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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교회 정영구 목사, '모호해진 사명'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10-21 01:28

하나교회 정영구 담임목사.(사진제공=하나교회)

모호해진 사명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이, 오늘 본문 말씀이다.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였다.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골리앗의 시험도, 사울 왕의 시험도 통과한 사람이었다. 시글락의 절망에서도 다시 하나님께 힘을 얻어 블레셋의 전쟁과 아말렉의 전쟁을 통과하면서 왕의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사무엘하 11장에서 시작된 밧세바의 사건은 믿음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믿음의 사람이 한순간에 어떻게 이렇게 무너질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르고 있다.

다윗은 왜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졌을까? 사무엘하 11장 1절과 2절의 말씀을 보면, 다윗은 최고의 자리, 왕의 자리에서 사명을 잃어버린 사람의 전형적인 행동들을 보여주고 있다. 고대 사회에서 전쟁은 곧 국가의 가장 큰 존재이유였다. 전쟁은 영토를 넓히고 백성들을 보호하는 안전장치이다.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라는 말씀의 기록은 고대전쟁이 곧 왕들의 전쟁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더구나 이스라엘 전쟁은 하나님의 공간, 가나안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 성막을 보호하는 영적 전쟁이었다. 당연히 이것은 다윗의 전쟁이었고, 하나님의 전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영적 상태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에서 다윗은 ‘그대로 있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윗의 왕국은 하나님나라의 상징이다. 그런데 그가 ‘그대로 있더라’고 말하는 것은 다윗의 영적인 상태를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모호해졌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성전을 짓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전쟁을 하는 것이 다윗의 사명’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는 전쟁을 피하고, 전쟁을 부하들에게 맡기고 있다. 11장의 다윗의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가 ‘보낸다’는 동사이다. 전쟁을 위해서 부하들을 보내고, 밧세바를 알아보라고 사람을 보내고, 우리야를 자신에게 보내라고 편지를 보내고, 다시 우리야를 죽음으로 내 몰려고 다시 전쟁터로 보내고 있다. 그는 보내는 사람이 되었다.

왕이 되기 전에는 아버지의 전갈을 받고 사무엘에게 보내심을 받았고, 형들을 위해서 전쟁터로 보내심을 받았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상대하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전쟁에 보내심을 받았다. 다윗은 보내심의 사명을 받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왜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지, 왕으로 자신의 부하들을 어떻게 아껴야 하는지, 자신의 통치 아래에서 한 가정을 어떻게 지켜 주어야 하는지를 외면하기 시작하니까 다 귀찮아지고 힘들어졌다. 왕 같은 제사장의 사명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명을 가지고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처럼, 보내심의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예수님이 은혜와 진리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처럼, 우리도 그 은혜와 진리로 보내심을 받은 사명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타락한 이스라엘이 열방을 향해서 ‘오라’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기준만을 고집하고 사람들에게 오라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악의 모습들이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삼하 12:7~15, 요 1: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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