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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남원의 샘(27) 송동면 송기리 우동마을 샘골샘, 부동마을 다름재샘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이두현기자 송고시간 2021-02-17 09:21

샘골샘은 면소재지 막걸리 공장에서 물을 떠다 술을 빚을 정도로 물맛이 좋아
다름재샘물이 1923년 경 어느 날 갑자기 검게 변해버리자 읍내 유명한 점쟁이 찾아가 해결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송기윗길 36-15. 우동마을 샘골샘./아시아뉴스통신=남원문화원 김현식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송기리는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송동면의 면소재지이다. 우동리와 부동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송기리는 산간 지대도 아니고 평야 지대도 아닌 한국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해발 100m 정도에 자리 잡고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송기리는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하여 소터, 솔터, 또는 우동이라 불렸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지형이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혈로 좌청룡은 소의 머리 부분이고 우백호는 소의 꼬리 부분이다.
 
제봉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좌청룡, 우백호로 갈리면서 주택이 많이 형성되어 있는 우동은 소의 배 부분에 속한다고 한다. 마을 건너편 안산은 쇠구시라 하여 ‘구시골’로 부르고 있어 송기마을이 와우혈이란 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우동마을은 1720년대 경주최씨가 최초로 정착하기 시작하여 진주강씨, 전주이씨, 옥천조씨, 밀양박씨, 남원양씨 등이 순차적으로 정착하여 마을이 크게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흑송면에 편입되었다가 1956년 7월 송동면에 편입되면서 송기리에 면사무소가 설치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남원군 통합에 따라 남원시 송동면 송기리가 되었다.
 
부동마을은 송동면의 중심지인 면소재지이며 전라북도의 최남단 지역으로 전라남도 곡성군과 접한다. 부동리는 빈곤층이 많이 살고 있어서 부자 마을이 되라는 염원에서 ‘부(富)’자를 넣어 부동이라고 하였다. 마을에는 수령 460여년 된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추석이면 당산제를 지내며 풍년과 재난이 없기를 기원한다고 한다.
 
우동마을 샘골샘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송기윗길 36-15. 우동마을 샘골샘 내부./아시아뉴스통신=남원문화원 김현식

우동마을 앞 저수지 지나 우측 길을 따라 약 160여 미터 들어가 샘골에 위치하고 있다.
 
샘의 형태는 사각형으로 깊이 200cm, 가로 130cm, 세로 181cm, 수위 175cm, 수온 16℃이다. 물색이 맑고 투명한 숫물로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지표면에서 약 1.8m 깊이로 굴착하였다. 바닥은 암반이며 밑에서부터 장방형의 석재를 7단으로 결구하여 쌓았다.
 
지상으로 돌출된 석재는 우물을 보수하면서 장방향의 화강석을 가공하여 본래의 석재 위에 얹혔다.
 
내부의 물이 파이프를 통해 큰 수조로 흐르도록 설치하였는데 수조의 깊이는 70cm, 가로 220cm, 세로는 525cm이다. 지금은 허드렛물로 사용하고 있다.
 
면소재지 막걸리 공장에서 물이 부족할 때는 이 물을 떠다가 술을 빚을 정도로 물맛이 좋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해 왔다고 한다.
 
부동마을 다름재샘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송기안길 21. 부동마을 다름재샘./아시아뉴스통신=남원문화원 김현식

전라북도 남원시 공동면 송기리 송동파출소 지나 부동마을 좌측 길로 들어서 약 50여 미터 전방 길 옆에 위치하고 있다.
 
샘의 형태는 사각형으로 깊이 328cm, 가로 140cm, 세로 138cm, 수위 280cm, 수온 17℃이다. 물색이 맑고 투명한 숫물로 바닥이 훤히 보인다. 지표면에서 약 2.5m 깊이로 굴착하였다. 바닥은 암반이며 밑바닥에서부터 장방형의 석재를 6단으로 결구하여 쌓고 위쪽에 장방형의 가로 105cm, 폭 75cm의 판석을 설치하였는데 본래의 샘으로 우물 정(井)자형으로 결구하였다.
 
마을길을 확포장하면서 본래의 지면보다 땅이 높아져 샘이 아래쪽에 위치하게 되자 본래의 석재 위로 콘크리트 블록을 쌓아 길보다 약간 높게 하고 지상부를 콘크리트 덮개로 덮었다.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송기안길 21. 부동마을 다름재샘 내부모습./아시아뉴스통신=남원문화원 김현식

이 샘에 전해 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1923년 경 어느 날 샘물이 갑자기 검게 변해버려 사람들이 먹을 수가 없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원인을 찾았지만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읍내 유명한 점쟁이를 찾아가 이 기이한 현상을 물어보았다.
 
점쟁이가 눈을 감고 한참 주문을 흥얼거리더니 “샘 주변에 누군가 묘를 썼구만”하며 ‘이 때문에 물이 검게 나오는 것이니 묘를 옮겨야만 샘물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당시 샘 주변에 묘를 썼던 금지면에 사는 묘의 후손들을 불러 사연을 이야기하고 묘를 다른 곳으로 이장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묘의 후손들은 마을 사람들이 청을 들어 묘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고 원래 모습으로 다듬어 놓았다고 한다. 그 뒤부터 샘물은 검은색이 없어지고 맑게 솟아나 사람들이 다시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출처. 남원문화원,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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