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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순창의 샘(우물) 이야기_(41) 풍산면 대가리 가운데 새암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이두현기자 송고시간 2020-11-29 09:10

물이 너무도 시원해 보리밥에 시원한 냉수로 말아 풋고추 된장에 맛있는 식사도 즐겨
상수도가 들어와 샘터를 도로와 같이 복개 공사를 해버렸더니 마을에는 좋지 않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
다시 복개공사를 헐고 우물을 옛날로 되살려 놓았더니 지금도 물이 펑펑 나오고 마을에는 안정이 찾아와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 가운데 새암, 사각./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풍산면 지내 마을의 청룡 등이 동남쪽으로 감아 도는 지점에서 끊어질 듯 결인하여 기운을 취하여 북쪽으로 솟구쳐 올라온 산의 형상이 자라처럼 등이 평평하고 다시 결인하듯 된 곳이 자라목처럼 생겼고 다시금 자라 등처럼 된 산이 이룩되어 해발 130m의 고지의 자라산이다.
 
이 산봉우리에서 동남쪽으로 목을 쭉 빼고 자라목처럼 하고 있는 곳에 오산초등학교 터가 있고 그 동북쪽으로 동남쪽을 향하고 있는 마을이 대가리(大街里)이다. 대가(大佳) 마을의 옛 이름은 자라뫼였다. 지형상을 그대로 표현하여 자라뫼라 불렀던 것이다. 뫼란 산이란 말로 사실 표현하였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터를 잡았는데 마을의 지세가 자라 형국이라 자라뫼라 불러 오다 큰 땅의 마을이란 뜻으로 대동리(大同里)로 개칭하였다. 다시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개편 이후 대가리(大佳里)로 개칭하여 부르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대동리의 ‘대’ 자와 향가리의 ‘가’ 자를 합하여 대가리라고 하였다. 백가리와 주지리, 대동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오산면 소재지였는데, 행정 구역 개편 때 풍산면 소속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가리 마을 한 복판에 가운데 샘이 마을 형성기 때와 같이 샘물을 뿜어내고 있다. 마을에 2~3개의 샘이 있었지만 마을 주민 반절 이상이 이 샘물을 마시며 살아왔다. 1960~70년대에는 식수와 생활용수를 함께 이용하였기에 샘물이 얼마나 많이 솟아나는지 짐작이 간다. 대가리 호수가 100여 호가 살고 있기에 마을 주민들에게는 명약수 중의 명약수였다.
 
1970년대에는 여름철 물이 너무도 시원해 보리밥에 시원한 냉수로 말아 풋고추 된장에 맛있는 식사도 즐겼고 찬물에 설탕 아닌 사카린을 타서 한 사발씩 마시기도 했다. 샘이 깊어 여름에는 김치 단지를 두레박과 같이 우물에 넣어 시지 않게 관리하여 먹곤 했다. 가믐에는 우물 밑에서 올라오는 물을 받기 위해 줄을 서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여 각 마을에 상수도가 설치되기 시작하자 샘물은 자연히 천대를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샘터를 도로와 같이 복개 공사를 해버리고 우물물 대신 상수도에 의지하고 보니 어머님들의 일손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서 마을에는 좋지 않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게 되며 주민들은 의아하게 생각하던 차에 계속 궂은 일이 생겨 샘을 묻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주민들은 다시 복개공사를 헐고 우물을 옛날로 되살려 놓고 샘을 관리하니 물이 지금도 펑펑 나오고 마을에는 안정이 찾아왔다고 한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마을에 우물과 당산나무를 신성시 여겨왔다. 이는 마을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마을에 불이 나면 제일 먼저 우리는 우물을 퍼 불을 끈다. 우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우물을 잘 보존합시다.(출처. 순창문화원)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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