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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리콜운동 대표 전두승 목사, '섭섭함을 버려야 한다.'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4-01 10:42

킹덤빌더즈, L.A 글로리 교회 담임 전두승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섭섭함을 버려야 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1)
 
   하나님으로, 성령으로 넘치는 사람은 섭섭함을 예전에 갖다 버렸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고백하면서도 아직도 그 목자에 대한 섭섭함이 남아 있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사람에게 대한 섭섭함이 아니다. 하나님께 대한 섭섭함, 신앙생활을 하면서 만족함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 그리스도인에게 왜 섭섭함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관점의 차이이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인가?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인가?

   앞의 고백은 내가 주체이고 뒤의 고백은 하나님이 주체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그리고 믿음의 관점에서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가 맞다. 영어성경에도 한결같이 “I shall not be in want, I shall not want”라고 기록되었다. 

   다윗은 자신의 형편의 만족이나 부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라고 지금 그를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내가 주체가 되는 관점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 나를 공급하시는 분, 나를 편안케 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은혜가 떨어질 때, 궁핍할 때, 힘들 때는 아니라는 말인가? 

   아니다. 어떠한 형편이든지 하나님이 주체가 되시고 그가 나의 목자시기에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4-5절)라고 고백한 것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원수의 목전은 부족함이 없는 상황이 아니다. 너무나도 힘든 상황이다.그러나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신다, 내가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이다.
 
   이전부터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지금도 내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 개정으로 바뀌기 전 개역 한글 성경에는 분명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로 나와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느새 바뀐 개역 개정과 표준 새번역 등 다른 번역들에는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교회에서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시편 23:1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열 명에게 1절을 외워 보라고 해보면, 어느 교회나 공통적으로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항상 과반수가 넘거나 대다수임을 발견할 것이다.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가 맞다고 하면, 분명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니예요?”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개역 개정판을 들이대면 문제의 본질은 간데 없고 무슨 의도로 그것을 말하고 있는지도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목회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인터넷 구글에 시편 23:1을 치니 첫 창에 나오는 열 개 중에 최덕신 목사(복음성가 가수)만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였고, 나머지 아홉 설교자가 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제목을 말하고 있고, 그런 관점에서 설교하고 있다. 그것이 개역 개정으로 바뀌기 전부터 그러했던 것이다.

   한국교회의 누구나 다 아는 대형교회, 그리고 한국교회 수준에서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이름이 알려진 목회자라고 하는  분들이, 그들이 사용하고 있던(바뀌기 전) 성경에도 분명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인데, “오늘은 시편 23:1을 중심으로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제발 본문이라도 제대로 알고 설교했으면 한다. 지금은 원하는 대로 번역이 바뀌었으니 그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겠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맞는 줄 알고 있다. 바뀐 것이다. 자기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생각하다 보니 읽기는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인데, 옮겨 쓰고 말로 할 때는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가 된 것이다. 신본주의가 인본주의로 바뀐 것이다.

   그 차이는 엄청나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의 관점에서는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을 가질 이유가 부지기수로 많다. 상황이나 형편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나의 마음에 안들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우리가 하늘에 속한 자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기에 가지는 신앙고백인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이심을 신뢰하기에 다니엘의 세 친구가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아니하여 풀무불 속에 들어가면서도 한 “그리 아니하실찌라도”의 고백인 것이다(단 3:18).

   다윗이 오늘 한국교회를 본다면 성을 낼 것같다. 다윗은 분명히 “내가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는 분이라고 고백하였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노래하였다(6절).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형편과 상황, 그리고 이 땅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만족과 감사보다 불만과 섭섭함이 더 남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관점, 하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시다. 그는 감사와 찬송을 받으실 분이시다. 그의 인자와 사랑은 영원하시다.

   독일 유대인 수용소에서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유대인들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이 시편 23:1을 암송하였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죽으러 들어가면서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섭섭한 마음을 가졌다면, 할 수 없는 고백이다.
   
   한국교회 50-70년 대 가난했을 때보다 지금 너무나도 좋은 상황속에서도 섭섭함이 많은 믿는 자들에게 남아 있다는 것은 혹시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관점에 너무 오래 머물지 않았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루에 몇 번씩이라도 고백하자. 그래야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시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자다.
 
   어떻게 해야 내가 부족함이 없을까?

   내가 원하는 대로 부유하고 내가 원하는 기도제목이 응답되고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된다고 해서 부족함이 없을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막상 그렇게 되어도 부족한 것은 여전히 많고 섭섭함은 그래도 남을 수 있다.
 
   오늘 새벽 기도회(몇 년전 글 쓸 시점)에 마가복음 10장을 읽었다. 부자 청년의 이야기가 나왔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며 그가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자, 

   주님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하셨다.  그러자 그가 재물이 많은 고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갔다고 하였다(막 10:17-22).
 
   사람은 재물이 많아도 부족한 것이 있다. 계명을 다 지켜도 여전히 부족한 것이 있다. 오직 진정으로 주님을 좇아야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셔야, 내 잔이 넘쳐야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 다가온 대부흥과 대추수에 쓰임 받을 자는 섭섭함을 마음에 갖고 있는 자가 아니다 - 

   내가 하나님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는 자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자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다. 

   그래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하게 됨을 믿고 섭섭함을 떨쳐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이 마지막 부흥에 쓰임 받고자 하는 마음과 기도가 간절하면서도 아직까지 남아 있는 섭섭함을 던져 버리고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그동안과 지금의 모든 섭섭함과 부족함의 상황속에서

1.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기 위해 하나님께 피해야 한다(그에게 달려가야 한다).

2.   여호와를 경외해야 한다(신령과 진정으로 그를 예배해야 한다).

3.   여호와를 찾아야 한다(그의 얼굴과 그의 영광을 구해야 한다).
   

   시편 34편은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체 하다가 쫒겨나서 지은 시다. 그러한 다급한 상황속에서도 그는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광대하심과 그의 이름을 높이며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였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찌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8-10절).

   
   그러므로 더 이상 하나님으로 부족함이 없는 다윗의 신앙고백을  섭섭함의 수준으로 끌어내리지 말자!  

   다가온 대부흥과 마지막 열방대추수를 위해 쓰임 받을 자는 이미 섭섭함을 등 뒤로 던져 버리는 자다.  
 
   하나님의 불을 골수에 보내 달라고 구하고 체험하자! 실제로 근심이 없어진다!

   “무릇 지나가는 자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내게 임한 근심같은 근심이 있는가 볼찌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위에서부터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렘애 1:12-13).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자! 지난날에 대한 후회감이 싹 사라진다!  
   
   “여호와의 영광 곧 그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사 35:2).
   
   잔이 채워지는 것으로는 만족치 못하다. 넘쳐야 한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해야 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입맛대로 번역이 바뀌었어도 내게 부족함이 없다가 아니다! 내가 부족함이 없다!가 맞다. 

   다른 사람은 어떠하든지 나는 그렇게 고백하자!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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