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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남원의 샘(35) 주생면 정송리 정충마을 갓끝샘, 넘은골샘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이두현기자 송고시간 2021-02-25 07:10

갓끝샘은 수온이 15℃로 매우 차가워
넘은골샘은 물이 깨끗하고 물맛이 좋아 지금도 몇몇 가구가 식수로 사용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정송1길 16-4. 정충마을 갓끝샘./아시아뉴스통신=남원문화원 김현식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정충리는 원래 남원군 주포면 충촌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반송리, 정충리와 대곡면 노산리 각 일부가 병합되어 정충과 반송에서 이름을 딴 정송리(貞松里)에 편입되었다.
 
정충리는 평야 지대에 위치한 마을로, 마을 뒤에는 수덕봉이 우뚝 솟아 있고, 앞으로는 옥율천이 흐르며 북쪽은 남원~순창 간 국도 24호선이 지나가고 남쪽으로 200m 떨어진 지점에 전라선 철도가 통과한다.
 
마을 주변에는 대나무 숲이 우거져 바구니처럼 아늑하고 가파른 경사지에 층층으로 주택이 들어서 있어 야경이 아름답다. 마을 앞에 버드나무 세 그루가 있는데 거기에 수덕정이 있었다 하며 당시에는 왕래하는 선비들이 여름철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잠깐 이곳에서 쉬어가면서 책읽기를 즐겼던 곳이라 한다.
 
정충마을은 조선 중기에 전주최씨 3가구가 이곳에 처음 터를 잡았다고 한다. 그 후 남원양씨 용성군파 양주운의 후손이 뒤이어 정착하고 김해김씨, 밀양박씨, 김해김씨, 초계최씨 등이 이주해 오면서 마을이 크게 형성되었다.
 
마을 뒷산 수덕봉 아래에 황진 장군을 모신 사당인 정충사를 창건한 뒤 마을 터가 빛이 나 부촌을 이룬다는 설이 나돌자 김해김씨, 밀양박씨가 차례로 이주해 오면서 오늘날의 정충리를 형성하였다.
 
정충리는 마을 뒤편에 모셔진 황진 장군의 사당 정충사(旌忠祠)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나 ‘기 정(旌)’자가 ‘곧을 정(貞)’자로 바뀌면서 정충(貞忠)이라 하였다.
 
황진 장군은 청백리 영의정 방촌 황희의 5대손으로 임진왜란 때 충천 병사로 진주성 싸움에서 왜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때 선조가 무민공의 시호를 내렸고 그 후 진주에는 창렬사를 남원에는 정충사를 세워 제향하였다.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정송리 정충마을에는 2개의 샘이 있다. 첫 번째 갓끝샘은 마을회관 우측으로 약 30여 미터 떨어진 골목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샘의 형태는 원형으로 깊이 235cm, 지름 125cm, 수의 195cm이며 수온은 15℃로 매우 차다. 지표면에서 약 2m 깊이로 굴착하였다.
 
바닥은 사질토이며 밑바닥에서부터 원형 콘크리트 관을 설치하였다. 샘의 절반이 도로로 들어가 있고 일부가 돌출되어 있다. 지금도 주변 사람들이 허드렛물로 사용하고 있다.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정송2길 8-11. 정충마을 넘은골샘./아시아뉴스통신=남원문화원 김현식

두 번째 넘은골샘은 정송2길을 따라 약 150여 미터 들어가 정송2길 8-11번지 길 옆에 있다.
 
샘의 형태는 원형으로 깊이 170cm, 지름 115cm, 수위 153cm, 수온 17℃이다.
 
지표면에서 약 1.5m 깊이로 굴착하였다. 바닥은 사질토이며 밑바닥에서부터 원형 콘크리트 관을 설치하고 콘크리트 덮개를 얹었다.
 
물이 깨끗하고 물맛이 좋아 지금도 몇몇 가구가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출처. 남원문화원,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dhlee3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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