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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사랑의교회 한상만 목사 '낙태죄 논쟁을 보며'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10-17 03:44

내포사랑의교회 한상만 담임목사.(사진제공=내포사랑의교회)

“낙태죄 논쟁을 보며”

작년에 헌법재판소가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했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후에 이번에 정부가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개정안은 다음의 내용과 같다. ①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한다. ② 낙태시술자는 의사로 한정하고 의사의 신념에 따른 진료 거부는 인정한다. ③ 미성년자 또는 보호자의 동의 없이 상담사실 확인서로만 시술이 가능하다. 다만 16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학대로 인한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을 수 없을 때에만 상담사실 확인서로만으로 시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정부의 결정에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이든, 찬성하는 사람이든 모두 불만을 터뜨렸다.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95%의 낙태가 임신 12주 이내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것은 낙태를 허용한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하고, 반면에 낙태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여성의_몸은_여성의_것이다”라는 온라인 캠페인을 전개하며 낙태죄 자체가 폐지되지 않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 낙태에 대한 내용을 어떻게 봐야 할까? 당연히 크리스천들은 낙태를 반대한다. 왜냐면 우리는 태아를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까? 여기에는 그 “원치 않는”이라는 기준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가 중요하다. 왜냐면 그 내용이 있어서 기준이 “여성” 자체가 될 것인가? “태아”가 될 것인가에 따라 그 선택의 기준은 사뭇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왜 세상이 “낙태죄”에 대한 격렬한 찬반 대립을 하고 있는지 사실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냐면 이것은 신호등이 있어서 신호를 지키고, 신호등이 없어서 신호를 지키지 않는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낙태죄가 있어도 낙태를 할 사람들은 다하고, 낙태죄가 없어도 낙태를 하지 않을 사람들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의 기준이 나 자신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원치 않았지만 그럼에도 생긴 태아가 생명이기에, 그것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것을 우리가 삶의 가치와 선택의 기준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들이 우리에게 나타나면 되지 않을까?

사실상 어차피 세상은 그렇게 갈 것이다. 오로지 "나 자신에, 나 자신에 의한, 나 자신을 위한 삶"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 나 자신만이 아닌 삶을 크리스천이 보여주고 살아낸다면 세상에 어떻게 흘러가든 오히려 그 속에서 다름의 가치와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자들로 세상 앞에 보여진다면 그것만큼 더 멋진 일이 없을 것 같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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