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 29일 금요일
뉴스홈 종교
하나님의 리콜운동 대표 전두승 목사, '한국교회 안의 우상숭배'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4-15 06:00

킹덤빌더즈, L.A 글로리 교회 담임 전두승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한국교회 안의 우상숭배"

   “한국교회 안의 우상숭배”라는 책을 쓰고 싶을 정도로 오늘날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통해서 교회 안에서 유다왕국의 멸망 당시에 이루어졌던 우상숭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교회회복은 예배의 회복이 가장 최우선이 되어야 하기에 이와 비슷한 컬럼을 이미 썼음을 알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주제이며 이것이 교회만 아니라 요즘 같은 정세 가운데서 나라의 존폐에도 관계 있기에 다시 한번 강조하고저 하는 것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죄악이다.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은 그 성전에 계시지 않는다. 

   유대의 왕들과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우상숭배가 그 나라 전체에 영향을 가져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게 되었는데, 살륙의 천사들이 성전 안에 있던 나이든 제사장들로부터 죽이는 심판이 이루어진 것이다(에스겔 9장).

   에스겔서 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유배되어 간 에스겔 선지자에게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벌어지는 우상숭배에 대해 보여 주셨다. 

   1.제단 문 어귀 북편에 투기의 우상 즉 투기를 격발케 하는 우상을 세웠다(3,5절). 

   2.뜰 문에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면 벽에 그렸고 그 앞에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70인이 서서 우상을 섬겼다(10절). 

   3.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곡물의 신-농사 잘되게 하기 위한 이방신)를 위해 애곡했다. 

   4.여호와의 전 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25인의 제사장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게 경배하였다(16절).

   유다왕 므낫세는 바알들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숭배하며 섬겼는데(대하 33:3), 

   그 우상을 다른 곳이 아닌 하나님의 성전 안에 세웠다.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영히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에 단들을 쌓고 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단들을 쌓고”(대하 33:4,5). 

   이러한 행악함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방 백성보다 더 심하였다고 하였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대하 33:9).

   이러한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유다나라를 바벨론에게 망하게 하셔서 유다백성들은 성전을 잃었을 뿐 아니라, 나라까지 잃어버린 것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금하신 제1, 2계명이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찌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우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 20:3-5).

   예배는 오직 창조자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행위이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계 22:9) 하셨으며,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 4:24)하셨다.

   예배와 경배라는 용어는 하나님께만 사용해야 하고, 하나님과 예배자 사이에 그 어느 것도 두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유다왕국이 나라를 잃었을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해지던 가증한 우상숭배가 한국교회 안에서도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전에는 그러지 않았던 예배라는 용어를 개교회 행사나 연합행사를 위하여 사용하고, 목회자 개인의 어떤 영예나 자랑을 위하여 사용하는 일이 한국교회 안에서 만연되고 있는 것이다.

   교계신문을 보면 그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여 하나님께만 드리는 온전한 예배는 찾아 볼 수 없고, 인간의 행사나 교회를 자랑하는 행사의 순서들이 예배라는 용어로 도배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번은 어느 목사가 자기의 목회사역 30주년을 기념한다고  “성역 30주년 기념예배와 설교집 발간 감사예배”를 드린다고 교계신문에 광고를 낸 것을 보았다. 그것도 주일 3부 예배인 11:30에 한다고 축하해달라고 광고한 것이다.

   이것은 엄연히 우상숭배다.

   첫째는, 예배라는 용어를 자기의 사역 30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격하시킨 것이다. 

   아무리 자기 생각에 30년 동안 주를 위한 성스러운 사역을 했는지는 몰라도 예배라는 용어의 개념 자체를 모르고 있을 뿐 아니라, 결국 기념예배라는 용어를  쓰므로 하나님 대신 자기가 그 자리에 앉아 예배받는 형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고 그 자리에 축하하러 참석한 다른 목회자들이나 교인들은 그 우상숭배에 참예한 격이 되고, 그 유명한 목사에게 눈도장을 찍으러 간 것이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개념 자체는 아예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주일은 안식일이요, 주님의 날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인데, 

   사람들이 그 날 이왕 예배하러 많이 모인다고 그 날을 그것도 제일 많이 모이는 3부 예배에 자기가 축하받는 날로 만들었으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컬을 뿐 아니라, 안식일을 도적질 한 격이 되는 것을 본인도 모르고 교회도 모르고 있으니 이것이 결국 작금의 나라를 위태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모든 교인들의 행사를 거룩한 주님의 날 안식일이라고 주일날 못하게 했다. 그런데 지금의 타락한 교회들은 앞장서서 교회 행사나 목회자 개인의 행사를 주일날 예배에다 끼워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신들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미국의 어느 교회는 주일 대예배 시간에 담임목사 부부 결혼 30주년 기념축하 행사를 오랫 동안 하는 모습을 보고 “이것은 아니다”라고 그곳에 참석했던 목사님이 와서 열을 내는 것을 보았다. 

    그 후에 들은 이야기는 그 아들의 결혼식도 비록 오후기는 하지만 주일날 했다고 한다. 이왕 많이 모인 교인들의 축하와 축의금을 노린 것이다. 

   그러한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리가 만무하다 생각했었는데 오래 가지 않아 들은 이야기는 그 목사가 교황을 만나고, 그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라고 자랑했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영이신 하나님만을 향한 예배를 잘못드리게 되면,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게 되고 결국은 그 영이 미혹되고 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행사나, 비록 교회라도 개교회나, 나아가서 나라의 행사라도 예배라는 용어를 쓰면서 다른 것을 끼워 넣으면, 그것은 우상숭배이다.

  
   2016년 9월 인천에 제4차 킹덤 빌더즈 모임을 위해  나갔을 때, 옆에 있는 교회의 현관을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얼마 전에 입당예배를 드린 기사가 난 교계신문을 오려서 게시판에 붙여 놓은 것을 보았다.  

  은사자인 여목사가 기도원을 하며 부흥강사로 다니다가 그 교회를 경매로 사서 들어와서 입당감사예배를 한 것이었다. 

   여러 순서를 인도하는 목회자들이 순번을 맡아 사회하고 기도하고 설교는 어느 군소 신학대학 총장이 맡아 하였다. 설교 후에 특송이 있고 여러 목사들의 그 교회를 이룬 담임목사를 위한 축사와 축하메시지가 이어졌다. 

   설교 후 예배 마치고 2부로 한다면 축사를 하든 축하를 하든 꽃다발과 선물을 증정하든 관계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 사람을 향해 온갖 순서를 다하고 난 후, 

   설교한 총장이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고 기사를 써놓은 것을 보고 한심하다 못해 한국교회의 미혹의 정도가 도가 넘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성령받아 남을 치유하며 부흥사역을 한다는 은사자가 하나님을 예배한다면서 자기를 축하하는 순서를 넣은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아무 생각없이 사례비 받고 순서를 인도하는 목사들은 과연 생각이 있는 지도자들이며, 

   설교하고 나서 바로 축도하지 않고 모든 축하순서를 섞어서 한 후에 축도한 신학교 총장은 도무지 예배의 개념을 제대로 알고 있지도 못한단 말인가?

   한국교회는 정말 그러한 섞인 예배에 대해 바로 지도할 영적 지도자가 없고 예배학 교수들이 없어 그러한 일들이 유행처럼 정당화되고 있단 말인가? 

   도무지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우상 숭배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 첫째 계명인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찌니라”는 계명을 어길 때는 둘째 계명과 셋째 계명까지 함께 어기게 된다. 

   둘째 계명이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절하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라” 하였는데 예배 중에 사람에게 인사하고 축하하고 사람을 섬기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세째 계명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이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인간의 행사를 축하한 것이기에 결국 여호와의 이름을 망녕되이 일컫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을 비약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금식 후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 

   첫 시험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시험이었다. 

   이는 물질적인 시험이다. 초신자들이 주일에 가게를 열거나 일하는 것에 대한 시험일 수가 있다. 주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 4:4)라고 말씀하심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다. 

   둘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시험이었다. 

   천사가 받아 줌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이라는 정신적인 시험인 것이다. 교회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지위나 직분의 시험일 수가 있다.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마 4:7) 하심으로 그 시험을 물리치셨다.  

    마지막 시험은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며 “만약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9)하는 시험이었다. 

   그 때 예수께서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10)하심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다.

   이 마지막 경배의 시험에 오늘날의 교회 지도자들이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만 경배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미혹에 사로잡혀 있기에, 급기야 교황을 알현하고 그 일이 영광스럽다고 자랑하고 오늘날의 교회들을 카톨릭과 합치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예배한다 하고 인간이나 교회의 행사를 끼워 놓은 모임에는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참석했다 해도 하나님께서 죄로 여기시지 아닐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사람을 두려워 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경전과 세상의 풍습을 좇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만을 섬겨야 한다. 무엇보다도 영분별이 요구되는 작금의 미혹된 교회풍토 속에서는 말이다.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 20:7).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jso8485@naver.com

[ 저작권자 © 아시아뉴스통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제보전화 : 1644-3331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의견쓰기

댓글 작성을 위해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 시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실시간 급상승 정보

포토뉴스

more