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에 대해서 바울은 말합니다. 복음은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고, 유대인들에게는 수치스러운 것이었지만, 십자가야 말로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이 십자가의 능력에 대해서 바로 알고 바로 믿었던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당당하게 부끄러움이 없이 담대하게 나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움이 없는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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