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 29일 금요일
뉴스홈 종교
열린벧엘교회 손희선 목사, '아빠랑 놀고 엄마랑 자도 사랑해'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1-22 23:46

열린벧엘교회 담임 손희선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아빠랑 놀고 엄마랑 자도 사랑해

쌍둥이들이 어렸을 적에 “이불놀이”라는 것을 해줬습니다. 잠자기 전에 한 바탕 아빠랑 노는 것이죠. 옛날이야기도 해주고, 몸개그도 섞어 가면서 말 그대로 이불 가지고 아이들을 들었나 놨다 하면서 몸으로 부대껴 놀아주었습니다. 그렇게 실컷 놀고 나서 막상 잠자리에 들때면 쌍둥이들은 아빠가 아닌 엄마를 찾았습니다. “엄마, 자자.” 기껏 땀흘려 놀아준 아빠는 뒷전이고 슬슬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면 쌍둥이들은 여지없이 제 아내를 양옆에 끼고 잠들었습니다. 제가 허탈감을 느꼈을까요? 무슨 배신감을 느꼈을까요? 전혀요.

첫째는 쌍둥이들이 결정적인 때는 엄마를 찾아도 아빠인 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를 위해 그림도 그려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편지도 자주 써 주었습니다. 둘째는 쌍둥이들이 ‘저 상처 받으라’고 엄마를 찾은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저 엄마 옆에서 잠을 잘 때 가장 편히 잘 수 있기에 엄마를 찾은 것뿐입니다. 셋째는 제가 어떤 순간에도 쌍둥이들을 더욱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자기를 “쳐다보지도 말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순간 살짝 충격을 받긴 했지만 상처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더욱 딸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를 위하여 옥에도 가고, 죽는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라고 했던 베드로였지만 가야바 대제사장의 뜰에서 예수님을 면전에 두고 “나는 저 사람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실망하시거나 상처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요 21:15). 

또한 베드로가 그 말을 한 것은 예수님께 상처 줄 목적으로 뱉은 말이 아니라 두려움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반응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상처 줄 마음이 아니었는데 왜 내가 상처를 받아야 할까요? 상처를 주려고 했더라도 안 받으면 그만이요, 상처를 주려한 것이 아니었다면 더더욱 상처를 챙겨서 받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갈릴리 디베랴 바닷가로 다시 고기를 잡는 생활로 돌아가 버린 베드로였지만 예수님은 또 그를 찾아갔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주님께 어떻게 했든지 상관없이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훨씬 더 강력했기 때문입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도 베드로를 향한 우리 예수님의 사랑은 막을 수도, 끊을 수도, 멈출 수도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갈 때가 많습니다. 기껏 아빠랑 놀고 결정적인 때에 엄마에게 가기 일쑤입니다. 그럼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거해도 그곳에서도 나와 함께하십니다. 나를 붙드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 신실하신 사랑 안에서 깊은 안정감을 누리시고 올해도 끝 날까지 함께 하실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jso8485@naver.com

[ 저작권자 © 아시아뉴스통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제보전화 : 1644-3331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의견쓰기

댓글 작성을 위해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 시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실시간 급상승 정보

포토뉴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