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군 유등면 오교리 가운데샘, 원형, 지상 1m, 깊이 2m./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
건지산(乾芝山, 412m)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인계면 지산리를 지나면서 순창 남원간 국도가 동서로 지나가는 도로의 잿길 개고개(강도와 맞서 싸우다 죽은 개를 추모하는 견두비를 세웠던 고개)에서 서남쪽으로 내려온 지맥이 서원(서우내)에서 다시 남쪽으로 솟아오른다.
이 산이 해발 180미터 큰 까끔으로 오교리의 주산이다. ‘까끔’은 동산의 방언으로 큰 까끔은 큰 동산이라는 뜻이다. 한자어로는 大山으로 불린다. 이 산에서 남쪽으로 구릉을 이루고 내려가니 오교리의 청용동이다. 서남쪽에 오금제와 오금지 등의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
산 아래로 섬진강이 흐르고 유등 고뱅이 유원지가 있다. 고뱅이 유원지의 명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고뱅이 어살이다. 고뱅이 어살은 조선 중기 때 자연석으로 강을 'V'자 형으로 막아 쌓고 가운데 부분에 물이 지나가도록 한 곳에는 대나무와 발을 엮어 강물을 따라 흘러 내려가던 물고기들이 잡히도록 만든 것이다.
이와 같은 지형으로 된 마을 이름이 원래는 ‘머드리’였다. 머드리는 머드러기의 방언으로 다른 것들에 비해 굵거나 크다는 말이다. 따라서 큰 마을이란 말로 오교리였던 것으로 믿어진다. 한편으로는 마을 중심으로 흐르는 시냇물에 오동나무 교량이 있어 오교리라 바꿔 부르게 되었다는 말도 있다. 머드리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오교리라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교리 마을이 형성되었을 때부터 오교리 가운데 샘은 존재하였다고 본다. 오교리 가운데샘은 오교리 웃뜸 주민들의 식수요 생활용수로 활용하여 왔기에 가운데 샘의 물의 양도 풍부하여 물 걱정 없이 살아온 오교리 마을이었다.
이곳 마을 주민들은 샘을 신성시 여기고 마을에 애사나 경사가 있을 시는 샘을 잘 관리하여 깨끗한 물로 음식을 장만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 또한 애사 시 마을에서 상여가 나갈 때는 우물을 덮고 출상이 끝나면 샘물을 품어내고 깨끗이 청소해서 사용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날에는 정월 14일 보름 안 날 마을에 당산제를 지냈는데 이 때가 되면 샘에 금줄을 치고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제한하고 통제했다. 또한 마을 풍물패들이 제일 먼저 샘굿을 치고 지 신 밟기를 실시했다고 한다. 이는 우리의 없어서는 안 될 물의 근원인 샘을 신성시 여겼기 때문에 제일 먼저 찾아 굿을 쳤고 금줄을 쳐 출입을 통제했던 것이다.
추석과 설 명절에도 금줄을 치고 청소를 깨끗이 한 뒤에 샘물로 음식을 장만하여 치사를 지내곤 하였다. 가운데 샘은 오교리 2~3개 되는 우물 중 가운데 샘의 식수 인원이 많았고 샘의 물의 양이 제일 많이 솟아올라서 가운데 샘을 제일로 생각하여 왔다.
요즘은 상수도 물을 사용하고 있기에 옛날 가운데 샘의 고마움을 잊은 지 오래되어 아쉽다. 소방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관리하여 옛날과 같이 마을에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출처. 순창문화원)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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