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19일 금요일
뉴스홈 종교
서울 천호동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 '전도자의 역설적 삶'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1-27 00:37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전도자의 역설적 삶]
(누가복음 9:1-17)

주님께서 제자들을 전도자로 보내셨다.
그런데 전도자로 나간 제자들에게는
몇 가지 중요한 역설적인 특징을 보였다. 
어떤 특징일까?

1. 권능을 주심

예수께서 그 열둘을 한 자리에 불러놓으시고, 모든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능을 주시고, (눅9:1)

전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능력과 권능'이다.
능력과 권능이 없으면 전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능력과 권능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도하지 말아야 한다.
권능이 없음에도 전도자로 나가는 것은
주님과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도자로 나가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은 
주님으로부터 권능을 받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능력과 권능을 받을 수 있을까?
한 가지만 하면 된다.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스스로 전도에 대한 열정과 뜨거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것보다 중요하고 본질적인 일이 있다.
능력과 권능을 주실 주님과 깊은 관계를 누리는 것이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기만 하면
때가 되면 주님이 능력과 권능을 주실 것이다.

2.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않음

전도자로 길을 나설 때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할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길을 떠나는 데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아라. 지팡이도 자루도 빵도 은화도 가지고 가지 말고, 속옷도 두 벌씩은 가지고 가지 말아라. (눅9:3)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가야 한다.
왜 지팡이도 자루도 빵도 은화도 가지지 않고,
속옷도 두 벌씩은 가지지 않아야 할까?

능력과 권능을 받은 전도자가 복음을 전하면
전도 여행을 할 만한 정도의 
지팡이와 빵과 은화와 속옷이 
여러 경로를 통해 제공되기 때문이다.

먹고 살 걱정을 하고서는 
전도자로 살아갈 수 없다.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지만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채우시고
머물 곳도 주시는 경험을 전도자는 하게 된다.

3. 환영과 거절의 공존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에 머물다가, 거기에서 떠나거라. (눅9:4)/어디에서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든,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려서, 그들을 거스르는 증거물로 삼아라." (눅9:5)/

주님이 보내셨으니 환영만 받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전도자는 어느 집에 머물며 복음을 전하다가
때가 되면 거기에서 떠나는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환영을 받기도 하고 거절을 받기도 한다.
환영하는 사람에겐 복음을 전해서
그들이 진리를 깨닫고 삶이 변하도록 돕고,
거절하는 사람들로부터는 떠나면 된다.

거절하는 사람까지 붙들고 
구걸하듯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다.

환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지만
거절하는 사람도 있을 것임을 알고
환영에도 거절에도 동요하지 않고
각각의 경우에 담담히 대처하면 된다.

4. 먹고 사는 문제

전도자가 전도만 해서 먹고 살 수는 있는 것일까?
전도자는 어떻게 먹고 살게 될까?
두 가지 방법으로 전도자는 먹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첫째, 어느 집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에 머물다가, 거기에서 떠나거라. (눅9:4)/

복음을 듣고 전도자를 영접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다.
전도자가 사례를 받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둘째, 빈들

그러나 전도자는 광야에 머물러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날이 저물기 시작하니, 열두 제자가 다가와서, 예수께 말씀드렸다. "무리를 헤쳐 보내어, 주위의 마을과 농가로 찾아가서 잠자리도 구하고 먹을 것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입니다." (눅9:12)/

5,000명의 무리와 함께 빈들에 있는데
거기에서는 어떻게 의식주를 해결할까?
그때 일어나는 일이 5병2어 사건이다.

빈들에 머물러서 사람 누군가가 의식주를 해결해주지 않을 때,
게다가 함께하는 사람들마저 어려운 상황일 때는,
5병2어 사건을 경험할 때다.

그러니 어떤 경우든 전도자는 
의식주의 문제로 고민하거나 답답해 할 필요가 없다.

5. 문제점

현대 기독교의 문제가 있다.
전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전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는 점이다. 

전도를 위한 능력과 권능을 받았다고 하는데
기본적인 소양조차 갖추지 않은 사람들도 너무 많다.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누리는 것을 
전혀 하지 않고,
자신이 전할 복음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본질에 대해서 왜곡된 지식을 갖고 있고,
식상한 가르침만 남발하기도 하는 등
도무지 '능력과 권능'이 보이지 않는데,
자신은 능력과 권능을 받았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너무 많다.

그렇게 '셀프 전도자'가 된 사람은
복음을 이용해서 의식주를 해결할 뿐 아니라
자신의 탐욕까지도 채우는 악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 있어서
기독교라는 이름이 욕을 먹고 있다.

왜 코로나 상황임에도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고 
모여서 예배하고 식사하는 짓을 할까?
그들이 능력과 권능을 받은 자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으로부터 능력과 권능을 받았다면
때가 되면 거기에서 떠나는 일을 
전혀 꺼리지 않아야 한다.

화려한 건물을 짓고 사람을 모으는 일에만 혈안이 된 그들이
주님이 보낸 전도자일 수가 없는 것이다.

6. 나는?

나는 왜 전도자(목사)의 삶을 살기로 결단했을까?
이유는 한 가지였다.
말씀을 묵상하는 세월을 오래 보내면서
내 삶과 내면의 깊은 변화를 경험했다.

그런데 주변 그리스도인들을 보니
말씀이면 살아나고 회복되고
신자다운 삶으로 성숙해갈 텐데
말씀을 붙드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말씀을 붙들도록 사람들을 도와야겠다 싶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말씀 하나를 붙드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도울 만한 일이 있을 것 같았다.

부산에서의 삶을 접고 
신학공부 하기 위해 경기도로 왔을 때
나는 '두 벌 옷이 없는' 상태였다.

당장 하루 벌지 않으면 굶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그래서 학원을 인수해서 운영하면서
하루하루 근근히 살았다.

그런 와중에 신학 공부를 시작했고
1년 공부한 후에 교회를 개척했다. 

학원 운영과 신학 공부와 교회를 섬기는 일을 동시에 했던 것이다.
3중직이라고 해야 할까 싶다.

개척한지 2년 반쯤 지나서
신대원을 졸업했을 때 
심각한 거절을 경험했다.
교인 3명만 남고 전부 교회를 떠나셨다. 

쉽지 않은 마음이었지만
발에 먼지를 털고 
마음에도 먼지를 털고
장소를 옮겨 다시 시작했다.

나의 소심한 성격으로 보자면 
그런 반응, 그런 시작은 
기적같이 놀라운 일이었다.

말씀을 생명으로 붙들었고
말씀이 아니면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없었기에
그렇게 반응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개척한지 6년이 된 지금은 
환영하는 성도들을 만나서 
말씀에 삶을 거는 신앙의 길을
함께 행복하게 걸어가고 있다.

성도 20명의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음에도
사례와 외부 후원과 외부 사역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하며 
전임으로 사역을 할 수 있음이 기적이다.

'어느 집'과 '빈들'에서의 5병2어 사건을 
목사로 살아가는 지금의 삶 속에서
기적적으로 경험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음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다.

나의 남은 삶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제자들은 나가서, 여러 마을을 두루 다니면서,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쳤다. (눅9:6)/

갈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말씀을 전하고 말씀의 사람을 세우고
말씀이 주는 놀라운 치유와 회복을 
사람들이 누려가도록 돕는 일을 하면 될 것이다.

이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다 가길,
그러나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며
끝까지 탐욕에 무너지지 않길
간절히 소망하는 아침이다.

jso8485@naver.com

[ 저작권자 © 아시아뉴스통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제보전화 : 1644-3331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의견쓰기

댓글 작성을 위해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 시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실시간 급상승 정보

포토뉴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